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안보 드라이브’ 계속된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19: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 전문가 4인이 진단하는 ‘지방선거 이후 정국’ / 각종 이슈 동원해 친박계 흔들 수도

지난 5월4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강한’이라는 단어를 무려 11번이나 사용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실제적으로 강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천안함 사고 이전과 이후가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무엇이 어떻게 강해질지는 모르지만, 천안함 사고가 이대통령에게 준 정치적 자신감은 분명 강해졌다. 천안함 정국으로 청와대는 지방선거 이후 국정 장악력을 높일 수 있는 초석을 쌓았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데 별 이론이 없어 보인다. 통상 전국 선거의 결과에 따라 여야 지도부의 재신임, 차기 대권 주자들의 영향력 확장 여부 등이 정계 재편의 잣대가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확연한 차이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확히 4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처한 상황과 비교하면 서로 보색인 것처럼 대비된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는 노 전 대통령에게 끔찍한 악몽이었다. “어차피 선거 막판이 되면 지지층은 다시 모이기 마련이다”라며 지지층의 결집을 바탕으로 국정 후반기를 도모하려던 당시 청와대의 희망 사항은 산산이 깨졌다. 선거 이후 벌어질 시나리오를 세우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결국, 지방선거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탈당을 결정해야 할 상황으로까지 갔고, 후반기에 가져가려던 여러 국정 의제가 추동력을 잃으면서 정치적 능동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시사저널>은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 고원 상지대 정치학 교수,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 등 정치 전문가 네 명에게 지방선거 이후 이명박 정부가 가져갈 국정 의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진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압축해보면 △이명박 정부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각종 국정 의제들을 공격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크고 △안보 이슈를 통해 정치적인 위기를 관리하는 방법을 계속 활용할 것이며 △권력 누수를 통제하기 위해 각종 핵심적인 추진 과제를 감행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 강경 구도로의 ‘패러다임 시프트’ 예상 안보 이슈 통한 남북 대결 구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

전문가들은 6·2 지방선거 분위기를 단박에 바꾼 안보 이슈가 집권 후반기를 끌고 갈 핵심적인 의제 겸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았다. 안보 이슈는 이명박 정부에게 꽃놀이패이다. 유창선 박사는 “천안함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시점과 북한에 대한 강경한 압박 메시지 등은 6.2 지방선거를 의식한 면이 크지만,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가 이 흐름 자체를 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 관계가 화해의 시대를 마감하고 대결의 시대로 전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강(强) 대 강(强)’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먼저 뒤로 물러서며 손을 내밀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북한을 모든 방면에서 압박하면서 국민에게 안보 문제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호소해나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고원 교수의 진단도 비슷했다. 안보 이슈의 가치가 선거 과정에서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 큰 효과를 나타내면서 여실히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 대결 구도가 이명박 정부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을 덧붙였다. “남북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어 민주화 이후 20여 년 이상 지속되어온 한반도 평화 무드에 대한 회귀 심리가 발동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만약 한반도 상황 관리에 대한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 남북 문제에서 이명박 정부가 완전히 종(從)으로 전락할 경우 오히려 ‘무능함’이 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풍도 우려된다. 고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 드라이브를 걸면서도 개성공단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것의 위험성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당하게 목적 달성이 이루어지면 대결 정책을 일정 부분 전환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라고 내다보았다. 

앞으로 있을 외부 일정 역시 청와대가 강경 드라이브만을 고수하기에는 부담이 뒤따른다. 황인상 대표는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의 등의 일정은 국내 안보 정세의 위기를 증폭해갈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연말까지 지속될 유엔 안보리 제제와 북한의 격렬한 대응 등의 문제를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차원의 대응 원칙으로 조절하면서 국제 외교적인 해결 방안으로 천안함 사건을 마무리해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 개헌론 선도… 친이-친박 간 대결에 불댕길 수도

개헌 논의는 예상된 수순이다. 청와대가 쥐고 있는 국정 운영 방향 중 개헌은 대통령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인 의제이다. 이명박 정부와 개헌의 함수 관계는 정방향으로 맞물린다. 실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 때는 2007년 대선 전에 헌법을 뜯어고치기 어려웠다는 물리적 난점 외에도, 개헌 논의 자체가 힘을 받지 못했다. ‘당-정-청’ 관계에서 청와대의 무게감이 떨어지자 정치권에서는 굳이 합의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 ‘친이(친이명박)계’의 한 인사는 “이전에는 민주당에서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 논의를 하는 것은 정권 심판론을 희석시킨다고 반대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의원들이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라고 말했다.

이미 여야는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이고 그 시기만이 문제로 남아 있다. 유창선 박사는 “이대통령이 개헌론을 선도하면 야당도 반대하기 어려운 명분적 측면이 있다. 이대통령 입장에서는 초당파적 국정 개혁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개헌 정국을 통해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 개헌의 필요성을 다시 강력하게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치권의 의제를 휘어잡는 데 개헌만큼 좋은 것은 없지만, 직접 깃발을 한 손에 들기에는 부담이 따르는 것이 또 개헌이다. 유박사는 “대통령이 나섰는데도 여야 합의에 실패해 개헌이 무산될 경우의 부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개헌의 내용, 특히 권력 구조의 문제와 관련해 친이-친박(친박근혜) 간의 입장 차이가 예상된다. 친이측이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 등을 주장하고 친박측이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할 경우 여권의 내분이 발생하면서 개헌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는 이대통령이 여권 내분의 한복판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이대통령은 개헌의 필요성은 제기하되 그 내용에는 깊숙이 개입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개헌론이 돌파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경헌 대표는 “개헌 범주 및 중·대선거구제 개편 등의 정치 의제들이 여야의 합의 없이 추진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야당과의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권 주류의 엄호 속에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 지난 2월12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을 방문해 빈대떡을 먹으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친서민 중도 실용 노선 추구… 비리 척결 카드 활용할 것

전문가들은 ‘친서민 중도 실용 노선’의 강화도 주요한 국정 의제로 꼽았다. 대중적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작업으로 유의미해서다. 황인상 대표는 “능력 있는 지도자상이나 추진력 있는 지도자상보다 친서민 행보만큼은 아직 달성 정도가 낮기 때문에 지방선거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지도자상을 적극적으로 높이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이대통령이 지방선거 이전부터 호언해 온 비리 척결 역시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유창선 박사는 “시기를 막론하고 정권의 개혁성을 부각시키며 국민의 호응을 기대할 수 있는 메뉴이다. 실제로 교육 비리, 검찰 비리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매우 큰 상태이다”라고 진단했다. 이 두 가지 비리 척결을 우선 순위에 두고 제도 개혁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고원 교수는 ‘친서민 중도 실용’에 숨겨진 의미에 주목했다. 실질적으로는 대단히 ‘이념 지향적’인 노선이라는 것이다. 고교수는 ‘친서민 중도 실용’ 노선이 “민주노총, 공공 부문 등 조직화된 노동 세력을 공격하면서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생계가 불안정한 다수의 감성을 자극하고, 여기에 비용 효과가 크지 않은 몇 가지 서민 정책 패키지를 얹으면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치 전략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개칭한 것에 주목했다. “‘고용 시장 안정’이라는 담론을 주도하면서 몇 가지 정책 패키지를 내놓고, 이와 함께 ‘노동 시장 유연성과 법질서 강화’를 통해 노동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뜻”이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 지난 5월21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서 한 노인과 악수하며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집권 후반기를 위해서 청와대는 ‘차기’ 문제를 의식해야만 한다. 잠잠해진 갈등이 다시 솟구쳐오를 수밖에 없는 시점이 곧 온다는 이야기이다. 청와대가 어떤 식으로 ‘차기’ 문제에 등장할지도 관심사이다. 유창선 박사는 “여권의 차기 정권 재창출 문제와 관련해서 이대통령이 특별히 개입할 일은 없어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이대통령과 대결적인 자세를 취해 온 박근혜 전 대표가 여권에서 부동의 ‘차기 주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역설적인 현상 때문이다. 유박사는 “이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차기 집권 가능성에 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막기에는 현재로서 대안도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거리가 계속 유지될 리는 없다. 어느 시점에서는 좁혀져야 한다. 유박사는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시점을 ‘대선에 임박했을 때’로 내다보았다.

반면, 당내 갈등 구도 관리를 위한 작업들이 점점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많다. 고원 교수 역시 ‘강화’ 쪽에 방점을 찍었고, 그런 작업들이 결국에는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교수는 “청와대는 당내 갈등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의제 설정 효과를 활용해 제도 개혁 이슈를 동원하며 친박 세력을 흔들게 될 것이다”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하면서 친박 세력의 축소를 꾀하거나 개헌 카드를 이용해 현재의 판세를 뒤흔들면서 친박 세력을 압박할 수도 있다. 현재 수면 상태에 있는 세종시 수정안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도 예상되는 방법이다. 

이경헌 대표 역시 “선거 이후의 정국이 여야 간 대립보다는 ‘친이-친박’ 간 대립이 구심점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하면서 대립의 가운데에는 개헌 논의가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대표는 “개헌 의제처럼 차기 권력에 민감한 주제가 없는 만큼, 청와대와 여권 주류는 야권보다는 친박계와의 의제 조정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차기’의 문제에는 여당 내부를 정리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하지만 야권 세력에 대한 확실한 제압도 진지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여-여’와 ‘여-야’ 모두 앞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한명숙 전 총리 재판과 전교조 관련 이슈들에서 보듯 현 정부의 야권 세력과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은 거세다. 이에 대해 고원 교수는 “권력 불안 요인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다. 여권에서는 야권 세력과 시민사회 저항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불씨까지도 확실하게 꺼놓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민노당에 가입한 전교조 교사에 대한 강경 징계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이야기이다. 고교수는 “주요 야권 인사에 대한 사정 작업이 지방선거 이후에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