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대마필패’ 따라가나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5.25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세한 스토리와 탄탄한 연출력에도 시청자들은 외면…대중 눈높이 변화 따라잡지 못한 결과

 

▲ SBS 창사 20주년 대하 드라마 . ⓒSBS

대마불사(大馬不死). ‘큰 것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발시대를 거쳐 결국 거품이 터져버렸던 IMF 외환위기 시절까지 우리 경제의 고질병처럼 여겨지던 금과옥조(?)였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 논리일 뿐이었다. 드라마 같은 작품에서 규모의 경제는 작품의 성패와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았다. 대작 드라마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만(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대작 드라마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완전히 상황이 역전된 형국이다. 이제 대마불사가 아니라 ‘대마필패(大馬必敗)’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더 이상 거대함에 별로 감흥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자이언트> 같은 이름에 걸맞은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2회 연속 방영의 파격 편성을 하고 벌써 5회분이 방영되었지만 고작 시청률 10%를 전전하고 있는 반면, <커피하우스> 같은 거의 소품에 가까운 드라마가 첫 방송에 10%를 넘기는 상황은 꽤나 상징적으로 보인다. 똑같이 SBS에서 연달아 방영되는 이 두 드라마. 도대체 무엇이 투자와 반비례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자이언트> 같이 잘 만들어진 대작 시대극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무늬만 블록버스터와 똑같이 세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무려 100억원이 투여된 블록버스터라고 했지만, 누구나 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가에 의문을 품을 만큼 허술하기가 이를 데 없다. 현실성 없는 스토리라면 차라리 철저히 만화 같은 드라마로 접근했어야 했다. 하지만 만화처럼 하려면 더 정교한 영상 연출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함량 미달의 의미로서 ‘만화 같은’ 영상을 보인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들었다. 드라마 초기 대작임을 강조했던 마케팅은 차츰 그 실체를 드러내고는 심지어 마니아 드라마 마케팅으로 선회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했다. ‘B급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라는 문구는 그것이 과연 100억원이라는 돈을 투자해 얻어야 할 결과인가라는 조롱을 낳았다.

하지만 <자이언트>는 다르다. <자이언트>는 잘 들여다보면 꽤 섬세한 스토리와 연출력이 곳곳에서 내공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불행한 사건으로 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각각 성장한 그들이 다시 모여 복수를 펼친다는 그 스토리 흐름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 스토리를 인물들의 감정 라인과 맞춰 강렬하게 이끌어내는 연출도 힘이 넘친다. 무엇보다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특별한 스토리 없이 그저 얼굴 표정 하나와 떨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감정을 끌어올릴 정도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무엇이 <자이언트>로부터 시청자들의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일까.

문제는 <자이언트>가 다루고 있는 세계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시대극이라고 하면 몇 번은 등장했음직한 1970~80년대 개발 시대의 아픔, 그 속에 반드시 끼워넣어지는 가족 간의 복수극. 우리는 일찍이 <에덴의 동쪽>에서 이 전형적인 시대극이 이제 더 이상 그다지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다. 그 첫 번째는 시대극이 기본적으로 현재의 지배 계층의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역사화한다는 점이다. 시대극에는 여러 시대적 고난을 겪고 그것을 이겨낸 후 성공하는 인물이 그려지게 마련이다. 성공한 인물은 현재적 관점에서 권력을 가진 지배 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지배 계층의 성공을 합리화하고 두둔하며, 때로는 그 급속한 성장 과정 속에 존재하기 마련인 윤리적 탈선마저도 결과적으로는 긍정하는 형태를 띠기 때문에, 시대극은 그것이 방영되는 현재의 지배 계층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중들은 지배 계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것이 시대극의 성패를 가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달라진 가치관 때문에 성공 다룬 전형적인 시대극은 더 이상 매력 없어

시대극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달라진 가치관 때문이기도 하다. 시대극은 결국 시대 속에서 꿈틀대는 인간 군상의 성공과 실패를 다루기 마련이다. 성공 지상주의적인 가치관의 시대에서 이제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재, 시대극 속에서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들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공교롭게도 올 6월에는 6·25를 즈음해 한국전쟁과 관련한 드라마가 꽤 많이 준비되고 있다. MBC가 방영할 <로드 넘버 원>과 KBS가 방영할 <전우>가 그것이다. <로드 넘버 원>은 1백30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는 16부작 드라마로 100% 사전 제작제로 만들어지는 작품이고, <전우>는 20부작으로 이미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항간에는 <자이언트>와 함께 이 작품들 역시 국책성 드라마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6·25를 다루는 작품들이 대부분 반공 정신을 고취하던 1960~70년대 국책성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처럼 자리한 한국전쟁이라는 소재를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전쟁을 다루는 시각을 현재 대중의 시선으로 맞추어야 한다. 시대극이 다루는 것은 단지 그 지나간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재에 주목해야 한다. 

 

▲ ⓒSBS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본이 투여된 <로비스트>는 대마필패 신화의 첫 단추를 끼운 작품이다. 화려한 볼거리를 위해 동해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시작해 뉴욕, 워싱턴, 키르키스스탄까지 날아갔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이 <로비스트>의 참패는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간
<태양을 삼켜라>에서 반복되었다. 최완규 작가의 연속된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는 대작 드라마는 그 성공에 대한 집착이 더 이상 시대의 요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 후 <에덴의 동쪽>은 시청률 면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갈수록 망가져 결국에는 용두사미의 드라마가 되었다. 이 작품 역시 국책성 드라마가 아니냐는 논란을 가져왔다. <자이언트>는 그 이름만으로도 대작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자이언트>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면서 대마필패 신화의 고리를 깰 수 있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