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사회와 ‘한 몸’이다
  • 이영면 |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 승인 2010.08.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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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경·고객·종업원·지역 사회·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 두루 껴안아야 지속 성장 가능

올해 상반기 주요 대기업들의 실적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삼성전자는 상반기에 매출 72조5천3백억원에 영업 이익 9조4천2백억원을 올렸고, 현대자동차도 매출 17조9천7백83억원과 영업 이익 1조5천6백60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의 성과를 기록했다. LG화학, 삼성전기, 하이닉스 등도 줄줄이 역대 최고 기록을 냈다.  

2010년 국가 예산이 2백92조8천억원이니 이들 기업 두세 개만 합쳐도 예산 규모를 초과한다. 어느덧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아져 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호주의 시드니까지, 그리고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국내 기업들의 홍보물과 광고판은 쉽게 볼 수 있다. 무역 규모도 세계 9위 수준이고, 주요 대기업들은 글로벌 수준에 비추어 손색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했다고 해서 반드시 발전했다고 할 수는 없다. 양과 질이 꼭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강조했지만 이제는 주주 가치만을 강조해서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 알게 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에너지 기업인 BP도 지난봄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로 회사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고, 도요타자동차도 리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즉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주주만이 아니라 환경, 고객, 종업원, 지역 사회, 협력 기업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양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 대기업들의 사상 최대치의 이익이 칭찬과 함께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깝게는 내부의 근로자, 협력업체, 고객 그리고 조금 크게 보면 지역 사회, 환경 등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기업 경영의 본질적이고도 최종적인 책임은 그 기업의 최고책임자인 CEO에게 있기 때문에 정부나 국민 또는 이해관계자라고 해서 강제적으로 경영진의 판단과 결정을 제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 속에 존재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이 독단적으로 단기적인 이해관계만을 추구할 때 견제하고 충고할 수 있다.

 

▲ 사상 최대치의 이익 잉여금을 쌓고 있는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시사저널자료

‘유연 안전성’이라는 개념 새로 만들어가야

지금 최대 화두는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 문제이다. 대기업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기록한 바로 이 시점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백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또, 최대 이익의 그늘 아래 협력업체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인건비가 증가함에 따라 기업은 노동 대신 자본, 즉 시설에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공식은 단순한 경제적 판단이라고 하겠다. 임금 수준이 한국의 두세 배에 이르는 국가들도 꾸준히 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고 있다.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인건비가 비싸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높은 임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 이상의 생산성을 가져온다면 높은 인건비가 비싼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 노력은 기업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과 대학을 비롯한 교육 기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다만, 기업이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 요구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협력 기업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큰 대기업이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 대기업을 밑에서 받쳐주는 수백 수천의 협력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일방적인 납품 단가의 인하, 불공정한 계약 등을 가지고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편안할 때 위기를 걱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최대 성과를 기록했을 때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도 그만큼의 시간적인 여유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는 소비자인 고객, 지역 사회, 환경 등을 기업의 외부자가 아닌 이해관계자로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흔히 안정성은 유연성과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유연 안정성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야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처럼, 기업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근로자, 협력 기업, 지역 사회, 환경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기업 경영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최대의 성과를 낸 큰 기업이 많아졌지만 진정으로 존경받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부 활동이나 봉사 활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업이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훌륭한 책임 완수이다. 하지만 이제 사회에서 기대하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미 그 이상으로 올라가 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인건비는 낮아도 임금 수준은 높으며, 협력업체와 공정한 거래를 하는 기업을 기대하고 있다. 환경과의 공생을 추구하며 지역 사회의 어려운 부분을 살펴주는 다재다능한 역할을 기대한다. 이제 역대 최대의 성과를 기록한 주요 대기업들은 다양해지고 높아진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상생하고, 존경받는 역할을 수행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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