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벗어 던져 더 ‘뜨거운 형제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6.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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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 독특한 리얼 상황극 눈길…버라이어티쇼의 또 다른 진화 기대

이것은 지금껏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버라이어티쇼이다. <무한도전>이 무형식의 형식, 무정형의 버라이어티쇼를 통해 그 다채로움을 오히려 무기로 내세웠다면, ‘뜨거운 형제들’도 그 연장선에 있는 버라이어티쇼로 읽을 수 있다. ‘뜨거운 형제들’은 기존 <일밤>에서 보여주었던 ‘제목으로 소재가 한정되는(예를 들면 ‘헌터스’나 ‘우리 아버지’ 같은) 그런 코너가 아니다. 그저 ‘뜨거운 형제들’이라는 형제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할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마치 재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이들의 자세는 새 코너가 특정한 소재에 한정될 때 가질 수밖에 없는 리스크를 없애준다. ‘헌터스’나 ‘우리 아버지’ 같은 코너는 그 소재가 재미가 없어지면 아예 코너를 없애야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시도된 소재만 바꾸면 된다. 그런 점에서 ‘뜨거운 형제들’은 <무한도전>이 무형식을 통해 오히려 갖게 되었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예약했다.  

▲ 의 새 코너 ‘뜨거운 형제들’의 출연진. ⓒMBC 제공

하지만 <무한도전>이 가진 ‘대한민국 평균 이하들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라는 도전 콘셉트와 ‘뜨거운 형제들’의 도전은 궤를 달리한다. ‘뜨거운 형제들’은 <무한도전>처럼 도전을 통해 개개인이 성장하는 성장 버라이어티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세대든, 성격이든, 그 무엇이든) 떨떠름했던 관계들이 성장하는 버라이어티쇼이다. ‘뜨거운 형제들’을 뜨겁게 만든 ‘아바타 소개팅’ 같은 소재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구 세대로 나뉘어 짝패를 이룬 이들이 소개팅 자리에서 한 명은 조종하고 다른 한 명은 실행한다는 이 독특한 콘셉트 속에는, 이질적인 두 멤버 간에 벌어지는 관계의 화학 작용이 재미의 큰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김구라가 자신의 이미지를 프로그램화했던 <절친노트>에 가까운 형태이다. 하지만 거의 일회적으로 만나 툭탁거리다가 결국에는 금세 친해지는 <절친노트>와 ‘뜨거운 형제들’은 또 다르다. ‘뜨거운 형제들’은 아주 서서히 변화해가는 관계의 성장에 주목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코너는 유사 가족이지만, 가족애를 내세우며 관계에 집착했던 <패밀리가 떴다>를 닮았다.

다양한 시도 가능한 무정형의 형태 될지도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여행 버라이어티가 아니라는 점에서 <패밀리가 떴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형제애를 내세우는 <1박2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뜨거운 형제들’은 <1박2일> 등이 그동안 버라이어티쇼의 기본으로 내세웠던 야외 버라이어티에 대한 강박이 없다. 카메라가 스튜디오에 머무르면 안 되고 밖으로 나가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될 것 같았던 야외 버라이어티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쇼의 차별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밖으로 나가거나 스튜디오에 있거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면 의외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으나, 스튜디오라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이른바 ‘리얼 상황극’이다. 그리고 이 리얼 상황극은 ‘뜨거운 형제들’이 다른 버라이어티쇼들과 확실하게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상황극이라고 하면 마치 대본에 의해 짜인 콩트 코미디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사실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리얼 상황극은 허구로 주어지는 상황 속에 놓인 캐릭터가 리얼하게 보여주는 리액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가상과 현실 사이에 서 있다. ‘아바타 소개팅’에서 김구라·박명수·한상진·탁재훈 같은 기혼자들은 박휘순·싸이먼D·이기광·노유민 같은 미혼자들과 조합을 이루면서 기묘한 상황극 속으로 들어간다. 조종하는 자는 그 행위를 하는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감해지고, 역시 조종당하는 이들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행위가 자유로워진다. 즉, 양측 모두 이 상황극 속에 들어가면 어떤 현실적인 책임감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 리얼해지고 과장되어진다. 이것은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가상 현실을 접하며 느끼는 그 감성이다. 가상의 세계에 던지는 듯한 그 행위는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행위자를 편하게 해주지만, 그것은 또한 직접적으로 리얼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 감성은 ‘아바타 소개팅’ 같은 리얼 상황극이 왜 작금의 ‘접속된’ 대중들과 공감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물론 이 리얼 상황극 역시 지금 현재 ‘뜨거운 형제들’을 뜨겁게 만드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뜨거운 형제들’이 이처럼 다양한 기존 쇼들의 형식들을 닮아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확실한 차별성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사실은 이것저것 시도를 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 정해진 형식적 룰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은 이 프로그램이 지닌 가장 큰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이제 버라이어티쇼들은 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용어조차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뭐가 대세다’, 혹은 ‘뭐가 트렌드다’ 하는 것들은 이제 버라이어티쇼가 우후죽순 등장해 다양해진 상황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요는 어떤 재미와 의미를 주느냐이지, 그 형식이 무엇이냐가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쇼의 미래는 어쩌면 장기간 가능한 목표 정도를 정해놓고(그것도 아주 러프하게),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무정형의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무한도전>이 처음 시도했고, <남자의 자격>으로 순항하고 있는 이 형태는 지금 ‘뜨거운 형제들’을 통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요일 밤에 웃고 운 <일밤>의 변천사

일요일 밤은 방송 3사 버라이어티쇼의 최대 격전장이다. <일밤>은 이경규라는 거물이 자리하고 있을 때까지 패자였다. 하지만 이경규가 SBS의 <라인업>을 거쳐 KBS의 <남자의 자격>으로 옮겨가고 있을 때까지 <일밤>은 변해가는 일요일 밤 버라이어티쇼의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 <세바퀴>와 <우리 결혼했어요>가 <일밤>을 살릴 기대주로 등장했지만, 두 코너를 분가시킨 뒤 다시 주저앉았다. 결국, <일밤>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를 내세워 이른바 ‘공익 버라이어티’로 진용을 갖추었다. 뜻은 좋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야생 멧돼지를 추적하는 환경 버라이어티 ‘헌터스’는 생명 경시를 부추긴다는 여론에 의해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조기 종영된 ‘헌터스’ 이후의 ‘에코하우스’는 실패한 환경 버라이어티를 연착륙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을 뿐, 야심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기획이 참신했지만, 소재가 한정적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단비’는 의미와 재미를 어느 정도 담보하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일밤>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이끌기에는 예능으로서의 재미가 너무 부족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뜨거운 형제들’이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버라이어티쇼는 과연 <일밤>을 다시 일요일 밤의 강자로 일으켜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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