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은 최전성기 대중음악계는 힘든 걸…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0.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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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소녀시대 등의 일본 진출 성공에서 엿보는 ‘빛과 그림자’

우리 걸그룹들이 일본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그에 따라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도 한류는 있었다. 우리나라의 배우, 드라마 그리고 보아나 동방신기 같은 가수들까지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걸그룹이 인기를 좀 얻었다고 하여 그것이 그리 대단한 사건일까?

그렇다. 대단한 사건이다. 이번 걸그룹의 진출은 기존 한류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의 경우는 중·장년층 주부의 향수에 호소한 면이 있었다. 때문에 일본에서도 그리 높게 평가되지 못했었다. 보아나 동방신기 같은 경우는 말하자면 인력 수출에 해당된다.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 외국 용병이 활동하는 것처럼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일본 대중문화의 일부분으로 활동한 것이다.

반면에 이번에는 한국 대중문화 산업 자체가 일본에 진출한 구도이다. 이들은 외국 팝스타의 위상으로 일본 시장에 ‘침공’을 개시했다. 그리고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이에 반응했다. 마치 과거에 ‘뉴키즈 온 더 블록’이 한국 시장에 나타났을 때와 같은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젊은 여성들은 중·장년층 주부와 달리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류가 드디어 ‘아줌마 취향’에서 벗어났다.

▲ 지난 8월25일 일본 도쿄 무대에서 펼쳐진 소녀시대 공연. ⓒ연합뉴스

 일본은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말하자면 종주국이었다. 한국은 오랫동안 일본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걸그룹 진출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마침내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맨 앞자리에 선 것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며 경제 대국인 일본의 젊은이들이 움직인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 경쟁력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준 인증과도 같은 의미가 있다.

걸그룹 성공의 길을 처음 닦은 것은 드라마였다. 어쨌든 드라마를 통해 일본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서 보아나 동방신기의 활동이 한국 아이돌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런 흐름이 걸그룹이 안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거기에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우리 걸그룹은 일본에는 없는 콘셉트였다. 일본의 아이돌 걸그룹은 귀엽고 ‘예쁜’ 소녀의 느낌이다. 반면에 한국 걸그룹은 귀여우면서도 섹시하다. 안무도 귀여운 율동을 넘어선 수준이다. 음악도 완성도 높은 성인 팝까지 소화한다. 한마디로 무언가 성숙하고 완성된 느낌이다. 이것이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으며 일본 시장에 충격을 가한 근본적인 요인이다.

게다가 실력도 있었다. 걸그룹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아이돌들은 모두 확실히 그럴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붕어 가수’ ‘5초 가수’라고 비웃음을 사던 그들이었지만 사실 한국 아이돌들은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켜왔다. 특히 소녀시대를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가 그런 흐름을 선도했다. 한국 걸그룹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선배들이 깔아준 레드카펫 위에서 자신들의 경쟁력으로 최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 걸그룹이 성숙해서 놀랐다. 이것이 반갑기만 한 일일까? 왜 나이 어린 아이돌 걸그룹이 성숙해야 한다는 말인가? 왜 그들이 어른 흉내를 내며 귀여운 노래부터 성인 팝까지 모든 음악을 ‘싹쓸이’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본의 한 방송은 한국 걸그룹의 특징으로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꼽기도 했다. 반갑지만은 않다.

한국 음반 시장은 현재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살아 있는 것은 아이돌뿐이다. 아이돌에게만 모든 자원이 집중된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특별 훈련과 한국 최고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는다. 또 방송사의 전폭적인 뒷받침 속에 실전 경험을 쌓는다. 마치 태릉선수촌에서 길러낸 대표 선수 같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쟁력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다.

▲ 를 데뷔곡으로 일본에 진출한 카라. ⓒ연합뉴스

해외 성공의 긍정적인 의미와 별개로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한 비판은 살아 있어야

걸그룹이 ‘국민 동요’를 부르며 섹시함을 내세우는 것은, 결국 어린 아이들까지 걸그룹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섹시춤을 추는 세태를 낳았다. 이것은 <스타킹>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표출되었고 많은 사람을 걱정하게 했다. 우리 아이돌 걸그룹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가운 일이지만, 거기에 취해 이런 문제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해외 성공의 긍정적인 의미를 짚는 것과 별개로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동안 아이돌 걸그룹에 대한 비판이 거셌었다. 그런데 걸그룹이 일본에 진출한 이후 비판이 사라졌다. 갑자기 걸그룹은 영웅이 되어버렸다. 원래도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던 아이돌 지지 여론은 더 뜨거워졌고, 이런 열기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아도 아이돌에게 집중되었던 스포트라이트가 더욱 강하게 모아지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아이돌 이외에는 모두 죽어버린 우리 대중음악 시장의 황폐함이 더욱 악화될 것이고, 아이돌의 경쟁력조차도 위협받을 것이다. 내부 비판이 원천 봉쇄된 상황에서 기존의 성공에만 안주하면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있었던 아이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오늘날 실력파 아이돌을 낳은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판의 목소리는 언제나 매서워야 한다. 근본적으로 음악 시장에서의 장기적인 경쟁력은 실력과 음악성일 수밖에 없다. ‘나이 어린 소녀의 충격적인 섹시함’은 결코 오래 갈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한류를 더욱 풍성하고 강력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음악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또 다양성을 키워야 한다. 더 다양한 아이돌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아이돌 걸그룹의 한류도 자리 잡고, 더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 전체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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