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 이렇게 대비하라] 학습의 시작도 끝도 독서… ‘평생 독자’ 길러낸다
  • 김은하 | 고려대 강사 ()
  • 승인 2010.09.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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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육 선진국 영국의 사례 초등 3학년 과정에서 3백쪽짜리 장편소설을 교재로 사용하기도

▲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영국의 학생들.

독서 교육을 모범적으로 하는 나라로는 영국과 핀란드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영국의 독서 교육을 면밀히 관찰했고 <영국의 독서 교육>이라는 책을 쓴 김은하 고려대 강사의 글을 싣는다.

독서 교육을 모범적으로 하는 나라로는 영국과 핀란드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영국의 독서 교육을 면밀히 관찰했고 <영국의 독서 교육>이라는 책을 쓴 김은하 고려대 강사의 글을 싣는다.

 

독서 교육을 모범적으로 하는 나라로는 영국과 핀란드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영국의 독서 교육을 면밀히 관찰했고 <영국의 독서 교육>이라는 책을 쓴 김은하 고려대 강사의 글을 싣는다.

 

독서 교육을 모범적으로 하는 나라로는 영국과 핀란드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영국의 독서 교육을 면밀히 관찰했고 <영국의 독서 교육>이라는 책을 쓴 김은하 고려대 강사의 글을 싣는다.

 

영국 아이들은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될까? 독서 교육은 학교에서 어떻게 이루어질까? 영국의 독서 교육이 가장 먼저 우리와 대비되는 점은 교과서 대신 책이 수업의 교재로 쓰인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국가나 지자체가 통제하는 국정·검정·인정 교과서가 없다. 영국이 특수한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참고 교재 정도로만 이용하고, 다양한 읽기 교재를 수업에 도입하는 것이 지식정보화 사회의 세계적인 추세이다. 교과서를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오히려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는 독서 교육이 한정된 교과로서의 ‘독서’ 과목이나, 재량 활동, 숙제, 방과 전·후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영국에서 책읽기는 모든 교과의 기본 활동이다. 국어 시간에 초등 학생 저학년은 그림책으로,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세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 작가들부터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단행본으로 수업한다. 우리의 경우 교과서의 진도에 쫓겨서 의무교육 기간 동안 중·장편 단 한 편도 함께 읽고 수업하기 어렵지만, 영국은 초등학생 3학년만 되어도 3백쪽에 달하는 호흡이 긴 장편을 교재로 쓴다. 사회 시간에는 책읽기에 토론과 체험이, 과학 시간에는 책읽기에 실험과 관찰이 더해진다. 과목만 달리할 뿐, 초등 1학년부터 대학원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책읽기, 말하기, 글쓰기, 책이나 보고서 만들기가 핵심적인 교육 활동이다. 독서 교육은 진도의 바깥이 아닌 학교 수업의 중심에 놓여 있다. 따라서 전 과목의 교사들은 독서 교육에 관여하며, 수업을 위해서는 자기 과목의 어린이 청소년 책에 통달해야 한다. 학교의 시험, 국가 단위의 시험, 중등교육 졸업시험(GCSE), 대학 입학시험(A-level)도 지필시험은 모두 주관식 서술형이고 이에 수행 평가가 더해진다. 따라서 반복적인 문제 풀이, 특히 ‘보기’ 가운데 답을 고르는 객관식 풀이 연습은 학교 내신에도, 입시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서점이 참고서·문제집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반면, 영국의 서점에서 문제집 코너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이야기 나누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다.

둘째, 영국의 독서 교육은 ‘자율적인 시민’, 즉 각자 자기 나름의 ‘좋은 삶’을 숙고하고 자신이 설정한 좋은 삶을 남들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른다는 교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각자가 원하는 좋은 삶의 여러 요소들, 즉 ‘어떤 직업·사랑·가족·마을·국가·세계·자연·신과의 관계를 추구할 것인가’를 학교 다니는 내내 자문하게 한다. 이러한 질문에 한편으로는 직접 경험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대답을 찾게 한다. 책을 선택하고 읽어나가는 과정은 아이들이 각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무엇을 더 알고 싶은지, 어떤 작가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는지, 어떤 그림에 더 미적으로 끌리는지, 어떤 이야기가 자신을 사로잡는지에 따라서 아이들은 각자 다른 경로를 간다.

자신이 원하는 삶과 관련된 책 골라 읽도록 해

학교는 적은 수의 책만 ‘필독’으로 선정하고 다수의 책은 추천 도서로 제시한다. 모두 함께 읽어야만 토론이나 연극 등의 교육 활동을 할 수 있거나, ‘고전’과 같이 글의 수준이 어려워 혼자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은 필독 도서로 정해서 교사와 함께 읽지만 그 밖의 책들은 선택적이다. 즉, 자신이 원하는 좋은 삶을 저울질할 수 있는 책들을 골라 읽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마다 독서의 족적이 다 다르고, 책 선택의 과정을 통해 책에 대한 안목을 키운다. 예를 들어, 옷과 관련된 장래 희망을 갖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는 패션디자이너나 모델의 자서전, 세계 각국의 복식에 대한 책, 의상이 자세히 묘사된 소설, 미술가의 화집, 그림책, 사진집, 패션 잡지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아이들이 고민하는 지적·정서적·도덕적·심미적 문제를 책과 함께 풀어갈 수 있도록, 책이 삶과 서로 겉돌지 않도록 도와준다.

셋째, 영국의 학교에는 학습을 위한 독서(reading to learn)와 즐거움을 위한 독서 (reading for pleasure) 사이에 균형이 있다. 학습과 관련된 독서뿐 아니라 내적인 동기를 가지고 책을 즐기는 ‘평생 독자’로 키워내는 것을 독서 교육의 다른 한 축으로 놓는다. 책을 읽고 나누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독서에 대한 내적 동기를 일으키며, 이는 평생 독자를 만드는 추동력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공공 도서관 이용자의 46%가 55세 이상이며, 이 가운데 75세 이상의 비율이 11%이라는 통계는 (CIPFAe 2004-5년) 평생 독자로서의 영국인들을 표현해준다, 평생 독자가 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죽을 때까지 책읽기를 통한 배움과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위치한 헬싱키 대학의 도서관. ⓒ연합뉴스
우리는 어떠한가? 2009년 문화부가 시행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한국인의 독서 시간과 독서량은 초등학생이 가장 많고, 중·고생으로 올라갈수록 심하게 적어진다.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은 1년에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학교 급이 올라가면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PISA 읽기 시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책을 읽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길러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읽는 능력은 가장 뛰어나나 읽기에 가장 관심이 없는(highly literate but a-literate), 20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책을 통한 성장과 만족을 멈추는 성인이 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엄밀한 학문적 탐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필자는 학습을 위한 독서, 외적 보상(평가·입시 등)을 위한 독서만이 강조되고,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간과한 우리의 독서 교육에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다.

 

영국에서 학교를 단위로 이루어지는 많은 독서 프로그램들, 리딩 커넥츠(Reading Connects), 독서 챔피언(Reading Champion), 독서 마라톤 (Readathon), 북타임(Booktime)과 북트업(Booked Up)은 모두 책읽기의 즐거움을 목표로 진행된다. 민·관이 협동해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유명 작가들이 학교를 찾아가고,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선수들과 레슬러들이 남자 아이들을 위해 책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유명 래퍼가 시집을 읽자고 교실로 간다. 독후 활동지를 검사받고 독후감을 평가받는 부담이 없이 아이들을 책의 재미로 인도한다. 이러한 독서 프로그램은 그냥 놔두어도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 책의 재미와 유용함을 아직 맛보지 못한 아이들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가장 잘한 1, 2등에게 상 주는 ‘대회’ 형식의 독서 교육 프로그램은 영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모든 아이들이 참가할 수 있고, 각자의 역량에 맞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도록 꾸려진다. 영국 정부가 일제고사 등을 통해 학력 증진에 초점을 맞추어 독서 교육 정책을 펼쳤을 때에도, 시민단체와 작가들은 시소의 다른 편에 올라타서 학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읽기가 즐거움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곰 사냥을 떠나자>를 쓴 마이클 로젠, <켄즈케 왕국>으로 알려진 마이클 모퍼고 등의 세계적인 아동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방송이나 글을 통해 정부의 독서 교육 방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자로 손바닥을 맞아가며 배운 피아노 체르니 30번, 군대에서 억지로 다리 찢고 배운 태권도 검은띠가 이후에 피아노와 태권도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꾸어내지 못했던 경험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독서 교육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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