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드리블’은 누가 빠를까
  • 신명철 | 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10.06.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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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가능성 있는 선수 발굴하는 일종의 견본 시장…한국 ‘젊은 피’들에게도 좋은 기회

 

▲ 쏘나타 K리그 2010 울산 현대와 광주 상무의 경기에서 광주 김정우가 골을 넣고 있다. ⓒ뉴시스

월드컵은 전세계 축구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이다. 그런데 월드컵은 그냥 동경의 무대가 아니다. 이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쳐보이면 다른 대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부와 명성이 따른다. 월드컵에서는 전세계에서 공깨나 찬다는 선수들이 유수의 클럽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량을 겨룬다. 일종의 견본 시장이다.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33·알 힐랄) 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원도 있었지만, 월드컵 무대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아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축구 변방국 선수들이 흔히 거치는 과정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망주들은 이제는 이런 과정을 거쳐 국외 리그로 가지 않는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축구 수준이 세계적으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청용(22·볼턴), 기성용(21·셀틱 FC) 등 신세대 선수들은 선배들과 달리 월드컵 무대를 밟기 전에 이미 국외 리그로 진출했다. 박주영(25·AS 모나코)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스위스전에만 뛰었을 뿐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박주영의 프랑스 리그 진출도 월드컵이 계기가 되었다기보다는 국내 리그의 수준과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미 국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들은 남아공월드컵에서의 활약 여하에 따라 상위권 클럽 또는 상위권 리그 진출을 노릴 수 있다.

그리스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이정수(30·가시마 앤틀러스)는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의 한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일본의 한 스포츠 전문지는 이정수가 제시받은 연봉이 1억8천만 엔으로 가시마에서 받는 6천만 엔의 세 배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골 넣는 수비수로 J리그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이정수는 남아공월드컵 이후 또다시 일본 외 리그 또는 J리그의 다른 팀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몸값이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이청용은 한마디로 블루칩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 첫해에 5골 8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돌풍을 일으킨 이청용은 남아공월드컵에서도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미드필더로 손색없는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2009-2010시즌이 끝나기 직전 영국 언론 매체들은 프리미어리그의 ‘빅 4’ 가운데 하나인 리버풀이 8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마련해놓고 이청용을 영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청용은 지난해 이적료 2백20만 파운드와 연봉 15억원, 계약 기간 3년이라는 조건으로 FC 서울에서 볼턴으로 이적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이적료가 네 배 가까이 뛰었다. 이적료는 선수의 가치를 재는 또 하나의 잣대이다. 해마다 연봉을  조정하기로 한 이청용은 2009-2010시즌이 끝나기 전에 팀내 최고액 연봉자인 케빈 데이비스(약 48억원) 수준의 연봉을 요구했다. 이적이든 팀내 연봉 협상이든 칼자루는 이청용이 쥐고 있다.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기성용은 올해 1월1일을 기산점으로
4년 장기 계약을 맺고 FC 서울에서 셀틱으로 옮겼다. 셀틱은 이적료와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적료는 2백만 파운드 안팎으로 알려졌다. 기성용에게는 연봉이 문제가 아니다. 셀틱은 스코틀랜드 리그의 명문 클럽이지만, 기성용이 안주할 곳은 아니다. 남아공월드컵 일본 대표인 나카무라 순스케(32·요코하마 마리노스)는 셀틱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유럽 리그 ‘빅 3’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이때 몸값이 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주영이 뛰고 있는 프랑스 리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와 함께 유럽 ‘빅 3’ 리그의 바로 아래 수준이다. 프랑스 리그에서는 이미 정상급 공격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남아공월드컵에서 기량이 다시 한번 확인되면 몸값 상승은 물론 ‘빅 3’ 진출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박주영은 지난해 10월에 2013년 6월까지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했다. 연봉도 입단 첫해 40만 유로에서 80만 유로로 뛰어올랐다.

월드컵과 관련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몸값이 오른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 축구의 든든한 버팀목인 박지성이다. 2000년 6월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두 시즌 반 동안 뛰면서 받은 연봉은 4억~5억원 정도였다. 2010년 현재 박지성의 연봉은 환율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70억원 안팎이다. 10년 사이에 10배 이상 몸값이 뛰었다. 이 사이 박지성은 2002년 12월 네덜란드 리그 아인트호벤, 2005년 7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옮겼다. 이적할 때마다 연봉이 수직 상승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에 못지않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도 박지성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기량을 갈고 닦아 상위 리그로 잇달아 올라선 박지성은 남아공월드컵 대표팀의 막내인 이승렬(21·FC 서울)과 김보경(21·오이타 트리니타)에게 완벽한 본보기이다.

 

▲ 브라질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정대세가 브라질 마이콘과 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정대세도 유럽 진출에 청신호 켜져

남아공월드컵 무대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을 흘린 북한 대표팀의 정대세(26·가와사키 프론탈레)는 6월16일 브라질전을 통해 세계적인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J리그의 A급 선수는 대체로 1억 엔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대세는 월드컵을 발판으로 또 하나의 꿈인 유럽 리그 진출을 이룰 가능성이 커졌고, 그렇게 되면 몸값은 최소한 네댓 배는 오른다.     

국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달리 K리그 선수들의 연봉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한때 프로축구 선수의 연봉이 다른 프로 종목과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른바 거품이 빠지면서 국외 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A급 선수들의 연봉은 7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프로야구·프로농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연봉 또는 이적료와 관련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연봉 또는 이적료로 매기게 되는 선수들의 가치가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이 특정 국가의 축구 실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특정 선수의 실력을 100% 나타낸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남아공월드컵 초반 화제가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육군 일등병으로 연봉이 100만원이 되지 않는 김정우(28·광주 상무)와 연봉이 몇십억 원에 이르는 그리스 공격수 테오파니스 게카스(30·프랑크푸르트)의 몸값 비교였다. 물론 재미 삼아 화제로 올린 것이기는 하다. 김정우도 2006-2007년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뛸 때를 포함해 입대 전에는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프로축구 선수들은 군 복무 기간 동안 원 소속 구단에서 용돈조로 일정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입대하면 군 보류 수당(입대 전 연봉의 25%)을 받는다. 어쨌거나 이번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한국 대표 선수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을 것이다. 국외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도 있을 것이고, 유럽의 ‘빅 3’ 리그로 올라가는 선수도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배경으로 돈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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