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스런 베끼기 ‘원죄’는 시스템
  • 김봉현 | 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10.06.2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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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4집 앨범 표절 파문이 주는 교훈

지난 6월20일,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팬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최근작 <H-Logic>에 수록되어 있는 여섯 곡이 표절 곡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그동안 네티즌들이 문제를 제기해 온 작곡가 바누스의 곡들이 다른 곡을 도용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예상한 대로 각종 매체에서 많은 글이 쏟아져나왔다. 여러 갑론을박이 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쟁점을 통해 이번 사태를 정리해보았다.

 

▲ 가수 이효리가 최근 발표한 4집 앨범 수록곡 중 여섯 곡이 표절이었다고 시인했다.

 

■ 정말 표절이 맞나? | 당사자인 가수가 직접 인정했는데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표절 여부는 피해자 혹은 당사자의 인정 및 불인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인정한다고 표절 아닌 곡이 표절이 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표절 곡이 표절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 ‘음악적 차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가수는 부인하지만 표절인 경우는 있어도, 가수가 인정을 하는데 표절이 아닌 경우는 없다. 좀 삐딱하게 말하면 명백한 표절이라 인정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으니 시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6곡의 명백한 표절 혹은 도용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원곡을 들어보면 그냥 ‘번안’ 수준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묘하게 비껴갈 수 있는 요즘 시대에 마치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누스의 그 우직함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무모함에 치를 떨어야 하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완벽한 표절작’이라는 사실이다.

■ 이효리의 책임은 어디까지? |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에 의하면 이효리가 ‘사기’를 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의 검증된 히트 작곡가보다는 김도현, 이-트라이브(E-Tribe) 등 신인 작곡가들과 주로 작업해왔던 이효리는 이번에도 바누스와 라이언 전 등 무명 작곡가들과 작업해 앨범을 완성했다. 그러나 바누스의 곡들은 표절이었다. 앨범에 신선함을 입히려다가 오히려 큰 악재를 만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효리가 직접 작곡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 그녀 역시 피해자라고 볼 만한 소지가 있다.

하지만 이효리가 단순한 피해자만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앨범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스포츠를 보면, 감독은 직접 경기를 뛰지는 않지만 경기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효리에게도 이런 수준의 책임을 지우는 일은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녀는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였다. 곡을 받아 부르기만 하는 가수의 영역을 넘어 음악적으로 앨범에 더 깊숙이 관여하는 위치이다. 그렇다면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 이효리 4집 앨범 .

■ 음악 공부를 게을리한 결과? |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하는 것과 ‘이런 사태를 애초에 방지하지 못했음을 비난’하는 것은 다르다. 양보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더 철저함을 기해야 했다’라는 의견까지는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매체에서 필요 이상의, 그것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주장을 하고 있으니 문제이다.황당한 주장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는 출연하면서 정작 음악 공부는 게을리했기 때문에 네티즌도 찾아내는 표절 원곡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곡가가 이렇게 대놓고 베꼈음에도 표절된 원곡들을 사전에 찾아내지 못한 것은 프로듀서로서 그녀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언제나 말하기는 쉽다. 물론 실제로 이효리가 음악 공부를 게을리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도대체 음악 공부를 게을리한 것과 표절된 원곡을 찾아내는 일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효리가 몰랐던 표절된 원곡을 네티즌이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확한 목표 의식에 의거한 노동의 성과(?)’라고 보아야 옳다.

또한, 이번 일이 기존 표절 사태와 다른 점은, 표절 대상이 된 원곡들이 (영·미권 음악이 세계 중심임을 전제할 때) ‘주변부’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의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빌보드에서 히트한 곡을 몇 개월 후 영악하게 흉내 내어 들여와 문제가 되는 기존의 표절 시비와는 분명히 다르다. 언제나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는 자기가 당사자여도 납득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연 당신은, 심지어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 이름조차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이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사전에 완벽하게 찾아낼 자신이 있는가?

■ 결국은 시스템 보완의 문제로 | 따라서 변방(캐나다와 그리스는 우리에게는 음악적으로 분명 변방에 가깝다)의 표절된 원곡들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하는, 이효리 개인을 향한 지나친 비난은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작곡가의 선의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가요계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보편과 상식이 늘 통할 것으로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효리’라는 빅 스타를 대상으로 한 바누스의 거대한 사기극은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식 밖의 인물이 출현했을 때 우리 가요계는 그를 방지할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셀 수 없이 많은 노래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작곡가가 작정하고, 알려지지 않은 곡을 베껴 가수에게 제공하면 아무리 검증에 완벽을 기해도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모든 의혹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가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과 기획사의 행태를 윤리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대상은 결국 시스템이다. 이효리만 실컷 욕한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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