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바람에 ‘가짜’도 날뛴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0.08.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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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농산물에 자체 제작한 인증 마크 붙여 판매 …전문가들도 겉보기로는 구분하기 힘들어

“친환경 농산물은 우선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가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꼭 친환경 농산물만 산다.”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는 주부 정유경씨(33)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장 보는 방법이 달라졌다. 마트에서 야채나 과일 등을 고를 때는 반드시 ‘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가 붙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서울출장소의 서승일 팀장이 서울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의 친환경 농산물 판매장에서 점검 활동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웰빙 열풍과 함께 소비자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농산물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2001년도에 ‘친환경 농산물 인증 제도’가 생겨난 이후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5년간 친환경 농산물 인증 현황을 보면, 2005년 총 8천7백17건에서 지난해에는 2만4천1백28건으로 인증 건수가 급증했다. 전체 농산물에서 친환경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2%를 넘어섰다. 

문제는 친환경 농산물이 늘어날수록 ‘가짜 친환경 농산물’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농산물이 친환경 농산물로 둔갑한 사례가 가장 많다. 정해걸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7월28일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친환경 농산물 인증 및 부정 인증 농산물에 대한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 국내에 유통되는 친환경 농산물 중 불법 유통으로 적발되어 고발된 건수가 2백65건에 달했다. 게다가 2005년도에는 18건에 불과하던 것이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에는 1백21건에 이르렀다.

불법 유통으로 적발된 사례를 보면 일반 농산물에 친환경 인증 마크를 붙여 판매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허위 인증을 하고 친환경 농산물과 유사한 표시를 했거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반 농산물을 친환경 농산물로 광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친환경 농산물 중에서 인증 등급을 한 단계 높여 판매하는 위반 사례도 적지 않았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은 3년간 농약 및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하는 유기농 농산물과, 농약은 사용하지 않지만 화학 비료는 권장 성분량의 3분의 1 이하를 사용해 생산하는 무농약 농산물로 나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농약 농산물(농약 살포 횟수는 2분의 1 이하, 화학 비료는 권장 성분량의 2분의 1 이하로 사용해 생산)도 친환경 농산물에 인증을 받을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친환경 인증에서 제외되었다. 이와 같은 구분에 따라 저농약 농산물이 무농약 농산물로, 무농약 농산물이 유기농 농산물로 판매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 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맨 왼쪽)와 허위 표시로 적발된 위증 마크들.

인증 기관 인력 2백여 명에 불과

친환경 농산물 인증에 관한 행정 처분 현황을 살펴보면 앞으로 유통 과정에서 생겨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친환경 농산물 인증은 총 2만4천1백28건에 달한다. 이처럼 인증이 박탈된 친환경 농산물이 시중에 유통된다면 문제는 커질 것이다. 또한 올해부터 저농약 농산물에 대해 신규 인증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친환경 농산물의 60~70%가량은 저농약 농산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유통 기간을 고려해 2015년까지는 기존의 저농약 농산물 인증을 연장해서 인정하기로 했지만, 이로 인해 소비자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겉보기로 친환경 농산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일이다. 따라서 ‘친환경 인증 마크’를 살펴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친환경 농산물 부정 유통 단속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승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경기지원 서울출장소 팀장은 “올해 매장에서 유통된 친환경 농산물 중 허위 인증 등으로 적발한 건수는 5건에 불과하다. 친환경 농산물은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워 일일이 점검해서 적발하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 경로는 직거래, 인터넷 쇼핑몰, 대형 마트, 전문 매장 및 도·소매장 등 다양하다. 이 중 어느 경로를 통해 구매하든지 소비자는 인증 마크로만 친환경 농산물을 식별할 수 있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 기관은 전국에 60여 개가 있는데, 이곳에서 활동하는 인력은 2백여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개의 전문 인력이 인증 작업과 점검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환경 농산물의 부정 유통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로 간다. 정직하게 친환경 농업을 고수해 온 애먼 농민들은 제2의 피해자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10년 가까이 친환경 농업을 고수해 온 박용업 양평 절골농원 대표(49)는 “매년 봄에 유통업자와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친환경 농가들의 어려움이 많다. 일반 농산물은 시세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친환경 농산물은 유통업자와 거래를 할 때 미리 가격과 물량을 정한다. 그러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농산물보다 더 싸게 팔아야 할 때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친환경 농업은 미래 대안 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친환경 농가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고 각 지자체에서도 친환경 농업단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하지만 매년 늘어나고만 있는 불법 유통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해 깊은 불신을 낳을 수밖에 없다. 불법 유통에 대한 방책 마련이 시급하다.

 인증 마크가 진짜인지 알아보려면…

친환경 마크가 붙어 있는 농산물에는 모두 ‘친환경 인증번호’가 부여된다. 친환경 농산물인지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표기와 인증번호를 함께 보는 것이다. 현재 유통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유기농 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로 나뉜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번호는 국립농산물식품관리원(농관원)에서는 네 자리, 민간 전문 인증 기관에서는 세 자리를 활용한다. 만약 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만 있고 인증번호는 없는 경우라면 ‘가짜 친환경 농산물’일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허위로 조작되거나 기간이 만료된 인증번호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대형 마트의 친환경 농산물 매장이나, 친환경 농산물 전문 매장에서 인증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전용 단말기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단말기에 농산물의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곧바로 생산자 정보 및 인증 기간 등이 조회된다. 단말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농관원 홈페이지나 친환경 농산물 정보 시스템에 접속해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정보가 제공된다. 직거래나 도·소매점을 통해 농산물을 구입하는 경우라면, 휴대전화로 인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숫자 ‘8890’을 누르고 무선인터넷 연결 버튼을 누르면 바로 인증 조회 사이트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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