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권 잠재력 .. 박근혜 ‘멀찌감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위 그룹과 40%포인트 차 벌리며 3년째 독주 체제 이어가 김문수·손학규, 공동 3위 올라‘대세론 선점’ 겨냥한 경쟁 치열해질 듯

 

ⓒ일러스트 장재훈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던 지난 8월9일 국회 의원회관 445호실에는 기자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 방의 주인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의 휴대전화는 수시로 울려댔다. 기자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다. 이의원은 ‘박근혜 대변인’으로 통한다. 이날 기자 또한 이의원과 마주 앉았다. ‘8·8 개각’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물었다. 김태호 내정자가 전격적으로 발탁된 것은 사실상 ‘박근혜 대선 후보 절대 불가’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표출된 것이라는 게 세간의 시선이었다. 이의원은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무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리고 그 뒤에 한마디 덧붙인 말은 “우리는 담담하다”라는 것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투이다.

“박 전 대표가 이제는 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라고 하자 이의원은 “현재 대권 후보 1위인 박 전 대표가 지금 나서면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일밖에 안 된다.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고 다른 대선 주자들이 모두 나설 것 아니냐. 지금 나서지 않는 것이 이대통령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은 조심스럽게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금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내년 하반기부터 대권 행보를 보여도 늦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의원의 이같은 말 속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대권 주자로서 ‘부동의 1위’라는 강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2010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과 관련해 가장 잠재력 있는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 박 전 대표는 올해에도 45.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5.2%)과는 40%포인트 가깝게 차이가 난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박 전 대표는 45.8%로 1위를 차지했고, 유 전 장관(4.8%) 이하 ‘잠룡’들은 5% 선을 넘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현 정부 집권 1년차인 2008년 조사에서도 42.2%로 1위를 차지했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지금 우리에게 특별한 전략은 없다. 지금의 추세를 공고화해서 ‘박근혜 대세론’을 굳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20%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고 2위권 그룹도 10%대를 오르내리는 것에 반해, 이처럼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와 2위권 그룹의 차이가 훨씬 더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상자 기사 참조).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일반인들은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호감 가는 대권 주자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래도 조금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에 의해서 당선 가능성 등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유력 주자에게로 쏠림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지난 6·2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여전히 2위를 지키는 건재를 과시했다. 야권 ‘잠룡’들 중에서는 여전히 가장 높은 지목률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유 전 장관도 5% 내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유 전 장관의 정치적 한계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열성적 지지자는 있지만 더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런 한계가 뚜렷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올해 주목되는 순위 변화는 공동 3위 그룹에서 나타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4.4%의 지목률로 나란히 공동 3위에 올랐다. 김지사와 손 전 대표는 각각 지난해 7위(1.9%)와 8위(1.7%)에서 급상승했다. 김지사는 여권에서, 또 손 전 대표는 야권에서 현재의 ‘박근혜-유시민’ 선두 체제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김문수 지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김지사 역시 여기저기 각종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 전 장관을 꺾음으로써 김지사는 그동안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등에 비해 다소 열세였던 여권의 대선 주자 판도를 일거에 뒤흔들며, 가장 강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떠올랐다. 그런 탓인지, 이번에 김태호 내정자가 갑작스레 등장하자 가장 예민한 반응을 나타낸 이 역시 김지사였다. 그는 “자고 일어나니 총리가 되었다”라는 표현으로 김내정자를 은근히 평가 절하했다. 또,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권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카드’ 가운데 하나이다. 젊고 스마트한 이미지 때문이다. 비록 지난 지방선거에서 고전하기는 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오시장은 3.6%의 지목률로 5위를 차지해 지난해(4위·3.1%)에 이어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이로써 김지사와 오시장이 박근혜 독주를 견제하는 유력 주자로 나서면서 새로운 여권의 ‘빅3’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에 원조 ‘빅3’ 멤버였던 정몽준 전 대표와 정운찬 전 총리는 퇴임과 더불어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냈다. 정 전 대표는 지난해 3위(3.5%)에서 올해 공동 8위(0.9%)로 떨어졌다. 정 전 총리는 공동 15위(0.3%)에 그쳤다.  


20위권 내 ‘잠룡’들에 40대 정치인들 대거 포진

여권에서 주목해볼 또 한 명의 인사는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이다. 이내정자는 이번 조사에서 공동 8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킹메이커’ 이미지가 더 강한 이내정자를 두고 주변에서는 “이재오 의원이 직접 ‘킹’이 되려 할 수도 있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여권의 대권 구도는 더욱 복잡해진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최근 바빠졌다. 10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히고 본격 행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함께 민주당 ‘빅3’를 형성하는 라이벌 정동영 의원(7위·1.0%)을 추월했고, 정세균 전 대표(공동 10위·0.8%)와의 간격도 크게 벌렸다. 정의원·정 전 대표에 비해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던 평가와는 달리, 최근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손 전 대표 주변은 무척 고무된 분위기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아깝게 석패했던 한명숙 전 총리는 1.9%의 지목률로 6위에 올랐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공동 10위에 처음 등장한 것도 눈에 띈다. 반면 지난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공동 15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공동 15위),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공동 25위) 등은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올해 조사에서 특기할 만한 현상으로는, 20위권 내에 진입한 ‘잠룡’들 가운데 40대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서 안희정 충남도지사(12위),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공동 13위),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공동 15위),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공동 20위) 등 다섯 명이 떠올랐다. 여기에 김태호 내정자의 등장까지 더해지면서 ‘40대 기수론’은 향후 대선 구도의 판도를 뒤흔들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사저널>의 전문가 여론조사는 8·8 개각 이전에 이루어진 탓에 김태호 내정자는 ‘잠룡’ 대열에서 빠져 있다. 그만큼 그의 발탁은 전문가들도 예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유창선 박사는 “지금 박근혜 전 대표 독주 체제가 계속되고 있지만 변수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이번 김태호 내정자의 등장이 대표적이다”라고 밝혔다. 김내정자까지 가세한 잠룡들의 대권 다툼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를 일이다.

▲ ⓒ시사저널 유장훈
‘대권 주자’들은 ‘대세’에 목을 맨다.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라는 확고한 위치를 점하면, 대세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이기 때문이다. 현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여기에 가장 근접해 있지만, 아직은 불안하다. 그녀를 흔들고자 하는 세력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시계를 5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05년 중반 당시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는 고건 전 총리였다. 하지만 그는 2006년 중반부터 추격자들에게 서서히 추월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후보가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힌 것은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였다. 그때 시점으로 보면 아직 1년이나 더 시간이 남은 셈이다.  지난 8월9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와 ‘리얼미터’는 각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디어리서치가 머니투데이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26.8%로 1위였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9.1%로 2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8.3%로 3위를 각각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4위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7.0%), 5위는 한명숙 전 총리(5.7%)였다. 그 뒤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4.5%),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4.5%), 정동영 민주당 의원(4.2%),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3.9%), 정운찬 전 총리(2.5%) 순으로 이어졌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도 엇비슷하다. 역시 박근혜 전 대표가 25.7%로 1위였다. 2위는 유시민 전 장관(13.5%)이고, 3위는 한명숙 전 총리(10.3%)였다. 김문수 지사가 4위(10.1%), 오세훈 시장이 5위(9.0%)였다. 그 뒤를 정몽준 전 대표(7.1%), 손학규 전 대표(6.6%), 이회창 대표(4.3%) 등이 이어가고 있다. 여권에서는 ‘1강 2중 2약’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모습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선두를 추격하는 ‘2중’ 그룹에는 정몽준 전 대표와 정운찬 전 총리가 포진했지만, 두 사람은 6월을 변곡점으로 ‘2약’으로 밀려났다. 지방선거 참패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들의 공백을 대신 메우고 나선 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살아남은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였다. 하지만 변수는 아직 남아 있다.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국을 주도할 ‘당·정·청’의 차기 수뇌부 진용은 대통령의 의지와 직결된다. 실제 이명박 대통
령은 이번 개각과 청와대 개편에서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의 김태호 총리 내정자(사진)와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발탁했다. 이들은 단숨에 ‘대권 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여기에 당내에서는 여전히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와 홍준표 최고위원 등이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고, ‘40대 기수론’ 바람이 불면 나경원 최고위원과 원희룡 사무총장도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여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야권은 변수가 덜한 편이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빅3’로 불리는 손학규 전 대표·정동영 의원·정세균 전 대표 등이 당내 세력을 삼분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역시 젊은 정치인들이 변수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강원도지사를 비롯한 ‘486’ 정치인들이 ‘세대교체’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