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그리스전, ‘속도’에 달렸다
  • 한준희 |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10.06.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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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전 모두 마친 월드컵 대표팀 최종 점검 / 공수 균형 유지·세밀한 원터치 패스 플레이 절실

마침내 월드컵이다. 4년간의 축구 농사가 마침내 풍흉을 가리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우리 대표 팀의 마지막 평가전 스페인전을 짚어보고 남아공월드컵의 명운이 걸린 첫 경기 그리스와의 대결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필요한 사항들을 분석해보았다.

 

▲ 6월4일 스페인과의 월드컵 대표팀 평가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헤딩 슛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 스페인전이 남긴 교훈 / 신속·정확한 볼 처리 아쉬워…역습 전개 능력 키워야

스페인전은 결국 0-1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잘한 부분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냉정한 분석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스페인전에서 드러난 약점으로 대표팀이 보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우선, 역습 전개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1.7군’의 선발 라인업을 가동했던 스페인이기는 하더라도 스페인은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볼 점유’ 역량을 지닌 팀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정도 낮은 지역으로 내려와 수비를 견고히 한 후 빠르고 정교한 역습을 터뜨리는 쪽으로 전술적 가닥을 잡은 것 자체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역습 전개 능력이다. ‘원톱’ 박주영에게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우리 대표팀의 수비로부터 전개되는 역습은 그 속도와 효율성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일단 수비 진영으로부터 신속하고 정확한 패스가 나오는 데 어려움을 겪은 데다, 역습을 시도할 만한 순간 볼을 지니지 않고 있는 선수들이 가장 적절한 위치로 빠르게 움직여주지 못한 경향이 있다. 볼을 주는 선수와 받는 선수 간의 호흡도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좋지 못했다. 물론 박지성이 가세할 경우 우리의 역습은 일정 부분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박지성을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존재로 예상해 모든 것을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번째 문제는 골 결정력이다. 강팀과의 대결에서 우리의 공격 빈도가 빈번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역시 골 결정력의 향상이다. 단시간에 크게 향상될 것은 결코 아니나, 그래도 본선에서는 최선의 결정력이 발휘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는, 세트플레이의 다양성과 정확도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스페인전에서 대표팀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세트플레이 방식들을 본선 상대국들 앞에 노출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다소 평범한 세트플레이들로 일관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틀림없이 다양한 무기들을 순도 높게 풀어놓아야만 할 것이다.

한편, 스페인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갔음에도 우리가 한 골 실점으로 막아낸 것 자체는 일단 수비 측면에서 ‘절반 이상의 성공’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포백 라인과 미드필더 김정우는 적어도 수비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을 법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우리 진영에서의 신속하고 정확한 볼 처리가 요망된다. 스페인이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는 원동력은 빼어난 볼 간수 능력 및 패싱력에 더해 ‘높은 지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압박’이다. 스페인은 자신들의 공격이 실패해 상대 수비에 볼을 넘겨주는 경우에도 높은 지역에서 압박을 펼쳐 우리 수비진의 불안한 볼 처리를 유도해 다시금 높은 지역에서 볼을 되찾아오는 데에 매우 능했다. 이것이야말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스페인의 2차, 3차 공격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다. 결국, 이러한 압박을 펼치는 상대 팀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불안한 볼 처리를 하게 될 경우 그것은 한마디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우리 수비 진영에서의 신속, 정확한 볼 처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연합뉴스

 

필요한 대비책 /  먼저 체력을 최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이번 월드컵의 운명이 상당 부분 걸려 있는 경기가 첫 경기인 그리스전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첫 경기 결과에 따라 우리의 16강 가능성은 ‘수직 상승’할 수도, ‘급전 직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운명의 그리스전에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컨디션과 체력 상태를 100% 가동될 수 있게끔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기적 계획의 결과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2002 한·일월드컵 당시와는 달리, 이번 월드컵은 해외파·국내파를 막론하고 정상적인 클럽 일정들을 모두 소화하고서 임하는 대회이다. 따라서 선수들의 체력 상태에 대한 면밀한 점검을 바탕으로 선수 개개인의 상태를 첫 경기 이전까지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본선에서 좋은 경기들을 치르기 위해서는 90분 내내 적절한 압박을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좀 더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서, 우선 그리스를 요리하기 위한 우리의 첫 번째 키워드는 ‘속도’이다.

북한·파라과이와의 평가전들에서 그리스가 설사 최선의 모습을 표출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지역 예선 때부터 나타난 그리스 최대의 단점은 역시 빠르지 않은 속도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공격진의 살핀기디스, 니니스 등의 스피드는 결코 경시될 수 없지만 나머지 자원들 가운데에는 속도감을 지닌 선수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수비 진영으로부터 미드필드를 거쳐 올라오는 속도 역시도 그리 빠르지 못하다. 신체가 큰 수비수들의 순발력도 떨어진다. 감독 레하겔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스에 심어놓은 ‘옛날 독일식 스타일’은 지금에 와서는 좋은 쪽보다 나쁜 쪽으로 더 많이 나타나는 양상이다.

결국, 우리는 공격을 할 때 상대의 위험 지역에서 가급적 빠르고 세밀한 원터치 패스 플레이를 많이 펼쳐야 하며, 크로스를 할 경우에도 높은 것보다는 빠르고 강한 크로스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또한, 드리블의 기회가 왔을 경우 과감하게 드리블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발이 느린 그리스 수비수들을 당혹스럽게 할 수 있는 데다, 그들로부터 파울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드필드에서의 속도감 있는 압박과 더불어 수비 진영에서도 빠른 협력 수비와 커버플레이를 펼쳐준다면 (니니스, 사마라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개인 전술 면에서 그리 뛰어나지 않은 그리스의 공격을 별무 신통한 것으로 만들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두 번째 키워드는 ‘공수 균형의 유지’이다. 이는 특히 선취골을 내주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역시 첫 경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는 우리와의 대결에서 일단은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어느 정도 신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자칫 우리가 이에 말려들어 후방을 허술히 한 채 공격에 몰두할 경우에는 그리스의 역공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 즉, 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공수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공수 균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그리스를 괴롭힌다면 오히려 조급해진 그리스가 자신들 특유의 스타일을 내던지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때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수비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볼을 처리하는 데서 실수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스가 필드플레이에서나 세트플레이에서나 ‘공중 볼’에 꽤나 의존하는 팀임을 감안하면, 수비수들은 낙하하는 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들에 적잖이 직면하게 될 것이고 여기서 낙하 지점 포착의 실수라든지 볼의 바운드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들이 나타나게 되면 그 즉시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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