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너무 죄 숨 막히는 영국
  • 조명진 |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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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적자 해결 위해 60억 파운드 예산 삭감…공공 부문 일자리 61만개 감축 계획도 내놓아

미국의 신용평가 기관 피치와 스탠더드앤푸어스는 올 6월22일 영국 정부가 1천5백억 파운드를 상회하는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속도를 내지 않으면 신용 등급이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예산 60억 파운드를 삭감하는 것과 함께 공공 부문의 일자리를 현재의 5백53만명에서, 2015년에는 4백92만명으로 줄인다는 인력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피치는 캐머런 총리의 60억 파운드 긴축 계획에 대해서 영국 연립 정부가 아주 신속하게 재정 적자 해결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며 환영을 표시했다.

1백25년 만에 영국의 최연소 재무장관이 된 조지 오스본(1971년생)은 7월1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유럽에서 국가 채무가 가장 큰 나라로서 “영국이 부채를 갚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라고 밝혔다. 오스본 장관은 영국의 국가 재정 상태를 ‘피의 욕조 예산 (bloodbath budget)’이라고 비유하며, “긴축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기 있는 재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평론가 폴 시걸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국가 채무 문제 해결에서 한 발짝 물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긴축은 가난한 국민들에게 가장 큰 타격이 된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시걸은 영국 국가 부채의 80%가 연금과 저축을 통해서 영국 국민들에게 진 빚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부채에 대해서 정부가 이자를 내면 자동적으로 영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저축과 연금은 불평등하게 분배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를 소유한 소수의 부유한 자들이 이자를 지급받게 된다.

▲ 지난해 6월13일 영국 왕실 가족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왼쪽 네 번째)의 83번째 생일을 기념한 공군의 축하 비행을 지켜보고 있다. ⓒEPA

■ 긴축 정책에 앞장선 왕실 | 영국 왕실은 지난해 이미 해외 순방을 줄여 왕실 비용을 12.2% 줄인 3백만 파운드를 절감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영국 왕실의 공식 활동 비용은 3천8백20만 파운드로 하향 조정되었다. 왕실 재정 담당 알랜 레이드 경은 왕실의 허리띠 조르기는 왕실 가족도 금융 위기에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밝혔다. 더불어 왕실을 유지하는 데 드는 부담금은 영국 국민 1인당 연간 62펜스(우리 돈 9백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왕실이 발표한 수치에는 안전요원과 경찰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더불어 엘리자베스 여왕의 나이가 84세이고 남편인 필립 공이 90세에 이르러 해외여행이 자연히 줄어든 것을 왕실의 긴축 정책으로 표현한다는 시각도 있다. 

버킹엄 궁전은 왕실의 절약은 해외 순방에 따른 전세기 이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왕의 헬리콥터를 처분한 후, 임대 헬기를 사용해서 1백50만 파운드를 절감했다고 했다. 레이드 경은 “국가 재정 적자를 의식한 왕실은 정부의 긴축 정책보다 한 발짝 앞서 2009년부터 여러 방면에서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국 왕실 재정 보고서는 왕실 가족의 여행 경비를 상세히 드러내 오히려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무역을 증진한다는 명목하에 개인 용도로 전세 비행기를 자주 사용한 앤드류 왕자에 대한 상세한 내역을 보여준다. 지난 12월 영국에서 모스크바까지 전세 비행기 편 비용으로 2만 파운드, 올 2월 파나마와 멕시코 방문 목적으로 6만2천 파운드, 3월에 봄베이·델리·캘커타 여행으로 4만3천 파운드가 지출되었다.

찰스 왕세자가 런던에서 북잉글랜드 레이크 디스트릭까지 이용한 왕실 열차 비용은 1만4천 파운드에 달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의 버뮤다 공식 방문에 든 전세 비행기 비용은 37만3천 파운드였다.

영국의 반(反)입헌주의자들은 버킹엄 궁전 밖에서 왕실 무용론과 공화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소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 주동자인 그래험 스미스는 선거로 선출된 다른 유럽의 국가 원수들은 영국 왕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비용을 지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재정이 위기 상황인데 영국 왕실은 지속적으로 수백만 파운드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 6월22일 영국 일간지 런던이브닝스탠더드는 영국의 재정 적자로 인한 위기 국면을 1면 톱 기사로 보도했다. ⓒTHE NEW YORK TIMES

 ■ 긴축 정책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 드리운 그림자 | 가디언지 7월14일자에 따르면, 연립 정부의 긴축 정책은 국내 스포츠 시설 확충과 2012년에 앞두고 있는 런던올림픽 준비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휴우 로버트슨 문화체육부장관이 우려를 표명했다. 

우선 구체적으로 60억 파운드 규모의 예산으로 영국 학교에 스포츠 시설을 확충하기로 했던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들도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비용을 10억 파운드 정도 줄일 계획이다. 16세 이하와 60세 이상은 무료로 수영장을 이용하게 하도록 하는 데 쓰일 예정이던 5백만 파운드의 예산이 사라지게 되었고, 수영장 개조 비용 2천 100만 파운드도 삭감되었다. 더불어 문화체육부의 예산도 2015년까지 20억 파운드 감축될 예정이다.

2005년 런던이 올림픽 개최 도시로 결정되었을 때, 당시 노동당 정부가 파급 효과로 2백만명의 국민이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스포츠 부문에 확보해두었던 예산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긴축 정책의 우선순위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 문화체육부장관인 노동당의 앤디 번햄 의원은 올림픽은 더 많은 국민이 직접 스포츠에 활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평생 한 번 오는 기회인데, 다른 정부 예산에 비하면 땅콩 값에 불과한 스포츠 예산의 삭감은 1980년대 보수당 정부가 스포츠를 황량한 분야로 내몰았던 때로 회귀하게 하고 있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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