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공양’과 함께 타오른 갈등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6.08 14: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연대-총무원, 문수 스님 장례 준비 과정에서 ‘엇박자’ 표출…총무원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 노출

지난 6월4일 오전 10시, 경북 군위군 지보사에서는 얼마 전 ‘소신 공양’을 한 문수 스님(47)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열렸다. 지보사에서 수행 중이던 스님은 지난 5월31일 오후 낙동강 뚝방에 유서를 남겨놓은 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입적했다. 문수 스님은 이명박 정권을 향해 ‘4대강 사업 중지’ ‘부정부패 척결’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문수 스님의 49재는 지보사에서 초재를 지낸 뒤 전국의 사찰 여섯 군데를 돌아가며 지내게 된다. 현재 서울 조계사·봉은사·화계사·금선사 등과 전국 주요 사찰에는 문수 스님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조계사에 마련된 문수 스님의 분향소에는 6월4일부터 15일까지 참회와 성찰을 위한 ‘108배 기도 정진’ ‘추모 배너 달기’ 등이 이어진다.

불교계는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 이후 큰 충격에 빠졌다. 총무원을 비롯한 각 단체들이 앞다투어 발표했던 ‘애도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소신 공양’은 자기의 몸을 태워 부처에게 바치는 것으로, 불교계에서는 최고의 보시로 여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에 항거해 소신 공양을 한 전례가 없었다.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시절에도 소신 공양으로 맞서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불교계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서 ‘삼보 일배’ ‘오체투지’ ‘단식’ 등으로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을 접하면서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행동을 자책하는 모습이다. 특히 4대강 사업 반대를 주도해 온 불교환경연대와 상임대표인 수경 스님은 비통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6월1일 조계사에서 열린 ‘문수 스님 추모 기자회견’에서 수경 스님은 “소신 공양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4대강 문제를 다루고 있는 사람으로서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을 접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에게도 위선을 떨지 말고 이제 정말 진정으로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 절박하게 느낀다고 하면, 큰 결단을 해라, 큰 행동을 해라, 생각만 하고 폼만 잡지 말고 이 문제에 투신해라, 이런 가르침을 주기 위해 소신 공양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비장한 의지를 내보였다.

향후 불교계의 4대강 반대 수위가 한층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6·2 지방선거가 끝난 후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은 불교계뿐 아니라 4대강 사업을 반대해 온 종교계의 핵심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6월5일 조계사 앞마당에서 열린 ‘문수 스님 국민 추모제’가 그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환경연대와 불교시민단체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천도 의식, 추모사, 추모 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주최측은 문수 스님이 소신 공양을 한 뜻과 4대강 사업 반대를 연계하며 국민적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스님은 “문수 스님은 한 개인으로서 소신 공양을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를 보면 순교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례가 종종 있다. 문수 스님의 큰 뜻을 기려 4대강 사업을 반드시 중단시키겠다”라고 말했다. 불교 단체들도 여기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문수 스님의 희생이 ‘4대강 사업 반대’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상근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은 “문수 스님은 자연이 파괴되고 생명이 경시되는 것을 보면서 수행자로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교계가 스님의 뜻을 이어받아 4대강을 반드시 중단시켜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불교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수 스님이 수학했던 중앙승가대 동문 등도 각종 추모행사와 4대강 반대 행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불교 단체들은 “2008년 ‘범불교대회’를 재현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연출해내기까지는 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벌써부터 불교계 내에서 갈등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당초 불교환경연대 등 불교계 일각에서는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을 4대강 사업과 연계해 쟁점화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스님의 시신(법구)을 서울 조계사 마당에 모신 후 장례를 치르려고 했으나 총무원 사회부장 등이 참석한 ‘대표자 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산되었다. 총무원과 불교환경연대의 미묘한 엇박자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 6월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마련된 문수 스님의 분향소에서 스님들과 시민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총무원은 환경단체 아닌 만큼 이해해달라”

급기야 이런 갈등의 기류는 문수 스님 영결식을 하루 앞둔 6월3일에 폭발했다.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는 “장례 절차를 불자들의 뜻과 달리 일방적으로 축소해 우리 사회의 참회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 스님의 유지를 퇴색게 한 종단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총무원 관련 소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불교연대 성명서는 총무원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물론 불교연대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된 내막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계 내에서는 문수 스님의 장례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불교연대·도반들과 총무원이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국민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총무원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러자 성명서로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주 조계종 총무원 사회팀장은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과 관련해) 일부에서 불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총무원은 애도문을 통해 비통함을 전했고, 환경단체나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는 활동 등에 대해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총무원은 환경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총무원의 모든 조직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문수 스님은 소신 공양을 하기 전에 모두 세 곳에 유서를 남겼다. 수첩과 승복 그리고 선방에 같은 내용의 유서를 써놓았다. 자신의 뜻을 전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교계는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각자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불교계가 이러한 내부 온도 차를 극복하고 4대강 반대 운동에 하나 되어 적극 나선다면 정권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