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류 사커’가 된 ‘아트 사커’
  • 파리·최정민 | 통신원 ()
  • 승인 2010.06.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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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선수 욕설 파문·최악 성적 남기고 침몰…국가 정체성 논란까지 불거지며 온 나라가 시끌

한때 ‘아트 사커’라는 찬사를 받았던 프랑스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1무2패로 A조 최하위라는 최악의 성적 때문만이 아니라 월드컵 사상 최초로 대표팀이 훈련을 거부하는 파업 소동을 일으켜 1998년 우승에 버금갈 만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남아공에게 2-1로 패한 후 프랑스의 앙드레 피에르 지냑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AP연합

 

“프랑스는 의사·선생도 파업을 하더니 이제는 대표팀 선수들까지도 파업을 한다.” 중국 언론은 이렇게 비꼬았다. 최근 중국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은 “제2의 프랑스 혁명이다”라고 대서특필했다.

사건의 발단은 프랑스 대표팀의 아넬카가 지난 멕시코와의 경기 전반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감독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다음 날 그것이 기사화되며 프랑스 축구협회의 징계를 받아 축출되면서 발생했다. 선수들은 라커룸에서의 대화가 언론에 흘러나간 것과 언론 보도만으로 선수를 징계한 협회측의 조치에 반발해 훈련을 거부했다. 사건 직후 프랑스의 주장인 에브라는 “문제는 아넬카가 아니며 이러한 사실을 유포시킨 내부의 배신자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다음 날 훈련장에 나타난 프랑스 대표팀은 팬들과 짧게 인사만을 나눈 뒤 연습장을 떠났고, 연습 장면이 아닌 코치와 에브라 주장의 격한 논쟁 장면이 전파를 탔다. 프랑스 축구 채널은 이 과정을 그대로 생중계했으며, 급기야 코치는 호루라기를 집어던지고 자리를 떠났고 단장은 사퇴하겠다며 연습장을 떠났다. 1998년 월드컵 우승 멤버인 이라가쥬는 프랑스 3과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것이 공상과학 영화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훈련 거부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프랑스 대표팀은 불안했다. 앙리의 손에 맞고 들어간 골로 예선을 가까스로 통과했고, 월드컵 직전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53%가 16강 진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욕설 파문과 훈련 거부로 국민들의 무관심이 분노로 바뀌자 정치권마저 다급해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현지의 로즐린 바슐로 체육부장관의 체류를 연장하도록 지시했으며, 러시아 방문 중 선수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마지막 경기였던 남아공과의 경기마저 2-1로 패하자 사르코지 대통령은 6월23일 체육부장관을 비롯한 관계 장관들을 엘리제로 불러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과 대표팀에 어떠한 재정적 후원도 금지하도록 조치했다. 이미 대표팀은 수당을 모두 반납한 상태였다.

선수들의 훈련 거부 사태에 대한 여론은 비판론이 대세이다. 1998년 월드컵 우승 당시 감독이었던 에메 자케와 대표팀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을 비롯한 축구계 인사들은 선수들의 행동에 대해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극도로 예민해지는 경기 중에 라커룸의 상황은 험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내부 분위기가 절대 밖으로 나오는 전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태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문제의 욕설을 대문짝만하게 1면 기사로 내보낸 프랑스 스포츠 일간 레퀴프의 보도에 대해서도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팀과 선수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던 도메네크 감독의 무능론과 선수들의 국가대표 자격 여부까지 문제 삼는 등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 남아공의 쿠말로 선수가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있다. ⓒEPA

사퇴 거부하는 축구협회장에게도 비난 봇물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지난 프랑스 지방선거의 화두였던 국가 정체성이 다시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선수들이 국가대표로서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표팀에 흑인이 너무 많다고 비난했던 극우 정당 및 다문화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우파 의원인 에릭 라울은 “아넬카는 축구의 신이 아니라 그라운드의 건달이 되었다”라고 비판했으며, 우파 지식인인 알랑 핀켈크로트는 “그들은 결코 프랑스를 대표하지 않는다”라고 전제한 뒤 “프랑스는 이 위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떨어져보아야한다”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더구나 좌파 출신인 라마 야드 인권부장관마저, 프랑스 2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표팀의 행동에는 국가대표로서의 어떠한 명예도 없었다”라고 전제하며 ‘대표팀이 국가라도 부르게 가르쳐야 한다’라는 우파의 입장까지도 옹호하고 나섰다. 반면, 레이몽 아롱 사회당 대변인은 사건당일 캬날 플뤼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경기는 경기일 뿐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태를 두고 프랑스 언론과 축구 관계자들은 대폭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현 축구협회의 회장인 쟝 피에르 에스칼레트는 “난파한 배를 두고 떠나는 선장은 없다”라고 말하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캬날 플뤼스의 해설자인 크리스토프 뒤가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가장 먼저 할 말은 사퇴였다. 축구협회, 기술위원, 선수 모두 다 바꿔야 한다”라고 성토했다.

한편, 캬날 플뤼스의 저명한 정치 평론가 쟝 프랑수아 아파티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이것은 우리 모두의 도덕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구에서 우리는 박치기한 지단을, 핸드볼로 골을 넣은 앙리를 누구도 엄중히 비판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는 장관이 친·인척에게 공관을 대여해도, 장관 공관의 담배 ‘시가’ 가격으로 1만2천 유로를 지출해도 그대로 장관직에 내버려두었다. 이번 사태에서 또한 어떤 도덕적인 책임감도 없는 우리는 모두 어쩌면 공범인 셈이다”라고 통탄했다. 축구 경기 중 라커룸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가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대표팀의 상징 동물은 장닭이다. 유럽인들이 로마 시대에 프랑스의 조상인 골족을 장닭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끄럽고 알도 못 낳는 장닭이 말 많고 시끄러운 프랑스인들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5천5백만의 철학자가 산다는, 말 많은 프랑스 사회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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