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 외면한 ‘인생 찬가’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0.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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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가족 틀 안에서만 짜여진 판타지라 울림 없다는 비판받으며 시청률 지지부진

우리가 지금 현재 사는 삶은 정말 아름다운가. 아이들은 길거리에 나서기가 무서울 정도로 허술한 치안 속에 내던져져 있고, 청년들은 원천적으로 뽑지 않는 취업 전쟁 속에서 좌절하고 있다. 중년들은 언제 잘릴지 모를 아슬아슬한 자리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노년들은 이제는 해체되어버린 가족의 틀 바깥에서 외로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과연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가.

김수현이 최근 극본을 쓰고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리는 풍경은 이런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배경부터가 일상에 지친 사람이라면 판타지처럼 꿈꿔왔을 제주도, 그것도 펜션이다. 누군가는 하룻밤을 꿈꾸던 공간이 이 드라마 속에서는 일상 공간인 셈이다. 물론 거기 살아가는 이들 역시 초상류층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중상류층 이상이다. 이 집안의 중심인 김민재(김해숙)는 잘나가는 요리사이고, 그 남편인 양병태(김영철)는 노년의 걱정이 없는 펜션의 사장이다. 병태의 동생 병준(김상중)은 리조트의 상무로 그 회사 회장 딸과 중년의 로맨스를 그려나가고, 병태의 아들 태섭(송창의)은 동성애자이지만 의사이다. 민재의 딸 지혜(우희진)와 그 남편 역시 리조트와 면세점에서 일하며, 호섭(이상윤)과 초롱(남규리)은 신세대답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즉, 이들에게 취업의 고민이나 아이에 대한 걱정,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 생활 같은 현실적 고민은 아예 지워져 있다. 그렇다. 이들에게 ‘인생은 아름다워’ 보인다. 이들이 겪는 고민이라는 것은 그래서 대체로 가족 간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이 들어 조강지처를 찾아 돌아온 할아버지(최정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나, 재혼한 김민재가 옛 남편의 죽음을 그 딸인 지혜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혹은 자존심 강한 노총각 병준이 잘나가는 회장의 딸 조아라(장미희)와 현실적인 결혼을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 같은 것이다. 즉 <인생은 아름다워>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가족 내에서의 문제이다. 가족 바깥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이 판타지 공간 속에서의 인물들은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낸다.

물론 동성애자인 태섭처럼 좀 더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섭의 문제 역시 동성애자가 사회와 어떻게 부딪치며 싸워나가는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성애자의 문제를 가족의 틀로 끌어온 <인생은 아름다워>는 가족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주는 것을 미완의 해결책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아웅다웅하고 상대편 가족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다는 시각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실제 동성애자가 겪는 현실이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 ⓒSBS 제공

김수현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 전개

즉 <인생은 아름다워>는 지금껏 김수현 드라마가 위치하고 있던 현실의 중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직설적으로 문제를 회피하지 않던 지금까지의 김수현 작품과는 꽤 거리가 있는 행보이다. 이 드라마가 어떤 일정 부분 이상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왜냐하면 드라마가 내적으로 완성도가 있고 대사가 아무리 감칠맛을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에 던지는 어떤 울림이 없을 때 대중적인 공감은 얕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후반으로 진행되어 갈수록 매번 비슷한 시퀀스가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사는 그것이 현실적인 공감을 가져올 때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허무한 수다처럼 여겨지게 된다.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이런 지적은 조금 과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좀 더 엄밀한 잣대로 드라마가 가진 가치를 모색해보는 이유는, 김수현이라는 이름이 우리네 드라마사(史)에서 하나의 거대한 권력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가 그려온 일련의 가족 드라마는 음으로 양으로 작금의 우리네 드라마에 가족 드라마 경향을 만든 것이 사실이다. 가족 간에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끈끈한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는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다루어진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가족이라는 틀을 내세우면 그 특유의 정이 주는 감성으로 쉽게 해결에 도달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것은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이든, 사극이든, 시대극이든 상관없이 등장한다. 복수는 가족애라는 틀 위에서 정당화되고, 범죄에 가까운 빗나간 핏줄 의식 역시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이해된다. 예를 들어 <제빵왕 김탁구>나 <자이언트>가 가진 이야기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거기 꿈틀대는 가족에 대한 핏줄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나마 이 가족의 틀에 어떤 모험적 시도를 하는 작가 역시 김수현이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휴식년을 요구하는 엄마나, <내 남자의 여자>에서 불륜을 통해 그려낸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다룬 것은, 김수현 작가가 이 가족이라는 보수적 틀 위에서도 늘 당대의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든든한 증거였다. 그래서 늘 가족에 대한 회귀로 드라마는 끝이 나지만, 그 과정 속에 드러나는 문제의식만큼은 늘 뾰족하게 벼려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가족주의 속에서 풀어내는 작업이 가능한 것은 그 현실의 문제가 가족 자체를 파괴하고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다. 만일 현실이 이미 가족을 해체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면 김수현 드라마는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극으로 시선을 옮겨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섣부른 가족주의의 회귀를 통해 현실에 등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 문제는 가족 드라마라는 틀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소재이다. 가족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자, 김수현 작가의 팬층인 중·장년층이 받아들이기에 동성애 문제는 너무 앞서간 면이 있다. 이제 해체될 대로 해체된 사회에서 가족 드라마는 판타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늘 현실을 고민해 온 김수현 작가 역시 어떤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바깥으로 나와 사회의 이야기에 눈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가족 속에서 여전히 판타지를 소비할 것인가. 이것은 김수현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네 드라마의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속에 사회를 담았던 ‘김수현 드라마’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는 늘 가족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가족의 구성원은 모두 당대 사회가 가진 트렌드를 담고 있다. 따라서 가족 관계 속에서 겪는 문제는 이 사회의 트렌드가 가족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가를 보여주게 된다.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그 끝단까지 끌고 감으로써 인간 본연의 욕망과 사회적 통념 사이의 간극을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당대 사회가 겪고 있는 해체되어 가는 가족을 담아냈다면, <엄마가 뿔났다>는 지금껏 숨죽이며 한평생을 살아온 엄마가 가족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달라진 가족 관계 속에서 엄마의 위치를 포착해냈다. 이처럼 김수현 작가는 가족이라는 보수적인 소재 위에서 당대 현실 속의 변화된 양상을 혁신적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늘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새롭게 변주되는 것은 바로 이 달라진 현실에 대해 늘 작가가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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