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삶의 길잡이’는?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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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인물 중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1위는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이건희 회장·박원순 변호사·박근혜 전 대표·반기문 사무총장도 5위권에

 

ⓒ일러스트 장재훈

당신은 등대를 가지고 있는가. 최근 대학교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분야에서 멘토링 붐이 일어나고 있다. 작은 구멍을 향해 모두가 몰려들어 경쟁하는 한국 사회에서 ‘멘토’는 따름직한 역할 모델이고 길잡이이며 등대로서 더욱 중요한 역할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자신이 바라는 삶을 먼저 이룬 선배의 이야기에는 누구나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사저널> 역시 물어보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현존 인물 중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을 꼽아달라는 문항을 추가했다.

전문가들이 멘토로 삼고 싶다며 가장 많이 지목한 인물은, 영향력이라는 면만 놓고 볼 때 2~10위를 차지한 인물들에 비해 미미하다. 다만 그의 발언은 대중과 호흡하며 매번 공명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항상 화제가 되곤 했다. 바로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이야기이다. 

안교수는 이미 강연계의 ‘본좌’로 불리고 있다. 안교수와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박경철 원장(안동 신세계연합병원)이 뭉쳐 지방을 순회하며 여는 대담식 강연회는 방청권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안교수는 방송계의 블루칩이기도 하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은 예능이든 교양이든 장르에 관계없이 시청자들의 재방송 요구가 많다. 강연을 들으러 온 청중, 텔레비전 앞에 앉은 시청자 모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명한다. 안교수는 대중들이 꼽는 최고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한 취업 포털에서 20~30대 회원 6백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46.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며 가장 닮고 싶은 창의성 역할 모델로 지목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안교수에게 열광할까.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에 멘토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박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대부분 자기 세계에서만 산다. 특히 젊은 세대가 겪는 문제, 그들이 살아야 할 미래를 꿰뚫는 명쾌한 분들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거꾸로 말하면 안교수는 그런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대안을 제시하고 해법을 내놓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지지를 보내는 셈이다.

안교수는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것 때문에 미래에는 더 잘될 것이라는 기대치가 반영된 것 같다. 내가 말을 잘하는 편은 절대로 아닌데 아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10위권 내 인물,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인물들과 일치

‘멘토’ 두 번째 자리는 지난 3월 경영 복귀를 선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차지했다. 이회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장기 집권 중이다. 올해 역시 1위는 그의 몫이었다. 멘토로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제인 중에서 10위권 내에 든 사람으로는 이회장이 유일했다. 제왕처럼 군림한다며 경영 형태를 비판받고, 아들 이재용 전무에게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있는 삼성과 그가 없는 삼성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그만큼 그의 리더십은 확고하고, 그런 리더십을 본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참여연대의 산파 노릇을 하다 2003년 이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긴 박원순 변호사는 3위를 차지했다. “과분하게 생각한다”라며 운을 뗀 박변호사는 오히려 멘토가 줄어드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고 균형 잡힌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박변호사는 다음 세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젊은 세대의 문제에 좀 더 눈길을 돌릴 생각이다. 최근 젊은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소기업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산업이나 사회적 기업에 주목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여성으로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4위를 차지하며 유일하게 10위권 내에 들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 뒤를 따랐다. 정진석 추기경은 종교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여섯 번째에 위치했다. 일곱 번째 자리에는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자리 잡았다. 손교수는 “나처럼 삐딱한 사람을 멘토로 삼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저를 뽑아주신 분들이 참 순수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재치 있게 소감을 말했다. 8위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9위는 최근 퇴임한 정운찬 전 총리가 자리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은 공동 10위에 올랐다. 분야별 조사와 달리 1천명의 응답자들이 멘토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전 분야에 걸쳐 다양했기 때문에 상위권 지목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멘토로 삼는 인물을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10위권 내 인물들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인물들과 대부분 일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공한 삶을 산 사람=멘토’라는 등식이 적용된 셈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과)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멘토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도 “조사 결과를 보면 큰 인물들이 중심이 된다. 멘토를 고르라고 할 때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사람, 성공한 사람들을 떠올리기 쉬운 것은 우리 사회가 멘토를 성공 컨설턴트처럼 받아들이는 결과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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