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롯데의 불안한 식탐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11.1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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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예산만 지난해 7배로 급증…그룹의 무한 확장 전략에 ‘위험’ 경고 잇따라

 

▲ 지난 5월10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캐논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시사저널 박은숙

4조3천5백20억원. 롯데그룹이 올해 인수·합병(M&A)에 쏟아 부은 금액이다(도표 참조). 지난해 6천억원에 불과했던 인수·합병 예산이 일곱 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석유화학, 백화점, 유통업체, 면세점, 제과, 음료, 패션 분야 12개 업체가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닥치는 대로’ 집어 삼킨 롯데이지만 아직도 배고프다. 1조5천억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맥주 사업에 진출하려 하고, 인도네시아 2위 유통업체 마타하리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유통업체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건설자금만 1조원이 넘는 1백23층 초고층 빌딩 제2롯데월드는 착공 시기만 엿보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은 말레이시아 석유화학업체 타이탄케미칼을 인수한 데 이어 카타르석유화학복합단지(QPCC)와 우즈베키스탄 가스화학단지(GCC)를 설립하는 합작 프로젝트까지 추진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석유화학 분야 인수·합병을 더 추진하겠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추가로 M&A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수·합병 전략의 근거는 ‘비전 2018’이다. 롯데그룹은 2018년까지 그룹 총 매출액을 2백조원까지 늘린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올해 그룹 총 매출액이 50조원 안팎일 것으로 추산된다. 비전 2018을 실현하려면 앞으로 8년 안에 덩치를 네 배 키워야 한다. 비전 2018 창안자는 신동빈 부회장이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둘째아들로 한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형 신동주 부회장은 일본 사업을 맡고 있다. 일본롯데의 사업 규모는 한국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신동빈 부회장이 차기 총수로 주목받고 있다.

계열사마다 M&A 자금 마련하려 차입 늘려 

신동빈 부회장이 비전 2018을 실현하기 위해 채택한 성장 전략이 인수·합병이다. 그러나 성장 전략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인수·합병이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투자조사업체 모닝스타의 팻 도시 조사역은 저서 <성공 투자 5원칙>에서 ‘아주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했고 사업과 연관이 큰 소규모 인수조차 성공률이 절반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인수·합병에는 시간과 돈이 든다. 인수·합병은 핵심 사업에 들어갈 자원을 앗아간다. 팻 도시는 ‘경영진들이 기업 내실이 아니라 몸집을 키우느라 온 힘을 쏟는다면 어느 순간 바퀴가 마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성장률 높이기에만 치중하다 보니 성장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가 나빠지고 있다. 주력 업체 롯데쇼핑은 국내외 시장에서 덩치나 성장률에서는 경쟁 업체를 압도하고 있으나 경영 효율성이나 수익성 지표는 떨어진다. 롯데쇼핑의 올해 자기자본 수익률(ROE) 예상치는 6.8% 안팎이다. 자기 돈 100원을 투자해 7원도 되지 않는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경쟁 업체 신세계의 자기자본 수익률은 19.9%나 된다. 수익성을 기준으로 하면 신세계가 롯데쇼핑보다 세 배가량 앞서는 셈이다.

계열사마다 인수·합병에 소요되는 자금을 확보하려다 보니 차입이 늘어나고 있다. 호남석유화학은 지난 10월, 3천억원 규모의 무보증 사채를 발행해야 했다. 차입이 늘면 부채 비율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부채 비율은 50~60%에 불과하다. 빚이 자기자본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재무제표가 이만큼 우수한 대기업 집단도 드물다. 하지만 재무제표 숫자 속에 감춰진 속내를 들여다보면, 롯데가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9월 자산 재평가를 실시했다. 자산 재평가 차익이 4조9천6백16억원에 이르렀다.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롯데쇼핑은 자산 3조5천7백21억원이 불어났다.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칠성, 호남석유화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산이 5조원가량 늘어나면 그만큼 부채 비율은 줄어들어야 한다. 부채 비율이 소폭이나마 늘었다는 것은 4조원 가까이 빚이 늘었다는 뜻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다. ⓒ뉴스뱅크이미지


지속 가능성 떨어지는 사업 구성이 문제

자산 재평가 차익 5조원은 말 그대로 평가 이익이다. 현금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수·합병에 소요되는 자금은 현금으로 지출되거나 부채로 쌓인다. 그러다 보면 현금 흐름과 재무 구조가 나빠진다. 롯데그룹은 지금 현금 흐름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백화점이나 마트가 영업하고 있는 부동산을 팔고 다시 장기 임차하는 ‘세일즈 앤 리스백(매각 후 임차)’ 같은 금융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롯데쇼핑 같은 유통업체가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자주 쓰는 회계 기법인 세일즈 앤 리스백을 동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재무 기법을 활용해 재무제표를 ‘예쁘게’ 만드는 행위는 롯데답지 않다. 신세계는 자사 영업점이 있는 부동산은 임차하지 않고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구성)에서도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 호남석유화학은 신규 사업이나 혁신이 아니라 기존 사업을 양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2018년까지 매출 4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호남석유화학은 타이탄케미칼 인수로 인해 생산 능력 기준으로 아시아 2위에 올랐다. 고민은 신성장 동력이다. LG화학은 자동차용 2차 전지를 생산하고, OCI라는 석유화학업체는 태양전지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SK에너지도 2차 전지 생산 시설을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비교해 호남석유화학은 고부가가치 화학 소재 업종은 제한적이나마 갖추고 있으나 친환경 에너지 분야 사업부는 없다. 호남석유화학 관계자는 “경쟁 업체들이 새 성장 산업에 안정적으로 진입한 것과 달리 성장 동력이 없는 것은 호남석유화학의 아킬레스건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마다 석유화학 생산 시설을 앞다투어 증설하고 있다. 올해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 에틸렌 생산 능력이 1천만t 늘어났다. 아시아 1위 석유화학업체인 타이완의 포모 사에 화재가 일어나 단기적으로 석유화학 시장이 살아났으나 생산 능력 기준으로는 공급 초과를 우려해야 할 수준이다. 석유화학 제품이 워낙 경기에 민감한 만큼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기라도 하면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롯데가 몸집 불리기에 치중하면서 기업 문화까지 바뀌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현금 흐름과 자산 가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정 위주 성장 전략을 지나치게 고집하다보니 ‘돌다리도 두드리다 무너뜨린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신동빈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 나서자 상황이 바뀌었다. 롯데는 지금 전혀 롯데답지 않은 방식으로 무한 팽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 전문가 피터 린치는 저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에서 ‘수익성 높은 기업들이 터무니없는 기업을 인수하며 돈을 날리고 싶어 한다. 사업을 다각화하기로 작정한 기업들은 값이 턱없이 비싸고 사업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업 매물을 찾는다. 이렇게 하면 손실이 확실하게 극대화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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