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명가도 한국에선 ‘쩔쩔’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9.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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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완성도와 재미 갖춘 <토이 스토리 3>에 국내 관객 반응이 ‘싸늘’한 이유

 

▲ 9월9일 개봉하는 . ⓒ대원미디어 제공


미국의 픽사 스튜디오가 내놓은 <토이 스토리 3>는 시장의 예상대로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냈다. 평단은 호평 일색이었고 흥행 성적은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미국의 영화 흥행 조사 기관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8월30일까지 북미 지역에서만 4억5백78만여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세계 흥행 기록은 제작비의 다섯 배를 넘는 10억1천2백18만여 달러에 달한다. 역대 흥행 기록으로는 <다크나이트>를 제치고 6위에 올랐다.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 성과이다.

 ■ 애니를 아동용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암초 | 하지만 한국 시장은 <토이 스토리 3>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8월5일 개봉해 8월 말까지 1백43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기대 밖 성적이다. 탄탄한 완성도와 재미를 갖추었기에 더욱 실망스런 결과이다. 수입·배급사가 설정한 목표치는 2백만명 이상이었다. 픽사의 한국 시장 공략 실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줄곧 감동과 재미를 높은 완성도로 이끌어낸다는 호평을 받아왔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심심하다. 역대 최고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니모를 찾아서>가 불과 1백30만명을 기록했으며, <업>은 1백5만명에 그쳤다. <라따뚜이>나 <인크레더블>도 비슷했다.

부진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협소한 점이 꼽힌다. 국내 최고 흥행 애니메이션은 <쿵푸팬더>로 4백67만명이 보았다. 1천만명 동원 영화 6편을 배출해낸 실사 영화 시장 규모와 비교해보면 반 토막도 안 되는 셈이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일단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아동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가족용으로 만들어져도 성인 관객이 기대보다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고자 하는 픽사만의 스타일도 흥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삶의 페이소스를 진하게 전하는 깊이 있는 이야기 전개가 국내 최대 고객층인 어린이들을 유혹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픽사의 할리우드 라이벌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의 <슈렉 2>와 <슈렉 3> <드래곤 길들이기> 등으로 2백만명 대관객을 동원한 것과 비교된다. <쿵푸팬더>도 드림웍스 작품이다.

■ 지브리는 널뛰기 흥행…한국 애니는 고사 상태 |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은 어떨까. 지브리를 상징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냐 아니냐에 따라 흥행에서 희비가 엇갈려왔다. 미야자키가 연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백30만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3백1만명, <벼랑 위의 포뇨>는 1백52만명을 각각 불러모았다.  관객 100만명이 넘는 일본 실사 영화를 쉽게 찾을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흥행 성적이다. 하지만 미야자키가 연출하지 않은 영화들은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왔다. <고양이의 보은>이 24만명, 미야자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한 <게드 전기:어스시의 전설>은 23만명이 찾았다. 미야자키냐 아니냐에 따라 흥행 성적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9월9일 개봉하는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의 아리에티>는 미야자키가 극본과 기획에만 이름을 올려놓은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8월29일까지 6백65만명을 기록하며 한 주 먼저 개봉한 <토이 스토리 3>(6백85만명)를 맹추격하고 있다. 픽사나 지브리는 한국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보면 행복한 편에 속한다. 국내 장편 상업 애니메이션은 2006년 <천년여우 여우비> 개봉 이후 씨가 마른 상태이다. 그나마 내년 1월 개봉을 목표로 동화 <마당에 나온 암탉>을 밑그림으로 한 <마당에 나온 암탉, 잎싹>이 만들어지고 있어 고사는 겨우 면하고 있다.

제작비 30억원을 들여 만들어지는 <마당에…>의 제작사는 명필름이다.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만들며 충무로 품질 보증 마크로 통하는 영화사이니 만큼 한국 애니메이션의 중흥을 기대해볼 만하다. 

 

 

 

영화 <해결사>는  문자 그대로 음모에 빠진 홀아비 해결사의 좌충우돌 탈출기이다.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강태식에게 주어진 해결책은 납치이다. 은행 매각 사건과 관련한 양심 선언으로 정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올 남자를 납치하라는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진다. 성공만 하면 누명을 벗겨 준단다. 태식은 경찰의 추격망이 좁혀들어오는 가운데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달린다. 쉴 새 없이 사건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100분 동안, 태식은 그리고 영화는 때리고 부수며 앞으로 나아간다.

신인 권혁재 감독의 첫 연출작이지만, 각본에 보이는 류승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결사>는 액션영화이다. 정치 드라마의 줄기와 배신, 음모 등의 코드를 배후에 깔기는 했지만, <해결사>가 지향하는 것은 복잡한 은유가 아니라 액션의 통쾌함이다. 영화는 시작 6분 만에 주인공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나머지 94분의 러닝타임을 ‘해결’을 위해 사용한다. 때리고 부수고 치고받기를 반복하는 액션에, 꼬인 듯 보이지만 단순한 스토리라인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문제가 있다면 그 94분 안에 적절한 완급 조절이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 강태식을 연기하는 설경구는 나이답지 않은 날렵함을 과시하며 숨 한 번 제대로 못 돌리고 뛰어다니지만, 예상 가능한 범주의 이야기와 편집의 아쉬움은 관객을 온전히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유도의 메치기부터 프로레슬링의 헤드락에 이르는 다양한 격투 기술에 자동차 추격전까지 등장함에도 액션의 즐거움이 어딘가 모자라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건을 위한 사건, 주요 캐릭터의 전형적인 설정 또한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이다.

다행히 이 영화에는 송새벽, 이성민, 오달수가 있다. 매 장면 ‘씬 스틸러(scene stealer)’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웃음을 선사하는 세 배우의 연기는 영화 <해결사>를 즐겁게 만드는 최대 장점이다. 적어도 이들의 연기를 보는 동안은 마음껏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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