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전 신세’ 전문대가 뿔났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6.0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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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재정 지원은 종합대학의 10%에 불과…위기 국면으로 여겨 100만인 서명 운동 나서

“지원은 뒷전이면서 책임만 지라고 하니….” 전문대학의 불만이 갈수록 쌓여가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용 문제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긴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전문대학은 교육 정책의 사각 지대에 있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위기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지난 30여 년간 직업 교육의 최전선에 섰던 전문대학들이 현재 생존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 전문대학 구성원 대표들이 지난 5월4일 고등직업교육 선진화 정책을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

정부가 6월 중 내놓을 대학 구조조정 유도 방안 대상에서 전문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12일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전문대학의 운영은 전문 기능 인력을 양성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많은 경우 4년제 종합대학과 별로 다르지 않게 운영되는 현재의 전문대학 상황은, 반드시 재점검되고 방향이 바로잡혀야 한다”라고 밝혔다. 전문대학에 대한 개혁 필요성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대학측에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현재 청년 실업자를 양산하는 주범은 4년제 일반 대학이지 전문대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 통계에 따르면, 전체 미취업자 중 일반 대학 졸업생의 비율은 전문대학 졸업생에 비해 세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차이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이다. 전체 취업률을 놓고 볼 때도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68.2%)보다 18.3% 높은 86.5%에 이른다.

오히려 정부의 예산 지원이 4년제 대학에 일방적으로 몰리면서 직업 교육이 부실화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정길·이하 전문대교협)에 따르면, 전문대학이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학교 수 42%, 입학 정원 40%에 이르지만 정부의 재정 지 원 규모는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올해 전문대학 예산이 지난해에 비해 증가했지만, 재정 규모로 보면 일반 대학의 13.6%에 불과하다. 이는 재정의 상당 부분이 학술 연구 부문에 대한 지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교육 예산을 놓고 보면 전체 5조5백억원 중에서 2천9백65억원으로 5.6%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부 지원이 불균형을 이룬 배경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소통 채널의 부재이다. 주무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직제 체계에서부터 구조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재 교과부 내에 일반 대학 관련 부서는 1실 3관 9개과로 총 정원이 100명을 넘는다. 반면, 전문대학 관련 부서는 평생직업교육국 내에 10여 명 인원의   전문대학정책과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교과부에서는 공통 지원 부서까지 일반 대학 관련 부서로 포함시켜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회의 참석도 못해” 불만 높아

전문대학 관계자가 정책에 참여할 기회도 부족하다. 전문대교협 관계자는 “정부 정책 자문위원회에 참여하는 교육 관계자 현황을 보면, 1백20명 가운데 일반 대학 교수가 66명(55%)인 반면, 전문대학 교수는 세 명(2.5%)이다. 특히 고등교육분과위원회에는 전문대학 관계자가 아예 없다. 전문대학을 법으로 정한 것과 달리 고등교육 기관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후 “평생직업교육분과위원회에도 전문대학 교수는 두 명밖에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계 인사들이 참석한 제2차 교육개혁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챙기고 있는 교육개혁대책회의에서도 전문대학은 사실상 소외되고 있다. 이 회의는 이대통령이 올해 신년 국정연설에서 ‘교육을 직접 챙기겠다’라고 밝힌 후 교육 개혁 방안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지난 3월17일 첫 회의에서부터 교육 관련 정부 기관과 단체의 수장은 물론 교육감, 교사, 학부모 등 교육 현장 인사들이 다양하게 참석했다.

일반 대학 관련 단체와 총장들도 당연히 자리를 함께했다. 하지만 지난 5월18일에 열린 3차 회의까지 전문대학 관계자는 한 번도 참석을 하지 못했다. 전문대교협 관계자는 “직업 교육의 중심에 있는 전문대학이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회의이다. 참석시켜달라는 요구도 하지만, 이미 들어가지 못한 것 자체가 전문대학에 대한 소외로 여겨진다”라고 밝혔다. 그는 “처음 계획 단계에서부터 들어가야 하는데 뒤늦게 들어가기는 더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반 대학에 비해 현저하게 뒤처지는 전문대학의 정치력 부재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교과부에서도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대학 정책을 담당하는 박준 교과부 전문대학정책과장은 지난 5월4일 전문대학에서 주최한 직업 교육 선진화 정책 토론회에서 “정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정치가 중요하다. 대학 안에서는 총장이나 구성원이 해결하면 되지만, 대학 외적 문제는 정치적 결정 과정이기 때문에 정치적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전문대학에서도 ‘실력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5월26일 전국의 전문대학 관계자들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적십자간호대학에서 모여 회의를 가졌다. 전문대학의 입장을 담은 ‘고등 직업 교육 선진화 촉구 100만 가두 서명’ 2단계 추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전문대교협은 지난 5월4일 서울 한국언론재단에서 전국 전문대학 총장과 교직원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명서를 발표한 후 1단계 서명 운동을 이미 끝마쳤다. 지방선거 기간에 잠시 중단된 가두 서명은 6월7일부터 다시 재개할 계획이다. 100만명 서명을 완료하면 청와대, 교과부, 국회 등에 건의서와 함께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문대학에서 요구하는 사안은 수업 연한 다양화, 4년제 대학과 동등한 국가 재정 지원 확대, 전문대학 차별 정책 시정 등 크게 세 가지이다.

이 중에서 수업 연한 다양화에 대한 요구가 가장 거세다. 현행 고등교육법에는 대학의 수업 연한은 4년 내지 6년으로 하고, 전문대학의 수업 연한은 2년 내지 3년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대학에서는 수업 연한을 1년 내지 4년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 가운데 하나라는 점도 강조한다.

전문대학의 수업 연한 다양화는 교육계에서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다. 그런 만큼 이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전문대학이 차별 대우를 받아왔다는 점과는 별개로 수업 연한의 규제 완화가 4년제 대학과의 구분을 없애서 결과적으로 직업 교육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는 “가뜩이나 재정이 빈약한 상황에서 전문대학 운영자들은 소규모 특성화를 꾀하는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 전문대학이 고등 직업 교육 기관으로서 소명을 다해왔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윤성호
전문대교협에서 ‘100만명 서명 운동’을 총괄하고 있는 이승근 기획조정실장은 “전문대학과 관련한 정책에 대해 건의를 해도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 서명 운동은 전문대학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한번 돌아봐달라고 정부에 요청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실장은 “현재 구조에서는 직업 교육의 중추적인 기능을 해 온 전문대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수업 연한 다양화는 일반 대학과의 구분을 폐지하려는 것 아닌가?

전문대학 모든 분야가 4년 과정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보건 계열과 유아교육 분야는 같은 자격과 면허, 직무를 가졌지만 현장에서 차별을 받는다. 또, 산업 현장에서 융합된 기술의 전문 인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특정 학과에서만 4년간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 모집을 쉽게 하려고 그런다는 우려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일반 대학과 경쟁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 내에서는 전문대학 개혁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에서 말하는 기능 인력은 이전 산업화 시대에서 요구하던 인력이다. 구시대적인 사고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고학력 인플레이션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4년제 일반 대학이다. 그런데도 전문대학 정원은 줄이고 일반 대학은 오히려 정원을 늘리고 있다. 과잉 공급에 과잉 투자를 하는 정부의 정책은 변해야 한다. 정부 투자가 오히려 시장의 왜곡을 가져오고 있다.

교과부 내에 전문대학정책과 이외에 대학 공통 지원 부서도 있지 않나? 

전문대학과 관련한 정책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과는 한 개뿐이다. 일부 공통 지원 부서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4년제 일반 대학 위주이다. 전문대학을 지원하는 정책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이다.

전문대학 내부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투명 경영과 윤리 경영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에 요구를 한다면 자가당착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투명한 학사 관리와 대학 운영을 위해 협의회 내에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전문대학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경우 3년간 자격을 박탈하고 그 내용을 대외에 공표할 것이다. 교과부장관에게도 해당 대학에 대한 제재 조치를 요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서명 운동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정부를 비판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문대학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건의를 하는 것이다. 7월4일 서명이 완료되면 건의 사항을 청와대와 정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학문 연구 중심의 일반 대학과 직업 교육 중심의 전문대학 두 축 중 하나를 없애버리지 않겠다면 균형을 맞추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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