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이제 ‘통미봉남’은 없다
  • 김동현│미국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0.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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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김정은 등장 따라 대북 정책에 큰 변화 예상…‘기다리는 전략’으로는 북핵 해결 진전 없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이 북한의 다음 권력 후계자로 사실상 공식화된 것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쇼킹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필자는 주변에 “북한 체제를 제대로 들여다본다면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북한은 서방에서 말하는 것처럼 ‘스탈린식 공산 국가’가 아니라, ‘유교적 민족주의 독재 군주 체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헌법과 노동당 규약에서도 ‘공산주의’라는 말을 삭제했다.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아직도 쓰고 있지만, ‘우리식 사회주의’로 변질된, 북한 특유의 사회주의를 말한다. ‘우리식 사회주의’는 주체·선군주의와 유교적 영향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주의를 이념적으로 지향하면서, 공산당식 감시 체계를 철저하게 실천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구호이다.

▲ 북한 851부대를 방문한 김정일과 김정은(앞줄 왼쪽 세 번째). ⓒ연합뉴스

‘대화 무용론’도 거세게 일어

그러면 미국은 이러한 북한 내부의 사정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정은 시대를 맞아 비핵화를 비롯한 향후 북·미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워싱턴이나 서울의 대북 정책이 변화하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 북한의 태도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계속 ‘강경 도발’과 ‘대화’라는 투트랙을 유지할 것이다. 좀 더 분명한 것은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미국은 ‘기다리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북한이 도발 행위를 중단하고 비핵화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 포기 △핵 보유 지위 거부 △비핵화 공약 이행 촉구 △회담을 위한 회담은 불원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요구 △북한 차기 정권의 핵 보유 불용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정치·경제적 보상 제공 용의 등이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및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김정은이 사실상 차기 권력자로 확정된 후, 미국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워싱턴은 북한에 대한 종전의 입장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지난 10월6일 커트 켐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일본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것도 서울과 도쿄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한 것이었다.  켐벨 차관보는 최근 들어 워싱턴에서 누차 말해 온 것처럼, 도쿄 기자회견에서도 “비핵화 과정에 진전이 있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나는 남북 간의 대화 재개이고, 또 하나는 북한이 ‘9·10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비핵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분명한 신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켐벨 차관보는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 공조는 ‘르네상스’를 맞은 것처럼 전에 없이 긴밀해졌으나, 남북 관계 개선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한국 지도층의 판단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즉, 미국은 북한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적인 결정을 존중하고, 이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한편 최근 미국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해진 가운데, 북한과는 협상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대화 무용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주장은 북한에 대한 완강한 부정적 인식과 지금까지의 협상 경험의 실패를 근거로 한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미국은 김정일 정권보다는 다음 정권과 협상을 하도록 기다리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대북 정책을 새로 짜야 한다’는 견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차기 정권이 긍정적으로 대화에 응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어느 시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은 체제로 핵 협상권을 넘겨줄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미국이 추구하는 ‘기다리는 전략’의 시한도 설정된 것이 없다.

한·미 동맹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

또 다른 일각에서는 “북한의 급변 사태설과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서 관련국들과 공동으로 대책을 협의하거나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주로 보수 성향의 미국 인사들이 하는 말이기는 하다. 한·미 양국의 군 당국자들이 이미 ‘개념계획 5029’를 ‘을지자유수호 연합 훈련’에 실제로 반영하고 있는 것도 비밀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 붕괴 지수 개발 작업에 착수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내 ‘북한 붕괴론’ 지지자들은 이제 미국의 경우 국방부뿐 아니라 국무부도 이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국제적으로도 중국이 북한 급변 사태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미·일 3국만이라도 본격적인 대책을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북한의 급변 사태 및 붕괴론은 대부분 제한된 정보와 추측을 근거로 할 뿐,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붕괴론을 밑받침하는 추측의 하나는 북한이 권력 승계 과정에서 권력 투쟁이 생기고 이것이 쿠데타나 내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징후는 지금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 등장이 공식화하면서 승계 작업은 김정일의 뜻대로 안정 속에서 마무리되어가는 흐름이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북한 문제를 보는 미국의 심경은 편하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마냥 한국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기다리는 전략’은 한·미 관계를 다진 것 이외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 어떤 진전도 가져온 것이 없다. 미국 내 일부 현실주의자들은 “북한의 도발 억제, 전쟁 방지, 제재 강화도 좋지만, 북핵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느냐”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 미국은 내부적으로 ‘기다리는 전략’의 수정을 조용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미국은 일단 한국의 결정을 기다려보자는 것으로 결론 낸 것이 아닐까 해석되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 북한은 이미 두 개의 핵폭발 장치와 여섯 개 정도를 더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갖고 있는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라는 점이다. 지난주 영변 핵시설의 복구와 관련된 영상 자료가 공개되었고, 플루토늄뿐 아니라 우라늄 농축 등으로 핵 무기고를 증대시키겠다는 북한의 공언과 그 공언의 실천 가능성을 놓고 볼 때, 북핵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라는 거센 압력을 받고 있다.

한국이 먼저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바꾸고, 남북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한·미 양국이 비핵화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한국의 일부 진보 성향 인사들은 미국이 한국을 설득하기를 희망하지만, 중국이 절대 강자로 떠오르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미국은 한·미 동맹 관계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즉,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북한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셈이다. ‘통미봉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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