곳곳에 ‘기록’과 ‘문화’ 새기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5.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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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출신 가운데는 역대 대통령 영부인도 적지 않다. 이희호(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이명박 대통령 부인) 씨 등 네 명이 이화여대 출신으로 짧은 기간 재임한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하면 과반수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이화여대는 개교 100주년이던 1986년, 기념식장에 ‘이화의 사위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그 뒤로는 ‘동문의 남편들’이 함께 모이거나 한 적이 없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매우 다양하리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회의 한 상임위가 일과 후 소속 의원들이 출석한 고위 공무원들과 함께 회식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화여대 출신 아내를 둔 사람들을 꼽아보았더니 태반을 차지하더라는 우스개 말이 전해진다.

이화여대가 여성 교육계의 선발 주자였기에 동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는 ‘여성 최초’ 또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1886년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한 박에스더씨는 1896년 9월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후에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으로 편입) 신입생 3백명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로 입학해 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의 여의사이다.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하란사씨는 귀국해 이화학당에서 설립자 스크랜튼 당장(堂長)을 도와 영어와 성서를 가르쳤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정 ⓒ시사저널 우태윤

김활란 총장이 193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한국인 여성으로는 처음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을 비롯해, 여성으로는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태영 박사, 여성 최초로 언론사 사장에 오른 장명수 한국일보 사장, 전신애 미국 연방 정부 노동부 차관보, 전효숙 헌법재판관, 강경란 세계 분쟁지역 취재 PD,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 등 최초의 기록은 부지기수이다.

한국 여성계를 주도하는 대학답게 많은 이화여대 동문이 학계·문화예술·체육계에서 이름을 빛냈다. 국내 오페라계의 대모로 불린 김자경 교수는 모교 성악과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며 김자경오페라단을 창설해 키웠다. 국내 초연된 오페라 <춘희>에서 프리마돈나 비올레타 역을 맡았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어 많은 음악 팬의 기억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그녀는 타계하기 얼마 전 문화체육부장관이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았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로 시작되는 박목월의 시 <4월의 노래>에 곡을 붙인 작곡가 김순애 교수의 작품은 우리 음악계에서 큰 수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보다 선배인 김메리 여사는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대표적 동요의 하나인 <학교 종이 땡땡땡>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 밖에 피아니스트 장혜원, 성악가 이규도, 파이프 올가니스트 채문경, 박기현 한국오페라단 단장 등이 국내 음악계에 굵은 족적을 남겼으며, 방송사 신인음악회를 통해 데뷔한 가수 노영심은 정감 어린 노래와 음악 프로그램 진행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병복 극단 자유 대표는 무대미술을 전문으로 해 온 원로 연극인이다. 40여 년간 100여 편의 연극을 제작하고 출연자들에게 무대 의상을 해 입혔다. 남편인 서양화가 권옥연씨와 함께 오래전에 운영했던 연극살롱 카페테아트르가 젊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1977년부터 선화랑을 열어 화랑 경영 경력 33년에 접어든 김창실 대표는 한국화랑협회장을 두 차례 지냈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성남아트센터, 국립발레단 후원 사업을 돕고 있는 마당발이다. ‘선 미술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해 오고 있다.

박정란·송지나 등 방송작가 활약 두드러져

홍라영 삼성리움미술관 총괄부관장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고고미술사를 공부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MA)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실무를 익히고 귀국한 후, 삼성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해 현재 총괄부관장을 맡고 있다.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차녀이다. 또한 일기장, 미니홈피 배경 화면, 가방 등 캐릭터 아트로 인기를 얻고 있는 동양화가 육심원씨도 이화여대 동문이다.

문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한 모윤숙 시인이 있다. 원산에서 출생하고 이화여전 문과, 경성제대 영문과를 다닌 모시인은 자유당 시절 한국 문학계 대표로 유엔 총회에 참석했고 대한여청 총본부 단장, 유네스코 총회 한국 대표를 지냈다. 공화당 시절에는 잠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회장, 문학진흥재단 이사장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도 시작(詩作)을 게을리하지 않아 20년 전에 타계했음에도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서 애송되고 있다.

그 외에도 전숙희 국제펜클럽 종신부회장, 강신재 전 여류문학인회 회장, 신지식 아동문학가, 정연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소설가 이규희·남지심·강석경 씨 등이 이화여대 출신 문인의 맥을 탄탄히 이어나가고 있으며, 권지예 동문은 <뱀장어 스튜>로 제26회 이상문학상(2002)을, <꽃게 무덤>으로 제36회 동인문학상(2005)을 수상해 명성을 날렸다.

이화여대 출신 중에는 방송작가가 많다. 박정란씨는 <미망인>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해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상,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SBS TV 창사 특집 드라마 <모래시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 작품으로 제3회 백상예술대상과 제2회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한 송지나씨도 대중적인 사랑을 한몸에 받는 방송작가이다. 인정옥씨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집필해 2002년 방송기자단이 뽑은 드라마 부문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박은주 김영사 사장은, 수학과를 졸업하고 공채로 입문한 출판계에서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신화의 주인공이다. 동종 업계를 놀라게 하며 32세에 사장 자리에 올라 22년째 회사를 이끌어나가면서 자신이 직접 번역 일도 하고 있다. 출간한 많은 책을 히트시켜 ‘베스트셀러 제조기’ ‘기획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8년에는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출판 분야 ‘존경받는 인물’에 뽑히기도 했다.

법학을 전공했던. 변영주씨는 <낮은 목소리> <밀애> 등을 연출해 이목을 끈 영화감독이다. ‘선구적 세계 여성감독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체육과와 무용과를 졸업한 동문들도 국내외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홍양자 이화여대 사회체육학 교수는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체육교사를 거쳐 1976년부터 이화여대 체육 교수로 재직했다. 대학배구연맹 부회장과 국제배구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제6회 윤곡상(최우수 여성지도자)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프로골퍼 박지은은 미국, 캐나다 LPGA 투어 골프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해 박세리에 이어 한국 여성으로서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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