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세론’ 굳히느냐, 뒤집히느냐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7.0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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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방선거 때에도 대구에서 칩거하며 조용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에 직접 나선 것은 절묘한 ‘승부수’였다. 친박계 내부에서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박 전 대표는 6월30일 트위터를 개설해 대중과의 소통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박 전 대표의 대선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현실이자 미래인 친이계 대 친박계의 ‘전쟁’도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더 달아오를 양 계파의 힘겨루기 막전막후.

 

“박근혜 전 대표와 같이 갈 수도 있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박 전 대표를 받아들이기가 진정 어려운 것인가?”

“대통령만 포용 정치를 하고 소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권 주자라면, 지도자라면 그 역시도 포용 정치와 소통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그게 없다. 이것은 대통령과의 관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지난 7월1일 수도권의 한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말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말은 결국 지금의 대선 주자 구도는 향후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었다. 현재 박 전 대표가 대선 주자군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앞으로 충분히 뒤집을 수도 있다는 다짐으로 받아들여진다. 친이계 일각에서 “박 전 대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단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어디 두고 보자”라는 식이다. 한쪽에서는 은근한 초조감이, 다른 한쪽에서는 묘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6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에 직접 나선 것은 절묘한 ‘승부수’였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박 전 대표 혼자 내린 결정이었다. 계파 중진인 홍사덕 의원이 황급히 박 전 대표를 설득하러 갔다가, 오히려 본인이 설득당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자기 자리에 되돌아오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박 전 대표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전한다. “디지털 혁명에 의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20·30대 젊은 층의 문화에 함께 동화되어야 한다”라는 ‘조언’이 전달되었다는 후문이다. 6월30일 박 전 대표는 ‘안녕하십니까, 박근혜입니다. 저도 이제 트위터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트위터를 개설했다. 이것을 기점으로 박 전 대표의 대선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박 전 대표의 향후 이미지 전략을 ‘중심’과 ‘대세’라는 두 단어로 압축한다. “순간순간 변하는 정치 환경에도 원칙의 흔들림 없이 굳건히 자기중심을 지키는 것과 ‘결국은 박근혜밖에 없다’라는 대세론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2008년만 해도 박 전 대표의 이미지 전략은 ‘원칙’과 ‘신비주의’였다. 현 정부의 집권 초기에는 자신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신비주의를 벗어버리고 대세 몰이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포용과 소통의 부족을 지적하는 친이계의 비판에 대해 이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지금 직접 나서서 의원들 만나고 다니고, 설득하고 다니고, 이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이런 정치를 하면, 그것은 박근혜가 아니고 ‘김근혜’이다. 박근혜식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고, 그 중심을 굳건히 지킬 뿐이다”라고 반박한다. 일각에서 말하는 ‘김영삼 공식’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는 지금 박 전 대표의 상황을 20년 전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상황과 곧잘 비교한다. 비주류 ‘민주계’의 수장이었던 김대표는 주류 ‘민정계’를 각개격파하고 대권을 쟁취했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범친이계 성향과 중도파 의원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끓어올랐다. 한때 오는 7월14일 치러질 전당대회에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 지난해 12월2일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MB의 세대교체론은 ‘박근혜 끌어내리기’ ‘차세대 띄우기’ 양동 작전?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행보는 굳이 지금 이런 무리수를 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보는 셈이다. 이 인사는 “당분간은 이런 구도로 가는 것이 맞다. 국민을 보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부에서 싸울 이유가 없다. 관건은 대세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 대표로) 안상수 의원이든 홍준표 의원이든,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때 지난 2008년 총선 때처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미래 권력’이 확실히 존재하는데, 안대표든 홍대표든 우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궁지에 몰린 친이계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조심스런 분위기도 감지된다. 친박계인 조원진 의원은 “이제 세종시 문제도 마무리되었으니, (친이와 친박 간) 앞으로 큰 충돌이야 있겠나. 현 정부가 국정 수행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에 흐르는 긴장감 또한 만만치 않다. 이번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친박계 의원의 명단이 사실상 친이계 쪽의 ‘살생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즉,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의원실에서는 벌써부터 2012년 총선에 대비한 슬로건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친박이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2012년 연초의 상황에 따라서는 결별도 각오해야 한다는 비장한 목소리도 나온다. 탈당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결국, 관건은 2012년 총선 이전에 박 전 대표가 지금과 같은 ‘부동의 1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박 전 대표로서는 이제 ‘굳히기’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친이계와 친박계의 ‘전쟁’은 한나라당의 현실이고, 미래이다. 일각에서는 “결국,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 막판에는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얘기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는 쪽에 표를 던진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갈수록 친이계와 친박계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나마 유일한 가능성은 친박계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것인데, 그럴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다”라고 전망했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이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점점 약화될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결국, 친이계의 전략은 양 계파 간의 갈등을 최대한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박 전 대표에 맞 설 수 있는 강력한 대항마를 내세워 한번 정면 대결을 펼쳐보는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 대항마로 현재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인물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저변에는 ‘박근혜 끌어내리기’와 ‘차세대 주자 띄우기’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문수 지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신율 교수는 “오시장은 당내 기반이 취약한 반면, 김지사 뒤에는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있다. 그동안 이재오-김문수 콤비가 심어놓은 당내 기반이 만만치 않다”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동지적 관계가 남다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말 김지사가 사실상 당으로의 복귀 쪽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가, 막판에 도지사 재출마로 선회한 것도 그 배경에 이재오 전 위원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친이계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당권-이재오, 대권-김문수’ 구도를 말하기도 한다. 향후 친이계가 ‘친이명박계’가 아닌 ‘친이재오계’가 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물론 이는 이 전 위원장이 오는 7·28 재보선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만큼, 아직 변수는 존재한다.

반면에 여전히 오세훈 시장의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철희 부소장은 “김문수 지사의 경우, 과거 운동권 전력을 문제 삼아 보수층에서 거부감을 표시할 수 있다”라고 전망한다. 그는 “누가 되었든 간에 박 전 대표에 맞서는 대항마가 친이계의 새로운 리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양 계파 간의 대결은 대통령의 레임덕과 상관없이 끝까지 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좀 더 흥미로운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만약 2012년 대선 구도가 여권의 박근혜, 야권의 손학규 구도로 간다면, 이대통령은 오히려 손학규 전 대표를 밀 수도 있다. 이것이 이른바 정치권 밑바닥에서 떠도는 ‘MB-손’ 빅딜설이다”라고 밝혔다. 이대통령의 박 전 대표에 대한 불신감과 앙금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것이다. “차라리 정권을 민주당에 내줄망정, 친박에게는 못 준다”라는 친이계 내부의 다분히 감정적인 언사가 그냥 나오는 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 보복’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때문에 민주당이 전직 대통령을 맘껏 난도질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깔려 있다.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한’을 품은 친박계라는 것이다. 이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어젠다로 개헌론에 계속 집착하는 것도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개헌론의 저변에도 결국은 ‘박근혜 포위’ 작전이 도사리고 있다. 이철희 부소장은 “친이계가 절대 호락호락하게 그냥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소는 짓고 있지만, 박 전 대표의 앞길도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친박계 ‘+α’는 어디로?

한나라당 내의 첨예한 친이계-친박계 갈등 구조 속에서 치러질 오는 7월14일의 전당대회는 향후 정국에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모양새는 친이계의 대표 주자인 안상수 의원과 범계파를 표방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맞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친박계에서는 서병수 의원이 대표 주자 격으로 나서고 있지만, 인지도에서나 대의원 표에서 1위를 넘보기에는 다소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친박계 내부에서 ‘서병수+α(플러스알파)’의 ‘플러스알파’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1인 2표를 행사하는 전당대회에서 나머지 한 표의 향방이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박근혜 전 대표가 서병수 의원을 지원한다는 것은 이심전심으로 다 알고 있다. 한 표는 서의원 쪽으로 갈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표를 어디에 행사할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친박계 후보를 사전에 2명으로 교통정리해서 2명을 확실히 당선권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당 대표 가운데 가능성이 있는 홍준표 의원을 밀어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라고 전했다.

이 인사는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MB 쪽에서 최태민 목사 건 등 ‘박근혜 흠집 내기’ 네거티브 전략을 펼칠 때, 오히려 홍준표 후보 쪽에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라며 우리 쪽을 도와준 일을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편향된 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라며 홍후보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그는 “홍의원의 경우 경남 창녕 출신이고 서울에서 4선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TK(대구·경북) 인물이다. 중·고등학교(영남중-영남고)를 모두 대구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TK 몫으로 홍의원을 밀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당내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 원장측이 결국 안상수 의원을 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역시 친이계 핵심 인사인 정두언 의원의 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의 친이계 초선 의원은 “대의원들을 접촉해보면 밑바닥 정서에서 상당한 동요가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안상수 의원이 친이계로서 선명도가 더 짙고 안정감도 있지만,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안 맞는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다. 반면에 홍준표 의원은 시원 시원하고 좋지만, 또 너무 중구난방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위에서 이렇게 가자고 해서 과거처럼 그렇게 우루루 몰려가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예측이 어렵다”라고 전했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 내 밑바닥 정서의 변화가 확연히 드러날 전망이고 보면, 자칫 지난 지방선거에 이은 또 하나의 충격파가 여당을 강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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