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식 유머’는 빛나지만 퀴즈쇼의 결과는 허무해
  • 황진미 | 영화평론가 ()
  • 승인 2010.09.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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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시네마서비스 제공
장진 감독의 영화를 보아온 관객은 알 것이다. 산만한 전개, 작은 계기가 큰 사건이 되는 우연성, 약간 템포가 어긋나는 썰렁한 웃음, 별로 악하지 않은 이웃들의 솔직한 욕망과 순정한 여자의 죽음은 ‘장진 밥상’의 기본 메뉴이다. <퀴즈왕>은 여기에 많은 인물로 반찬 수를 늘린 5첩 반상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네 그룹의 인물이 산발적으로 스케치된다. 총에 맞은 채무자를 트렁크에 싣는 두 해결사, 똑똑한 아들이 집안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아버지, 도박하는 남편을 닦달하는 여자, ‘우울증을 이겨내는 모임’의 독특한 회원들. 이들이 우연히 한 장소에 모인다. 한 여자의 투신으로 4중 추돌 사고가 나고, 네 대의 차량에 타고 있던 이들이 경찰서로 몰려든다. 먼저 잡혀온 한 무리의 폭주 배달족들에 경찰까지, 그곳에 있던 이들은 투신한 여자의 소지품을 통해 무려 1백33억원이 걸린 퀴즈쇼 마지막 문제의 답을 보아버린다. 이들은 모두 퀴즈왕이 되기 위한 ‘열공’에 돌입하는데….

영화의 최대 매력은 엉뚱한 유머이다. 총에 맞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채무자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해결사나, 예고편에 공개된 임원희의 ‘재방송’ 발언, 경찰서에서 촛불 소녀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는 심은진 캐릭터는 재미있다.

그러나 영화가 퀴즈쇼로 수렴될수록 유머의 힘은 쇠락한다. 클라이맥스라 할 마지막 문제의 의미는 공허함의 절정이다. 왜 마지막 정답자와 방송사로부터 돈을 갈취한 ‘승리자’가 그들일까? 영화가 해결사와 마찬가지로 트렁크에 갇힌 채무자의 생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감독은 해결사를 지지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우리는 참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그나마 자신을 나쁘다고 인정하는 악인은 착하다는 뜻일까? 순정한 사랑은 죽음이 되고, 도덕은 환멸이 되었다. 휴머니즘이 아닌 염세주의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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