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성과주의 비판에 공감” 68%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7.0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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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서울 지역 경찰관 1백20명 설문조사 …“채수창 서장 사태는 ‘하극상’ 아닌 충정의 발로”

경찰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를 고문했다. ‘날개 꺾기’와 ‘재갈 물리기’ 등 독재 정권에서나 사용하던 수법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고문에 관련된 경찰관 네 명은 하루아침에 피의자 신분으로 둔갑해 수갑을 찼다.

누가 ‘고문의 악령’을 되살리게 했을까. 서울의 한 현직 경찰서장이 이에 대해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48)이다. 채서장은 지난 6월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휘부의 실적주의가 양천서 고문을 불러왔다”라며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직접 겨냥해 사퇴를 촉구했다. 조청장의 무리한 성과주의가 결국 양천경찰서에서의 고문을 불러왔다는 말이다. 채서장 자신도 사퇴하겠다고 했다.

경찰청은 채서장의 발언을 ‘하극상’으로 보고 즉각 그의 직위를 해제했으며, 채서장은 7월1일 경찰청에 나와 감찰조사를 받았다. 향후 중징계가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일선 경찰관은 지휘부와는 다른 시각을 보였다. 채서장의 발언이 “용기 있는 충정이다”라며 그를 옹호했고, 인터넷 경찰 커뮤니티에는 ‘조현오식 성과주의’를 비판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채서장은 왜 정상적인 건의 절차 대신 ‘기자회견’이라는 무리수를 택했고, 경찰관들은 어째서 그를 옹호하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서울경찰청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이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지난 6월29일과 30일 양일간에 걸쳐 실시했으며, 조사 방식은 전화와 인터넷 경찰 커뮤니티 그리고 사이버경찰청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경위급 이상 51명, 경위급 미만 69명 등 1백20명의 경찰관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서울 경찰관들은 채수창 서장의 발언을 ‘하극상’이 아니라 ‘충정’으로 보았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동반 퇴진 발언’에 대해 ‘상관에 대한 하극상이다’라고 응답한 수는 27명(22.5%)에 불과했다. 반면 ‘조직에 대한 충정이다’는 79명(65.8%)으로 절반을 훨씬 넘었다.

‘경찰 간부가 할 수 있는 쓴소리에 불과하다’는 12명(10%)까지 포함하면 전체 91명(75.8%)이 채서장의 발언에 동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경찰관은 2명(1.7%)이었다.

채수창 서장은 서울경찰청 내 건의 시스템을 무시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조현오 청장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도 경찰관들은 분명한 시각을 나타냈다. ‘현행 건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다’가 79명(65.8%)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개선책을 건의했어야 한다’는 25명(20.8%)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내 건의 시스템도 문제가 있고, 채서장의 방법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양비론적 시각을 보인 응답자는 16명(13.3%)이다. 이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의 건의 시스템에 대해 경찰관들의 불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찰청은 채수창 서장에게 중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이미 감찰조사를 끝내고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경찰관들은 채서장의 징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징계해야 한다’는 응답이 26명(21.7%)인 반면 ‘징계하면 안 된다’라는 응답자는 41명(34.2%)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많았다. ‘오히려 그를 요직에 배치해야 한다’라는 응답자가 43명(35.8%)으로 가장 많이 나온 것이다. 9명(7.5%)의 경찰관은 ‘잘 모르겠다’라며 답변을 유보했다.

 

▲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7월1일 감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 정복 차림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반이 “조현오 청장만 퇴진해야 한다”

채수창 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조현오 청장과의 동반 퇴진을 요구했다. 부하가 상관의 거취를 직접적으로 거명한 것은 ‘하극상’으로도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채서장은 사직서를 냈고, 서울경찰청은 직위만 해제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경찰관들은 ‘둘 다 퇴진해야 한다’가 20명(16.7%)인 데 반해 ‘조현오 청장만 퇴진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60명(50%)에 달했다. 절반 이상이 조청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채수창 서장만 퇴진해야 한다’라는 응답은 조청장 퇴진보다 34명(28.3%)이나 적은 26명(21.7%)이었다. ‘잘 모르겠다’라는 응답도 14명(11.7%)이나 되었다. 결과로 보면 조청장이 일선 경찰관들의 신뢰를 얻는 데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채수창 서장 발언 파동’의 핵심은 ‘성과주의 비판’이다. 채서장은 양천경찰서의 고문도 결국 조현오 청장의 ‘성과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반면, 조현오 청장은 “성과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일선 경찰서 중간 관리자들의 승진 욕심이 직원들을 ‘실적 올리기’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관들은 조청장보다는 채서장의 말에 무게를 실었다. 채서장이 조현오 청장을 비롯한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무리한 실적주의’를 비판한 것에 대해 82명(68.3%)이 ‘공감한다’라고 답변했다. 반면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19명(15.8%)뿐이었다. ‘양천서 고문이 무리한 실적과 관련이 있지만, 지휘부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한 응답자는 16명(13.3%)이었다. 이 질문이 ‘무리한 실적’을 전제로 한 것임을 감안할 때 경찰관 98명(82.1%)이 조청장의 ‘성과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경찰관은 3명(2.5%)이었다.

그렇다면 일선 경찰관들의 ‘실적 압박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다. ‘조현오 청장이 부임한 후 실적 압박이 심해졌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경찰관은 82명(68.3%)에 달했다. ‘아니다’라는 의견은 21명(17.5%)이었다. ‘실적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경찰에게 실적 경쟁은 당연하다’라는 답변은 11명(9.2%)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조청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경찰관들의 실적 압박이 훨씬 심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잘 모르겠다’라고 한 사람은 5명(4.2%)이었고, ‘무응답’은 한 명(0.8%)이다. 

 

“체질 개선 위해 지휘부가 바뀌어야” 66%

경찰관들의 실적 압박이 크다면 ‘실적 평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현오 청장 체제하의 현행 실적 평가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경찰관들은 ‘전면 수정해야 한다’ 73명(60.8%), ‘일부 수정해야 한다’ 43명(35.8%)이었다. 그러니까 전체 1백20명 가운데 1백16명(96.6%)이 조청장 체제의 실적 평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수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응답한 경찰관은 1명(0.8%)에 불과했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는 세 명(2.5%)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경사)은 “지금의 서울경찰청장은 성과주의로 국민과 경찰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예로 경기청장 당시 성과는 높이 달성했지만 고객 만족도는 뒤에서 두 번째였다. 모든 현장 경찰관과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채서장의 용기 있는 기자회견을 보며 또 다른 희망의 불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일선 경찰서의 한 경정은 “국민을 위해 경찰이 존재하고, 범죄를 예방하고 검거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가치이다. 도둑 잘 잡고 강도 예방 잘하자는데 성과 평가가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성과 평가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채수창 서장은 경찰대 1기 출신이다. 채서장의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서는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알력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렇다’라는 답변이 11명(9.2%)이었고, ‘아니다’는 51명(42.5%)이었다. ‘채서장의 충정을 폄하하려는 것이다’라는 답변이 42명(35%)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1백20명 중 93명(77.5%)의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잘 모르겠다’와 무응답은 각각 14명(11.7%), 두 명(1.7%)이었다.

채서장은 지난 6월28일 기자회견 이후 경찰청의 감찰조사를 거부해 오다 7월1일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조사를 받았다. 

‘사상 초유의 항명 파동’으로 불린 채수창 서장의 이번 행동이 경찰 조직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에 대해 ‘경찰 개혁을 위해 도움이 되었다’ 66명(55%), ‘내부 혼란만 초래했다’ 11명(9.2%)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서장의 행동에 대해 일선 경찰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인 것을 알 수 있다. ‘경찰 개혁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내부 혼란도 야기했다’라고 한 응답자도 38명(31.7%)이나 되었다. ‘잘 모르겠다’ 두 명(1.7%)과 ‘무응답’ 두 명(1.7%)이었다.

경찰관들은 조직 내에 어떤 변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을까. ‘조직 체질 개선을 위해 지휘부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대답이 79명(65.8%)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수사 관행 등 고질적인 문제 개선’ 19명(15.8%)이었으며, ‘평가 시스템 변화’가 15명(12.5%)으로 뒤를 이었다. ‘잘 모르겠다’라며 대답을 유보한 경찰관도 일곱 명(5.8%)이나 되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경위)은 “대다수 경찰관은 감찰조사가 두려워 내부통신망, 언론사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고, 현재의 지휘부는 감찰조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현재 경찰 조직에 언론의 자유는 없으며, 소통도 없다. 한마디로 암흑의 시대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의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경찰청은 현장 직원들의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직원들이 집중 감찰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서 향후 집중 감찰을 폐지하고 네가티브적인 요소를 배제할 예정이다. 서울 경찰의 최종 목표는 현장 직원들의 부담을 줄이면서 시민들의 치안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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