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계의 ‘빛나는 별’들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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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전영기

펀드매니저의 실력은 곧 펀드 수익률이다. 이들은 날마다 피 말리는 시험을 치르고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소수점 이하 둘째자리까지 따져 일등에서 꼴등까지 한 줄로 세워 순위를 매긴다. 남들보다 성적이 좋은 날은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아져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쭐해진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말하는 이용범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4팀장의 고백처럼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 바로 펀드매니저이다. 그렇기 때문에 3년간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낸다는 것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얻기 힘든 결과이다. <시사저널>은 스타 펀드매니저 10인을 추려내기 위해 펀드평가사 제로인으로부터 주식형 펀드 가운데 지난 3년간 수익률이 가장 높은 10개 종목(2010년 7월1일 기준)의 목록을 입수했다. 순위는 수익률과 변동성(위험)을 동시에 고려한 위험조정수익률 순이다. 상위 10위에 오른 펀드의 3년간 평균 수익률은 22%로 벤치마크인 코스피200 대비 20% 초과 수익을 거뒀다. 평가는 매달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위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현 제도에서는 펀드매니저 개개인의 수익률을 알 수 없다. 때문에 상위 10위권 종목을 주도적으로 운용한 펀드매니저를 스타 펀드매니저 10인으로 추려냈다.

펀드매니저 개개인의 펀드 운용 이력, 운용 내역과 성과는 ‘펀드 공시 제도 개선안’이 시행되는 오는 8월부터 공시된다. 스타 펀드매니저라고 해서 승승장구만 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에서 가장 큰 교훈을 얻는다는 명언처럼 거의가 뼈아픈 실패를 딛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삼성 당신을 위한 코리아 대표그룹’ 펀드로20%가 넘는 수익률을 올린 남동준 삼성자산운용 2본부장조차도 3년간 단 한 번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던 암흑기가 있었다.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1996년 펀드매니저로 전향하면서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남본부장은 “주식, 파생상품, 글로벌주식예탁증서(GDR)까지 모든 상품에 손을 댔다.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학적 계산으로 쉬운 답을 얻어 투자에 나섰다. 손실이 많아질수록 더 일에 매달렸고 나중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이 악몽의 시간은 끝이 났다”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병실에 누워 천장을 보던 찰나 ‘남들과 똑같은 생각으로는 남들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투자하려는 회사의 잠재성을 보고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자만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 ⓒ시사저널 전영기

송성엽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의 입에서는 “됐고”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침 회의 시간에 팀원이 기존에 나왔던 보고서나 분석에 근거한 판에 박힌 이야기를 할라치면 ‘됐고’라는 말부터 나온다. 송본부장은 애널리스트에게도 “나의 기존 투자 의견이 바뀔 정도로 확실한 근거와 중요한 내용이 아니면 전화하지 마라”라고 일러두었다. 의미 없는 정보로 인해 그가 평소 가지고 있던 투자 원칙이 흔들리는 것이 싫다는 신념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기간까지 합쳐 경력 20년차인 송부장은 지금도 직접 기업 탐방을 나간다. 직접 경영자들을 만나 회사의 사업 계획을 듣고 시대 흐름에 맞게 대응 전략을 짜고 있는지 판단한다. 이러한 사업 계획이 언제 돈을 벌게 해주는지도 예측해낸다. 그는 이를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직관력’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 경영자 만나고, 검증된 정보 찾아내고…

스타 펀드매니저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루에 3백통 넘게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한 기업 보고서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다 보느냐”라는 박현준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3팀장의 말처럼 정보는 넘쳐난다.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검증된 정보, 의미가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발라내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일이다. 홍호덕 아이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이 기업을 방문하는 목적은 공시 자료에 나타난 정량적인 수치들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이 이 기업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회사 직원들의 표정은 어떤지, 일할 만한 환경은 갖춰져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옥석 같은 기업이 ‘태웅’이었다. 홍본부장은 “택시를 타고 ‘태웅’을 가자고 하니까 운전기사가 바로 ‘네’라고 하더라.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모르면 간첩’이라는 기사의 대답을 듣고 50%의 믿음이 생겼다. 회사에 갔더니 철강공장인데도 곳곳에 미술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직원들의 모니터가 LCD로 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회사 사장이 지분의 64%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투자를 결심했다. 사장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기업이다”라고 설명했다. 홍본부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1천2백원에 발굴한 주식이 4년 만에 14만원까지 올랐다. 그가 발품을 판 덕에 170배의 가치 상승을 한 기업을 찾아내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상위 10위권에 오른 상품은 모두 장기 투자를 기반으로 한다. 시세나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에 이런 변동성을 상쇄하기 위해 장기 투자를 한다. 또한 철저하게 종목 가치만을 분석하는 상향식 접근 방법(bottom-up approach)을 지향한다. 투자할 기업을 추려낸 뒤 해당 산업의 동향과 전반적인 경기 동향을 참고하는 정도이다.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때문이다. 이용범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4팀장은 9·11 테러로 인해 하향식 접근(top-down approach)을 버렸다. 한국처럼 해외 경기에 민감한 구조를 가진 수출국에서는 하향식 접근이 적합하다는 것이 그 당시만 해도 철칙처럼 되어 있었다. 이팀장은 “9·11 테러 같은 돌발 변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경기 변수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기업을 찾아내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장기 투자 원칙, 금융 위기에서도 꿋꿋이 지켜내

큰 굴곡을 겪으며 내공을 쌓을 만큼 쌓으면서 얻어낸 장기 투자 원칙과 기업 가치를 보고 산다는 기조는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 위기로 다시 흔들렸다. 국내 펀드 수익률이 반 토막 나면서 엄청난 펀드 자금이 빠져나간 시기였다. 온갖 루머도 떠돌았다. 이들의 기본 원칙인 장기 투자와 기업 가치가 힘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주식을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이용범 팀장은 결국 참지 못하고 고려아연 주식을 팔아 제 발등을 찍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부장은 “수수료를 먹고사는 기업은 경기가 어려워도 살아남는다. 고려아연은 제철을 제련해주고 또박또박 수수료를 받는 기업이었다. 게다가 아연에서 은과 같은 부산물을 추출해낼 정도로 기술력도 갖추었다. 그런데도 10만원에 산 주식이 4만원까지 떨어지는 것을 보고 8만원 정도 올랐을 때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라며 회고했다. 현재 고려아연의 주가는 25만원이다.

기업 구조 개선 펀드를 운용하는 김정우 알리안츠자산운용 상무에게도 금융 위기는 ‘팔자’라는 유혹을 가장 강하게 느낀 혹독한 시기였다. 기업 구조 개선 펀드는 중·소형 기업의 구조를 개선해 잠재된 수익 창출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방법으로 경기 흐름에 무관하게 장기적으로 펀드를 운용한다. 그런 그조차도 흔들렸다고 한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던 첫날, 다른 운용사에서 주식을 파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싼 가격에 회사를 팔지? 바보 아냐”라고 코웃음을 쳤던 그였다. 하지만 둘째 날에도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셋째 날 또다시 장이 빠지자 회의가 열렸다. 주가가 얼마까지 떨어지면 이 주식을 팔아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팔지 않았고, 현재 이 주식은 5배의 초과 수익을 올리는 효자 종목이 되었다. 이처럼 순간의 유혹을 넘기지 못하면 어렵게 찾아낸 종목을 스스로 버리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요동치는 주식시장에서 의연한 자세로 대응하기란 스타 펀드매니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 ⓒ시사저널 전영기

다행히 금융 위기 여파가 길게 가지 않았다. “1년도 되지 않아 회복기로 들어섰다. 국내 기업들이 외부 충격을 이겨낼 만큼 기초 체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라는 심효섭 KB자산운용 주식운용4팀 차장의 말처럼 이들에게 금융 위기가 가혹한 시련기만은 아니었다. 사야 할 종목들이 넘쳐났고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 역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오히려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박스권에서 지루한 움직임을 이어가면서 큰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재마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이들의 목을 죄어오는 시기이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금은 최소 5천억원에서 많게는 2조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송성엽 본부장에게 기자가 물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풀리지 않아요.” 1초도 지나지 않아 나온 답이다. 퇴근한 이후에도 주가 차트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박현준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3팀장은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미 머릿속은 펀드 생각으로 가득 찬다고 했다. 그는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게 펀드 생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을 좀 더 살 걸 그랬나? LG화학은 더 올라야 하는데 왜 아직도 안 오르지?’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잠 들 때까지 펀드 생각을 하다 보니 꿈에서도 시황 차트가 나온다. 내가 산 펀드가 반 토막 나는 악몽을 꾸다가 벌떡벌떡 깬 적도 수십 번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래서 펀드매니저의 내공은 시쳇말로 ‘멍 때리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가늠된다고 말할 정도이다. 머릿속을 텅 비워서 잠시라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재충전인 셈이다. 특별한 노력 없이 수시로 머릿속을 텅 비운다는 송성엽 본부장은 경지에 이른 수준으로 볼 수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시니어 매니저 팀원들끼리 분야 나눠 포트폴리오 짜는 팀제로 변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절대 1등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100% 수익을 올리다가 반 토막 나는 것보다 25%씩 두 번 수익을 올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종의 복리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김영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성장형운용팀장은 “회사 기본 원칙이 1등을 좇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균 정도의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도록 대형주에 무난하게 투자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펀드매니저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차분히 실력을 쌓아온 이들이 과거에는 일당백의 역할을 도맡으며 운용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지금은 회사 내 리서치팀에서 운용 전략을 짜주고 시니어 매니저 팀원들끼리 분야를 나누어 도출해낸 결과를 조합해 포트폴리오를 짜는 팀제로 변화되었다.

운용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사람들을 만난 지 7년째인 정승혜 타워스 왓슨 수석컨설던트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운용사별로 차별화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저마다 가진 소질을 되살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가치를 창출한다. 투자자들도 이 중에서 자기와 맞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안타깝게도 전문가 집단, 또는 일부 기관투자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열리면서 평생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는 개인들에게도 이러한 수익 창출의 본질적인 정보가 전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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