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금맥 꿰뚫는 ‘작은 거인’들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7.14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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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투자 고수’들의 투자 비법 / 업계 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에 우선 주목하는 등 기본 원칙에 충실

 

▲ 이화여대 투자동아리(EIA) 소속 학생들이 기업 가치 측정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대학생 투자동아리의 연평균 수익률은 20%를 상회할 정도로 높다. ‘대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주식 투자냐’라고 핀잔을 하려 한다면, 그 전에 알아두어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들의 높은 수익률은 끊임없는 공부와 토론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책에서 배운 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도출해낸 분석이 맞는지, 틀린지를 주식 투자의 수익률로 평가받는다. 살아 있는 공부를 하고 있다”라는 황용주 서울대 투자연구회(SMIC) 회장(통계 05학번)의 말대로 이들은 현재 ‘열공’ 중이다. <시사저널>은 서울대 투자연구회(SMIC), 고려대 가치투자동아리(KUVIC), 연세대 가치투자그룹(YIG), 서강대 투자동아리(SRS), 이화여대 투자동아리(EIA) 등 다섯 개 대학의 투자동아리 회장과 회원들을 만나 ‘열공’을 통해 터득한 주식 투자 공부 비법을 들어보았다.

고려대 KUVIC 소속 회원인 이민규씨(식품자원경제 06학번)는 2009년 9월, 펀드운용팀장을 맡았을 때 대박 종목을 찾아냈다. 현재 5백%의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는 유진테크이다. 평소 경기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삼성전자에 주목했다. 하이닉스와의 기술 경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해 호재가 예상되는 데다가 마침 스마트폰을 계기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삼성전자가 생산 설비를 늘릴 것이라는 판단 아래 반도체 설비 납품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이오테크닉스, 고영 그리고 유진테크 등 세 개의 반도체 부품업체가 눈에 들어왔고, 그는 유진테크를 선택했다. 유진테크는 2년간 적자를 거듭한 탓에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주가 4천원에 매수한 유진테크는 6개월 만에 9천원으로 뛰어올랐다. 다시 6개월이 지난 지금, 유진테크는 1만6천원에서 소폭의 상승과 하락을 오가고 있다.

KUVIC이 1천만원의 자금 운용으로 1년6개월 동안 거둔 누적 수익률은 27%로 아마추어치고는 나쁘지 않다. 업계 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에 우선 주목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히 따른 결과이다. KUVIC이 현재 중장비업체인 혜인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건설업 경기가 좋지 않아서다. 오두균 펀드운용팀장(한문 05학번)은 “건설 경기가 좋지 않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토목 경기가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토목 경기가 상승세를 탈 때 높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이 혜인이라는 판단 아래 현재 2백만원을 투자하고 있다. 3천8백원에 매수했는데 6천원이 되면 매도할 계획이다. 내년 후반기 정도 되면 목표가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주은환·황용주·송종은 서울대 투자연구회(SMIC) 학생들, 김호철 연세대 가치투자그룹(YIG) 전 회장, 임동민·김진성 고려대 가치투자동아리(KUVIC) 전·현회장. ⓒ시사저널 유장훈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까지 써보고 투자 대상 결정하기도

대학생이다 보니 귀가 번쩍 뜨일 만한 기업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실생활에서 얻는 단순한 아이디어와 전문가도 울고 갈 정도의 기업 분석으로 이런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서강대 투자동아리(SRS)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SRS가 최근 투자한 한국제지는 우연한 기회로 발견하게 되었다. 서강대는 프린터를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대신 복사용지는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 SRS의 한 회원이 수십 장의 보고서를 복사하기 위해 복사용지를 사던 중 우스갯소리로 “복사용지를 대량으로 사와서 장당 10원씩 더 붙여서 팔아도 돈이 되겠다”라고 한마디 툭 던지자 투자동아리 회원답게 복사용지 회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곧이어 기업 분석이 뒤따랐다. 그 과정은 펀드매니저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했다. 일단 뉴스 자료를 통해 펄프 공급에 차질이 생겨 복사지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성장 가능성을 발견한 회원들은 한국제지의 사업보고서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한국제지가 펄프 공급은 어디서 받는지, 어떤 공정을 거쳐서 어디에 납품하는지도 확인했다.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자 재무제표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부족한 정보는 세계적인 펄프제지 관련 잡지인 <RISI>와 한국제지공업협회를 통해 보충했다. 송지훈 SRS 전 부회장(경제 09학번)은 “극비 정보를 통해 한 방을 노리는 것은 개미 투자자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워렌 버핏처럼 돈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점진적인 수익을 얻어 복리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이 성공 비결이다”라고 말했다.

순전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발견한 기업도 있다. 바로 아모레퍼시픽이다. 민감한 피부로 고민이 많았던 SRS 소속 여성 회원은 아모레퍼시픽에서 생산하는 화장품으로 바꾸면서 고민을 덜어냈다. ‘민감한 피부에 맞을 정도면 제품력이 상당히 좋은 것이다’라는 판단이 들자 이 기업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아모레퍼시픽은 투자 자문사에서도 눈덩이형 기업으로 분류해 장기 투자를 권하는 종목이다. 송충섭 SRS 전 회장(경제 07학번)은 “기업 보고서는 3개월 뒤에 나온다. 그러면 매수 시점을 놓칠 때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 써본 뒤에 평가가 좋은 것은 발전 가능성이 큰 기업이다. 이렇게 접근한 기업에게서 높은 수익을 낸 적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8백만원을 운용하고 있는 SRS는 4월부터 지금까지 12%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서울대 투자연구회(SMIC)는 매수 시점을 잘 잡아 비교적 높은 수익을 거두었다. SMIC는 2007년부터 중국원양자원과 메디톡스에 투자해 34%(지난 1월4일 기준)의 수익을 올렸다. SMIC가 중국원양자원에 주목한 것은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는 강점 때문이었다. 중국원양자원은 우럭바리·도미·상어 등 고급 어종을 공급하는 업체로, 없어서 팔지 못한다는 우럭바리를 거의 독과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해 중국 주식 전체가 급락하면서 저평가 국면에 접어들자 바로 매수에 나섰다. 황용주 SMIC 회장(통계 05학번)은 “수익률이 높은 기업은 늘 관심 대상이다. 하락할 때 매수에 나서면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시황에 따라 단기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 상황과 시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대의 수익률을 뽑아낼 수 있는 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서강대 투자동아리(SRS) 소속 학생들이 기업 분석과 관련한 토론을 위해 강의실에 모였다. ⓒ시사저널 유장훈

시장 논리·분석 보고서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아

대학생 투자동아리에게는 공통된 경험이 있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투자 전문가들이 놓쳤던 기업들을 발굴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높은 수익률을 올렸던 기분 좋은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주은환 SMIC 리서치팀장(전기공학 06학번)은 “현업에 있는 펀드 매니저들은 정보가 많은 반면에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은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맞든 틀리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시장 논리와 시중에 나와 있는 기업 분석 보고서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더라도 눈치 볼 일이 없다”라며 대학생들의 강점을 피력했다. 실제 SMIC는 한샘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지난 6월1일 개최된 ‘제2회 대학교 투자동아리 리서치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주팀장은 “가구 제조회사인 한샘이 유통회사로 변신하면서 제휴 점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성장성에 주목했다. 기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우승했다”라고 회고했다.

연세대 가치투자그룹(YIG)은 역발상으로 100%에 육박하는 높은 수익률을 거둔 경험이 있다. 동아리 내에서 회원들 간의 경쟁을 북돋우기 위해 이벤트성 리서치대회에서 건진 옥석 같은 기업 덕분이었다. 삼일기업공사가 바로 그 대상이다. 삼일기업공사는 당시 주식 거래량이 하루 7백주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건설업체였다. 해외 수주 없이 국내 수주만 받던 기업으로 해외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설업계 특성을 감안하면 외형 확대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YIG 회원들은 오히려 이점에 주목했다. 김호철 YIG 전 회장(경영 04학번)은 “쓸데없이 몸집을 늘리는 기업보다 내실 있게 국내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기업이 수익성이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2009년 3분기 말에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바로 투자에 나섰고, 94%의 수익률을 기록한 뒤 매도했다”라며 YIG의 최고 전적을 전했다.

이화여대 투자동아리(EIA)는 여대라는 특성상 여성용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통념을 뒤집는다. EIA가 주목하는 기업은 현대·기아자동차와 덕산하이메탈 등 자동차 관련 주와 유기발광다이오드 재료 생산업체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백만원을 운용해 연평균 16%의 수익률을 올린 바 있다. 지금은 직접 투자를 하고 있지 않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학교 교수는 물론 다른 동아리 회장들 가운데도 투자 동아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시사저널>이 만난 5개 투자동아리 가운데 서강대를 제외한 4개 대학이 모두 중앙동아리연합회에 정식 등록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이희환 EIA 회장(통계 08학번)은 “주식 투자 문화가 성숙되면 투자동아리를 보는 시선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투자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투자동아리에 들어가면 경제 관념은 물론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도록 내실을 다져나가는 것이 EIA의 올해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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