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한 유럽, 지역감정은 골 깊네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1.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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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 내에서도 이러저런 사연으로 지역색 뚜렷…내부로는 분리 성향, 외부로는 통합 지향

 국가 간에 존재하는 편견과 함께, 국가 내에 편견이 있는 것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특히, 자신이 모르는 지역에 대해서 갖게 되는 선입견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관찰에 의한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을 자신이 직접 확인하게 되는 경우 편견으로 굳어지곤 한다. 우리나라도 지역감정 문제 때문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홍역을 치른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고질병처럼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우리나라만 그럴까.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 각국도 한 나라 안에서조차 지역색과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밀라노나 베네치아 같은 북이탈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 밑 남쪽 이탈리아 사람들을 유럽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로마 위쪽이 경제적으로 더 잘살기 때문이다. 남쪽은 농업 위주이고, 산업화에서 뒤쳐진 시실리 섬은 마피아의 근거지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남부 바이에른 지방은 독일 어느 지역보다 높은 지역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실제로 바이에른은 독일 16개 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주이다. BMW 등 독일 주요 제조업체가 바이에른에 있어, 바이에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이라고 하지 않고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할 만큼 독일 어느 곳보다도 지역적 우월감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Munich)이 히틀러의 나치당이 창단된 곳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 독일 바이에른 주의 뮌헨에 있는 자동차 회사 BMW 본사.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이라고 하지 않고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라인 강 서쪽에 있는 쾰른과 본에 사는 독일 사람들은 라인 강 동쪽에 사는 독일 사람들을 문명 밖에서 산다고 놀리기도 한다. 라인 강 서쪽까지 통치했었던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BC 27~AD 476년, 동로마제국-AD 330~1453년)의 로마인들이 라인 강 건너는 훈족이 지배했기 때문에 문명 밖이라고 여겼던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다.

통일 독일의 통합은 아직도 멀어…

한편, 통일 후 다시 하나가 된 동·서 베를린 간에도 분단의 잔재인 지역감정이 남아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1년이 지났고, 독일 통일은 1991년에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통일 독일의 통합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 일간지 베를린자이퉁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옛동독 주민의 49%가 동독 시절이 좋았다고 답했다. 서독 응답자의 25%와 동독 응답자의 12%가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우자는 의견을 냈다. 겉으로 볼 때 통일은 이루어졌지만, 내면적인 통일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44년간 분단된 독일의 통합 과정이 이러한데, 분단 65년이 된 한반도의 통일 후 통합 과정에는 훨씬 더 긴 세월이 걸릴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남부 스코네 사람들의 사투리를 표준 스웨덴어가 아닌 덴마크어라고 놀리기도 한다. 스코네 지방은 실제로 1658년까지 덴마크 영토였기 때문에 스웨덴 국기의 노란색과 덴마크 국기의 빨간색 바탕을 섞어서 만든 ‘스코네 깃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 깃발을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집에 게양하거나, 차에 달고 다녀도 스웨덴 정부에서 독립주의자나 반정부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적대국이었지만, 지금의 덴마크와 스웨덴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관대하게 그저 애교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와 꼬트 다쥐르 지방 사람들은 북쪽의 덩커와 릴 같은 도시 사람들이 냉정하고 불친절해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지중해의 온화한 기후에 따른 프랑스 남부 지방 사람들의 우월주의라고 여겨진다. 지역별로 파리의 직업군을 형성하는 것도 흥미롭다. 클레르몽페랑의 오베르뉴 지역 사람들이 파리의 카페와 담배 상점을 거의 독점하고, 나폴레옹이 태어난 코르시카 사람들은 프랑스의 정계와 공무원 사회의 핵심 세력을 형성해 코르시카 마피아라고 불린다. 알자스 로렌 지방 출신 사람들은 파리의 주요 식당들을 장악하고 있어 다른 지역 사람들과 서로 견제 대상이다.

지역감정 ‘폭발’하는 스페인 프로 축구

▲ 스페인 프로 축구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경기. 두 팀의 연고지 사람들은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해 경기가 있는 날에는 두 지역이 전쟁을 치르는 느낌을 준다. ⓒAFP연합

스페인의 지역주의를 논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두 지역은 스페인 북부의 빠이스 바스크와 동쪽에 위치한 까딸루냐이다. 상당수의 주민이 더 많은 자치를 요구하고 있고, 심지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할 정도이다. 유럽이 정치 통합체로 발전하면서 이들 지역에서는 스페인의 한 지방이기를 거부하고 유럽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두 지방 모두 스페인어 외에 고유 언어를 사용하고 정치·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프랑코 독재 시대에 고유 언어 사용 금지 등 정치·사회적으로 극심한 탄압을 겪으면서 오히려 저항 의식이 증폭되고, 이로 인해 지역주의와 민주화 운동이 결합된 양상으로 발전했다. 빠이스 바스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에타(ETA)라는 극좌 테러 단체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영국이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 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테러 공격 대상이었듯이, 에타는 스페인 중앙 정부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어 여전히 골칫거리이다. 일반 시민들의 라이벌 의식은 마드리드와 까딸루냐 지방 사람들 간에 특히 심해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축구 경기를 하는 날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양쪽 모두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UEFA컵에서 상대팀이 다른 나라 팀과 경기를 하면 다른 나라 팀을 응원한다고 하니 적대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한 나라 안에서도 복닥거리며 지역감정을 보이는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여러 유럽 국가가 어떻게 통합을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유럽인들은 내부적으로는 차별화에 따른 분리 성향을 보이면서,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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