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유출이 오바마 자작극?
  • 최철호 | 워싱턴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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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일부 인사, 에너지 세금과 관련한 음모설 제기하며 공격…오바마의 약한 정치력 반증

지난 4월20일부터 지금까지 연일 3만 배럴에서 6만 배럴 상당의 원유를 멕시코 만으로 흘려보내는 이른바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원유 유출 사고는 연안 해역 원유 시추를 주장해 온 공화당의 입을  세 달 동안 다물게 했다. 알래스카 자연 보호 구역 내 원유 개발과 연안 해역 원유 개발을 부르짖어온 공화당 진영은 1989년 원유 수송선 엑손 발데스 호가 알래스카 해안에서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이후 “획기적인 기술 개발로 인해 원유 유출과 같은 재해는 이제 더 이상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라고 주장해왔다. 

▲ 지난 7월4일 미국 앨라배마 주 걸프 해안의 모래사장 옆 원유가 들어찬 웅덩이에 성조기가 띄워져 있다. ⓒEPA

공화당 진영은 오바마 정부가 이번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더딘 자세를 보인다고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사고 여파가 더 커졌으며, 적기에 재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난맥상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마치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엄습 당시 보여주었던 늑장 대응 때 민주당이 부시에게 가했던 비난 공세를 그대로 되갚은 셈이다.

이번 사고는 엑손 발데스 호 때의 규모를 훨씬 넘어서 원유 사고 가운데 사상 최악으로 기록되었다. 원유 유출에 따른 상처가 깊어지는데도 정작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지 않는 오바마를 보면서, 공화당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오바마 음모설을 유포하며 새로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음모설은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 발생 자체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데는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이며, 오바마 대통령 진영에서 눈에 띄게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모종의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석연치 않은 행동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화당측은 사고의 시작도 의심스럽거니와 오바마 진영이 연안 해역 시추를 아예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사고의 상흔을 깊게 남기려 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함으로써 환경 보호에 대한 여론을 고조시키는 한편, 공화당 진영의 개발 논리를 거부하는 분위기를 굳히려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같은 개발 반대 여론은 곧 민주당의 자연 보호·환경 보전과 맞닿는 맥락에서 이를 기반으로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공고히 하게 되어 재선 집권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 7월9일 미국 조지아 주 애틴스 시에서 열린 주민과의 대화 격인 ‘타운홀 미팅’ 시간에 공화당 소속 폴 브라운 연방 하원 의원(조지아 주)은 “아마도 오바마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이번 사고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대응을 하고 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한 에너지 세금을 올리는 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번 사고를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에너지 세금의 제정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나는 워싱턴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대통령이 이번 사고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 7월2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백악관의 상황실에서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수습과 관련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AP연합

“사고 낸 회사가 ‘국유화’ 원하면서 고의적으로 저지른 일” 주장도

론 폴 하원의원(공화·텍사스 주)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론 폴은 최근 지역구 내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와의 대담에서 이번 사고가 난 원유 시추선의 소유 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이 “자기들이 명령을 내릴 때 이같은 문제를 일으킬 것을 알고 있었다”라면서 회사가 고의적으로 사고를 계획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론 폴은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이 이같은 음모를 계획한 이유는 바로 그 회사가 탄소 배출량에 따른 세금 징수안을 지지하며, 더 나아가서는 미국 정부가 자기 회사의 자산을 국유화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고가 난 뒤 이를 더욱 큰 사고로 발전하도록 좌시하면서 인근 지역은 물론 이에 영향을 받을 해안 지역 일대 모두가 대피하도록 만드는 커다란 사고를 원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고 여파가 커져야 환경 관련 법안에 대한 필요성이 확산되고, 의회에서 이를 통과하도록 여론이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계산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음모론 제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멕시코 만을 해안선으로 갖는 텍사스 주 내 직접적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음모설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저의가 엿보인다. 이런 주장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상당한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기대하던 차에 논란거리를 잘 던져주었다는 반응이다.

티파티라는 정치 운동 집단을 만들어 오바마 행정부를 ‘사회주의자’ ‘세금 인상파’ 등으로 몰아 붙이던 이들, 선거를 앞두고 후보 경선에서 전패하다시피 해 시무룩하던 이들이 론 폴 등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새로운 공격 목표를 찾은 듯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아직까지 주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나 의혹을 던져주는 어떤 사안도 없다. 게다가 루이지애나 주의 경우에는 바비 진달이라는 인도계 공화당 인사가 주지사로 있으면서 오바마 정부의 각종 피해 구조 활동에 대해 배타적으로 움직이며 사고 여파를 수습하는 데에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기도 하다.

미국 내에서는 이같은 음모설이 그럴듯한 구색을 갖추면서 유포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2000년 9·11 사태 역시 딕 체니 등 이른바 매파들이 국운의 위기로 몰아가면서 극도의 애국심과 긴장감을 고조시켜 방위산업체 등에 유리한 공화당 정국을 이어가려 일부러 조작한 엄청난 사건이라는 음모설이 유포되기도 했었다.

일정하게 형식을 갖춘 이같은 음모설을 조직적으로 ‘만들어’ 유포하는 집단도 여럿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멕시코 만 원유 유출과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와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사를 상대로 펼쳐지는 음모설은 일반인이나 조직이 아닌 연방 의원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그만큼 충격도 크다.

이런 현상은 의회 장악력이 떨어지는 정치 초년생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정치의 난맥상을 쉽게 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같은 의회 내의 배타적 감정은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큰 편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오바마의 재선은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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