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을’에서 꿈꾸는 ‘한여름밤의 모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7.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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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 7·28 재선거 출마 선언 중앙당 지원 제안에 “나 혼자 하겠다” 비장함 보여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승부수를 띄웠다. 자신을 3선 중진으로 만들어준 서울 은평 을 재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다. 이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있다. 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가는 분위기이다”라고 전했다. 결전의 날은 7월28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상대할 후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거론되는 후보들은 이 전 위원장과 비교해보면 ‘체급’이 다르다. 그로서는 이겨도 본전인 게임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장상·윤덕홍 최고위원과 고연호 지역위원장, 송미화 전 서울시의원, 최창환 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등 다섯 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러나 손학규·김근태 상임고문 등 거물급 인사 차출론과 외부 영입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참여당에서는 천호선 최고위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 재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 의사를 밝힌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6월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퇴임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전 포인트는 ‘이 전 위원장이 과연 생환할까’에 있다.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나라당 친박계의 한 인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지 않았나. 은평구에서 보여준 표심만 봐도 이 전 위원장이 당선하기는 어렵다. 표심이라는 것이 한두 달 만에 확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 전 위원장측도 쉽지 않은 선거라고 예상한다. 지난 7월1일 이 전 위원장은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면서 “힘든 선거이다”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전 위원장의 핵심 측근은 “여론조사는 믿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난 2008년 총선과 이번 지방선거라는 객관적 자료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뒤졌던 그 자료를 바탕에 깔고 시작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사뭇 비장감마저 감돈다.

중립 성향의 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은 “이 전 위원장의 선거가 무난하게 가는 것을 전제로 하면, 결국 구도가 문제이다. 누가 유리한 진영을 짜느냐가 일단 관건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전국적 이슈’로 만들려는 야권의 공격과 ‘지역적 이슈’로 막으려는 이 전 위원장측의 방어는 출마 선언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 전 위원장의 출마를 은평 을 재선거 자체에 한정 지어 해석하지 않는다. 은평 을 선거를 전국적 이슈로 만들어 ‘MB 정권 심판’ 구도로 가져가야 자신들이 유리하다. 전현희 민주당 부대변인은 “이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의 2인자로 오만하고 부적절한 많은 언행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다”라고 규정하며 그에게 ‘2인자’ 딱지를 붙였다. 

한나라당도 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총력 지원 방침을 세웠다. 친박계 역시 선거가 걸린 만큼 굳이 딴죽을 걸지 않겠다는 분위기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재오를 반드시 당선시키겠다”라고 결의를 다졌지만, 오히려 이 전 위원장이 “나 혼자 하겠다”라며 거절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앙당이 나설 경우 은평 을 선거가 전국판 선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지역 밀착형 선거를 택했다. ‘철저하게 낮은 자세로 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이 전 위원장측 선거 전략의 핵심이다.

친이계, ‘친박’ 기세 꺽고 야당 공세 차단할 ‘양수겸장’ 기대

은평 을 재선거는 이 전 위원장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낙선할 경우 정치 생명은 위태로워진다. 한 측근은 “이 양반은 지금 떨어지면 진짜로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자신과 당이 안고 있는 문제를 동시에 ‘돌파’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전 위원장은 “내 지역에 숙명이 온다면 피하지 않겠다”라고 항상 말해왔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의원은 “원외라는 한계를 지역구라는 숙명으로 돌파할 기회가 왔다.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압박받고 있는 당내 친이계를 고무시키고 끊임없이 거사를 도모하고 있는 친박계를 잠재워야 하는 숙제도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밖에서 끊임없이 여당을 압박해 오는 야권의 공세 역시 은평 을에서 승리하면 차단할 수 있다. 이번 출마는 ‘양수겸장’의 한 수인 셈이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 전 위원장측은 당선 이후를 내다보는 시선을 부담스러워 한다. ‘일단 모든 것은 당선부터’ 하고 난 다음에 생각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새 지도부가 들어설 것이고 이 전 위원장 역시 백의종군하겠다는 입장인데, 외부에서 역학 관계를 거론하며 너무 앞서가는 것이 불만스럽다는 입장이다.

신중해진 만큼 이 전 위원장은 당선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과의 스킨십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은평 뉴타운에 입주한 30~40대들은 외지인들이 상당수로, 이 전 위원장 입장에서도 처음 대면하는 유권자들이다. 이 전 위원장측 관계자는 “생각보다 이들의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공을 많이 들여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나라당의 상징인 파란색 옷을 입지 않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빨간색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고려할 정도로 절박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지방선거 표심, 이 전 위원장에겐 빨간불

당선 무효형을 받았고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이제 정치 낭인이지만 외부 활동은 여전하다. 지난해 ‘김광수 경제연구소 고문’으로 합류했고 12월에는 <도덕이 밥 먹여주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특강도 했고 유엔에서 열리는 ‘글로벌 컴팩트 리더스 서밋’에도 참가하고 왔다. 문 전 대표는 지역민들과 스킨십이 약했다는 평을 들었다. 은평 을에서 당선되었지만 중앙 정치나 외부 활동에 주력했다. 7·28 재선거가 확정되었을 때 은평 을에는 ‘문국현에 대한 연민’과 ‘문국현을 선택한 일에 대한 학습 효과’가 동시에 존재했다. 이재오 전 위원장 쪽에서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후자이다.

그럼에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은평 을은 여전히 강한 야성을 보여주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은평 을 유권자 가운데 절반 정도인 10만2천5백여 명이 투표했다. 이 중 한명숙 민주당 후보는 5만2백여 표(50.3%)를 얻어 4만6천5백여 표(45.3%)를 얻은 오세훈 후보에 약 3.7% 포인트 앞섰다. 은평구청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5만2천100여 표(50.8%)를 얻어 한나라당 김도백 후보(4만1천4백여표, 40.4%)를 10% 포인트 이상이나 앞서며 시장 선거보다 더 큰 격차를 보여주었다.

정당 선호도와 가장 근접한 결과로 볼 수 있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 결과 역시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이기지 못했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은 4만4천6백46표(43.5%)를 얻어 4만5백62표(39.5%)를 얻은 한나라당을 4% 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기초의원 비례대표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한나라당이 얻은 4만1천3백46표(40.3%)의 득표수는 민주당의 4만8천2백83표(47.1%)에 비해 7천표가량 적었다. 인물을 놓고 벌인 선거와 정당을 놓고 벌인 선거에서 모두 한나라당이 완패했다.

내심 은평 지역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자신했었다. 그 밑바탕에는 새로 입주한 은평 뉴타운 입주자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수억 원짜리 아파트에 입주하는 중산층 이상인 계층이기에 한나라당 성향이 강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뉴타운 입주자들 중에는 30~40대 연령이 많아 야당 선호가 강했고, 의외로 주택 소유자보다는 임대 거주자가 많아 주택 소유자의 지지가 많은 한나라당에게는 플러스 요인이 되지 못했다. 일단 지방선거 때 드러난 은평 표심만 놓고 보면 이 전 위원장에게 좋은 신호는 없어 보인다. 다만, 재선거는 지방선거와 그 성격이 달라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일단 야권의 필승 무기였던 야권 단일화가 이루어질 것인지, 만일 이루어진다면 단일화 후보는 누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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