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히도 원칙 중시했던 사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5.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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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 이재우씨의 노무현 전 대통령 회고 / “그처럼 멀리 내다본 지도자가 다시 나오겠나”

 

ⓒ시사저널 유장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고향 친구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고 있다.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무슨 일인지 아침부터 한바탕 부부 싸움을 했다. 나는 낮잠을 잤고, 아내도 토라져 누워 있었다. 꿈결에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고향 친구 이재우였다.

당시에는 소위 ‘계도지’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이장들에게 서울신문을 보내주었는데, 이장이었던 그는 아침부터 마을 입구를 서성이면서 집배원을 기다리다가 서울신문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숨이 넘어가게 달려온 것이다. 내가 봉하로 돌아올 준비를 할 때, 그리고 돌아와서 생태 농업과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할 때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가 되어주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는 이재우씨(64)의 심정은 어떨까.

벌써 서거 1주기이다.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10년, 20년 앞을 내다본 그런 지도자가 언제 다시 나오겠나 싶다. 안쓰럽다. 청와대 계실 때 ‘나도 언론과 야합해서 정치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항상 긴장 관계에 있어야 국가가 발전한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기 오기 1년 전쯤 ‘내가 고향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더라. 그렇게 농사를 지으려고 왔는데, 모멸감을 주고 죽도록 만들고….

지금도 부엉이 바위에 자주 올라가나?

거기도 자주 가고 절(정토원)에도 자주 간다. 그분이 순간을 살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위안 삼지만, 원망스럽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사저에 가서 ‘이보다 더 어려운 적도 견뎌냈는데 참고 견디시라’고 했는데…. (박연차)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 내가 사저에 들어가 ‘이것은 경호를 받는 게 아니라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니까, ‘맞다’며 ‘그러니 너도 자주 오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었다.

‘친구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었나?

무던히도 원칙을 중시했다. 사법연수원 시절인 1977년쯤 형님(노건평씨)이 엽총을 갖고 있었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갖다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이 나한테 ‘이 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무어라고 생각하겠느냐’라고 했다. 그래서 둘이서 경찰서에 갖다주었고, 나중에 형님한테 혼난 적이 있다. 2002년 대선 때 운전사였던 선봉술씨가 “유세 시간에 늦어 과속하다 경찰 단속에 걸렸는데 경찰이 여당 후보인 것을 알아채고 ‘그냥 가라’고 했더니 대통령이 화를 내며 ‘그놈 이름이 뭐냐’라며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인가?

뱀산에 토담집 ‘마옥당’을 지어놓고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친구들이 놀러가도, 한 번도 ‘내가 공부해야 하니 돌아가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친구들과 토론하거나 책을 읽고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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