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왜 널뛰나 했더니…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5.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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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기관마다 결과 들쭉날쭉…전화면접이냐, ARS 방식이냐에 따라 순위 뒤바뀌기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트렌드 차트는 어떤 검색어가 얼마나 인기를 얻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잘 보여준다. 여기에 ‘여론조사’를 검색해보면 검색 빈도가 치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6·2 지방선거의 최대 관심 지역인 서울과 경기 지역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겁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을 맞아 여론조사는 최전성기를 맞는 중이다. 하지만 헷갈린다.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했더라도 이 신문에서 보도하는 여론조사 결과와 저 신문에서 보도하는 결과가 다르다. 어떤 때는 조사 기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선거 때만 되면 보도 듣도 못한 여론조사 회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믿지 못할 여론조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어떤 경우에는 심하게 표현해 ‘여론 조작’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여론조사를 ‘과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것이 현실이다.

최근 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민주당-국민참여당 단일 후보로 유시민 후보가 선출되자 주요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김문수 대 유시민’의 지지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문제는 각 언론에서 서로 다른 여론조사 기관에 맡겨 같은 후보,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지지율이 들쭉날쭉했다는 데 있다.

가장 화제였던 것은, 뒤지던 유시민 후보가 선두 김문수 후보를 추월했다는 뉴스였다. 지난 5월18일 폴리뉴스는 여론조사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시민 후보가 41.3%의 지지율을 얻어 김문수 후보(38.8%)를 앞섰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경제와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유후보는 47.7%로 김후보를 1.5%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조사에서는 여전히 김후보가 앞서고는 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월13~14일 한겨레와 더피플의 조사에서는 김후보가 8.3% 포인트가량 앞섰고, 5월20일 C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김후보(47.6%)와 유후보(41.3%)의 격차가 6.3% 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김문수 후보(46.6%)가 유시민 후보(27.6%)를 19%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5월13~14일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김후보가 15.6%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고, 5월19일 문화일보-디오피니언 조사에서는 김후보와 유후보의 격차가 19.3% 포인트로 벌어졌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지난 5월17일 선거대책회의에서 “여론조사는 과학이라고 들었는데, 과학에서는 정답이 하나이지 않나. 그런데 정답이 너무 많고, 정답과 오답의 오차가 너무 커서 오차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여론조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정대표가 문제 삼은 여론조사는 주로 경기지사 선거에서 1, 2위 간 지지율 격차가 크게 나타난 결과에 대한 지적이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일부 보수적 논조들의 언론사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의 격차가 다른 곳과 비교하면 유독 크다. 심지어는 20% 넘게 차이가 나오는 상황 자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는 “서로 다른 언론이어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이 맞다. 격차가 적은 곳은 ARS 조사 방식이고, 많은 곳은 전화면접 조사 방식인데, 서로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조사를 하면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5월20일 야 4당 경기지사 단일 후보 공동선대위 기자회견을 위해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가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NEWSIS

실제로 보면, 김문수-유시민 후보 간 격차가 작은 조사는 모두 ARS 방식을 통한 여론조사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직접 실시한 ARS 조사에서도 지지율 격차는 작게 나타났다. 5월14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ARS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후보는 유후보를 단순 지지도에서 겨우 6% 포인트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두 후보 간 격차가 오차 범위보다 큰 조사의 경우는 대개 전화면접 방식을 사용했다. 후보 간의 격차는 언론사의 차이보다는 방법론의 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ARS 조사는 기계음에 대한 거부감으로 응답률이 5%를 넘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요즘처럼 여론조사가 봇물 터지듯 늘어나는 시점에서는 응답자의 거부감이 더욱 심해 응답률이 1~2%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낮은 응답률에도 ARS 조사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는 전화면접 방식보다는 소수 의견을 지목하기에 편하기 때문에 야당 지지율 측정에 정확하다고 ARS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 5월20일 자사 홈페이지 글을 통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ARS 조사가 정확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이대표는 “야당을 지지하는 많은 유권자들이 전화면접 조사에서는 조사 면접원들에게 지지 후보가 없다고 숨기는 반면, ARS 조사에서는 비밀 투표처럼 전화 버튼을 누르는 것이라 거리낌 없이 지지하는 야당 후보의 번호를 누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전화면접 조사의 적극 투표층과 ARS 조사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표는 각 방송사들이 지난 18대 총선에서 ARS와 전화면접 방법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의 정확도를 비교한 표를 제시하며 당시 ARS 방법을 도입한 SBS의 평균 예측 오차가 3.6%로 가장 낮게 나타난 사례를 들었다.

반면 전화면접이 현 시점에서는 유의미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ARS는 적극적인 지지층이 답변하기 때문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조사를 할 때 유의미하다. 하지만 지금은 천안함 사건 등 아직까지 유권자 표심의 향배를 정할 이슈들이 완전히 정리된 상황이 아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는 면접원을 통한 여론조사 방식이 표심을 아는데 더욱 적확한 방식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5월20일 수원역 앞 한나라당 유세에 참석해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전화면접과 ARS 차이 크다는 것은 막판 변수 많다는 의미”

ARS의 경우에도 표본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ARS는 샘플링을 배분하더라도 구획된 할당 자체를 채우기가 어렵다. 연로하신 분들의 응답이 훨씬 많은 편이다. 반면, 전화면접은 철저하게 인구 비례 할당을 하기 때문에 전체 여론을 보는 데는 전화면접이 훨씬 낫다”라고 설명했다. ARS의 경우 20대 등 젊은 층의 답변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ARS 조사 업체로 잘 알려진 ‘리얼미터’의 경우는 휴대전화로 20·30대 계층의 답변을 보완하지만 일부 조사 기관에서는 그 상태에서 보정치를 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젊은 층의 답변이 적기 때문에 젊은 층의 인구 비율을 고려해 응답 비율을 수정하는 작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응답이 적은 젊은 층의 표를 인구 할당에 따라 보정할 경우 젊은 층 한 사람의 응답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진다. 젊은 층 지지도가 왜곡되게 높아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젊은 층의 지지도가 높은 야당의 경우 상대적으로 ARS 보정 작업이 있을 경우 유리할 수도 있음을 뜻하는 대목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언론사가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가 응답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더러 있다. 하지만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지난 2007년 대선 때의 여론조사를 다시 살펴보니까 조선일보의 조사 때보다 한겨레가 조사할 때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더 많이 나왔다”라며 언론사 성향은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 기관의 신뢰도 역시 중요한 체크포인트이다. 대통령 선거와 달리 후보자가 난립하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여론조사의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특히 가장 많은 후보자가 나오는 지방선거의 경우 여론조사 기관을 구하는 일만으로도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정확하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여론조사 기관이 후보자들의 수요보다 훨씬 적고, 그런 곳은 조사 비용도 비싼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연구소 등에 싸게 의뢰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것을 홍보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광역 단위보다 기초 단위로 갈수록 여론조사 분쟁이 많이 생기는 데는 선거 규모와 형편상 부적격 조사 기관들을 이용하는 후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현재 수도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다소 열세에 놓여 있는 야권의 입장에서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소식도 있다. 지지율 격차가 얼마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권자의 표심이 어느 정도 요동칠 조짐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별다른 여론의 변화가 없는 사안인 경우에는 ARS와 전화면접이 비슷하게 나오는 편이다. 만약 여론의 변화가 조금이라도 일어날 경우 방법론적인 차이에 따라 결과도 차이가 난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직 막판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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