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슬러거 ‘빅3’, 무엇이 다른가
  • 정철우 |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0.08.2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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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이승엽·김태균 ‘홈런의 원천’ 비교 / 허리 힘·유연성 등 탁월한 장기 지녀

한국 프로야구가 모처럼 홈런으로 춤을 추고 있다. ‘빅 보이’ 이대호가 아홉 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새로운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아홉 경기 연속 홈런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기록이다. 홈런은 보는 이들의 흥분을 최고조로 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대호의 홈런 행진은 이제 연속 경기 기록을 넘어 40홈런까지 조준하고 있다. 이대호는 8월18일 현재 39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제 한 개만 더하면 이승엽의 일본 진출(2004년) 이후 끊겼던 40홈런 시대를 다시 열게 된다. 한국 야구는 이승엽과 김태균이 일본 무대를 밟으며 홈런과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대호가 최고의 타격감을 뽐내며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이승엽에서 김태균, 이대호로 이어지는 한국 야구의 홈런왕 계보. 이들은 리그는 다르지만 홈런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여 있다. 저마다 장점과 단점도 뚜렷하게 갈린다. 거포들의 3인3색. 홈런을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비밀을 들여다보자.

▲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 선수(오른쪽)와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인 김태균 선수(왼쪽). ⓒ연합뉴스

[허리] 허리는 야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어디로 올지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공을 때려 100m 이상을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몸 전체의 힘을 실어야 한다. 그 힘을 싣는 중심이 바로 허리이다. 허리를 가장 잘 쓰는 선수는 단연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특유의 힙턴을 통해 순간적인 파워를 내는 선수이다. 노리는 공이 걸렸을 때 타구를 멀리 보내는 힘이 김태균·이대호 같은 거구의 선수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바 롯데에서 2년간 코치로 활동했던 김성근 SK 감독은 “이승엽의 허리 쓰는 힘은 아시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승엽만큼은 아니지만 김태균도 허리를 잘 쓰는 타자이다. 김태균은 공을 때릴 때 몸의 움직임이 가장 적다. 대신 빠른 허리 회전을 통해 타구에 힘을 실어준다. 이대호는 김태균보다는 허리가 빠르게 도는 편은 아니지만, 완벽한 타이밍에 공을 치는 유형의 홈런 타자이다. 흔히 받혀놓고 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손목 임팩트] 손목일 손목도 단연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마지막 순간에 힘을 싣는 능력이 가장 빼어나다. 특히 공을 때려내는 포인트가 매우 이상적이다. ‘타격의 달인’ 양준혁은 “승엽이와 나의 결정적 차이는 공을 때리는 포인트에 있었다. 승엽이는 공의 밑부분을 파고들듯이 쳤다. 때문에 공에 백스핀이 먹으면서 높게 멀리 간다. 여기에 마지막에 손목을 쓰는 능력도 탁월하다”라고 말했다.

김태균도 손목을 잘 쓰는 유형의 타자이다. 팔로 스루(공을 때린 뒤 스윙을 돌리는 것)를 길게 가져가지는 않지만 맞는 순간 힘을 싣는 능력이 좋다. 그러나 이승엽과는 달리 공의 한가운데를 공략하는 스타일의 타자이다. 크게 떠서 넘어가는 홈런이 많지 않은 이유이다.

이대호는 손목으로 임팩트를 강하게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을 맞힌 뒤 길게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공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의미이다. 어느 코스에서 공을 맞혀도 장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이다.

[몸쪽 공] 몸쪽 공 공략은 이대호가 가장 빼어나다. 이대호는 셋 중 몸쪽 공을 가장 적극적으로 치는 타자이기도 하다. 몸쪽에 완벽하게 제구된 공은 잘 때려도 파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땅볼이 될 확률도 높다. 그러나 이대호는 “몸쪽 공도 모두 친다고 생각하며 대처한다”라고 자신의 타격 비결을 밝힌 바 있다.

김태균은 몸쪽 공략을 위한 V자형 스윙을 스스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김태균은 3년 전만 해도 몸쪽에 약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V자형 스윙을 장착한 뒤 결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태균은 “몸쪽으로 공이 와도 빠르게 맞힐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전에는 몸쪽을 노려서 치지 않으면 잘 치지 못했지만 이제 순간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라고 비결을 설명했다.

이승엽은 몸쪽 공 대처 능력에서 약점을 보이고 있다. 일본 투수들의 정교한 컨트롤과 볼 배합에 고생하고 있다. 노림수형 타자들이 겪을 수 있는 전형적인 슬럼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승엽을 ‘노림수’에만 가둬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셋 중 가장 좋은 동체 시력을 갖고 있다. 공을 쫓는 눈이 좋다는 의미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부진하지만 언제든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가 8월15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타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연성] 이대호의 유연성은 그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되고 있다. 특별히 노리지 않고도 모든 코스를 공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경문 감독은 “체중이 많이 나가서 둔한 느낌도 주지만 그만큼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이 스윙을 짧게 가져가는 등 노력도 많이 하고 있는 데다 타고난 유연성이 더해져 좋은 타격이 가능한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김태균도 공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스타일이다. 한때 그도 홈런 수를 늘리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 시간을 늘리며 근육을 키운 적이 있다. 김태균은 “근육이 커지니까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특히 몸쪽 공을 치는 스윙 궤적을 짧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때문에 다시 체력 보강 위주의 훈련으로 바꿨다”라고 밝혔다.

이승엽은 유연성이 다소 떨어진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갖춰진 파워는 셋 중 단연 최고이다. 하지만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스윙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나오지만 그 스윙을 지탱해주는 신체적 유연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허리와 허벅지에 부상이 잦은 것도 유연성이 떨어지는 탓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심 이동] 이승엽은 중심 이동이 매우 좋은 선수이다. 셋 중 체격 면에서는 가장 불리하지만 타구를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힘을 뒤로 모았다가 앞으로 쏟아내며 허리 회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빼어난 선수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강한 하체 힘을 만들어낸 것도 원동력이다.

이대호는 올 시즌 가장 이상적인 중심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다리에서 스윙이 시작되어 강한 회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기본적으로는 이승엽과 비슷하지만 이대호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이대호도 공을 치기 전 다리를 든다. 하지만 드는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다. 힘을 많이 모으지 않아도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타석에서 앞뒤 움직임이 거의 없는 듯이 느껴질 정도이다. 다리를 들지 않고 순간적인 회전력으로 타구를 때려낸다. 백스윙(공을 치기 전 뒤로 방망이를 빼는 것)도 거의 없다. 대신  미리 최대한 출발점까지 배트를 끌어당겨 놓는다. 다리를 들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타이밍이 다소 늦었다 싶은 공을 쳐서도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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