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잔치’를 끝내라
  • 김재태 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0.08.23 15: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의 왕들은 행실이 바르고 투명해 모범이 될 만한 관료들을 ‘청백리’로 뽑아 도의 정치의 사표로 삼았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기록에 나타난 청백리는 2백17명에 이른다. 명종 대에 요직을 두루 거친 조사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조사수는 소임을 충실히 해낼 뿐 아니라 청렴해서 많은 사람에게 칭송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매우 극성스럽고 욕심이 많아 늘 이웃 사람들과 다투었고, 심지어 여종을 때려서 죽이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대사간이던 조사수는 자신이 청백리로 뽑혀 특별 승진을 하게 되리라는 얘기를 듣자 상소를 올려 청백리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조사수의 냉정한 자기 비판은 이번 ‘청문회 정국’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지금까지 개각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던 ‘위장 전입’ 문제가 이번에도 소란의 중심에 떠올랐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장 전입이 이제는 공직자의 ‘필수 스펙’처럼 되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위장 전입 행위는 대개의 경우 남편보다는 부인이 주도해 일어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그 과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군다나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책임이 더 크고 막중하다.

일반 국민들이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 전입 의혹을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분노하는 부분은 형평성 문제일 것이다. 법을 적용하는 잣대가 달라지면 누구든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형평성이다. 이번에 거론된 인사들 대다수가 ‘자녀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는 변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말은 “이 세상에 자식 교육 잘 시키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느냐”라는 사람들의 힐난 앞에서는 한없이 궁색할 뿐이다. 위법을 걱정해서 위장 전입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사람들이 느낄 ‘이유 있는 울분’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런데도 여권에서는 ‘부동산 투기용’과 ‘자녀 교육용’ 위장 전입을 분리해야 한다느니, 위장 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해괴한 논리를 내놓아 불난 서민들의 가슴에 기름까지 끼얹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제안한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2002년에 당시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의 위장 전입을 물고 늘어져 낙마시키기까지 했던 당이다.

형평성 훼손은 위장 전입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광복절에 실시된 특별사면에서도 명단의 대부분을 채운 사람은 정치인이나 공직자, 기업인 등 이른바 ‘힘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을 빼고 순수한 일반인은 전체 2천4백93명 중 37명에 불과했다.

이런 식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국정 운영의 새로운 키워드로 내세운 ‘공정한 사회’가 제대로 먹혀들 리 없다. 가진 자들의 ‘특권 잔치’만 계속되는 나라에서 무슨 공정을 기대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벌써부터 적지 않다.

기득권이 판치는 사회, 특권에 편향된 사회에서는 ‘친서민’은커녕 미래도 기약하기 어렵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