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잔재 씻어내는 일도 할 것”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11.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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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 인터뷰 / “강탈 문화재, 노력하면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불법으로 강탈해간 <조선왕실의궤>와 궁내청 소장 도서 1천2백5책이 돌아온다. 일본 정부의 반환 결정은 민간 단체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 가운데 최고의 공로자는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인 혜문 스님(37)이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조선왕실의궤> 등의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해 7월 일본 도쿄 대학이 갖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국보 151호)을 반환받았고, 이번에 <조선왕실의궤>까지 성공적으로 반환받는 것을 이끌어냈다.

ⓒ시사저널 윤성호

혜문 스님은 1998년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에서 철안 스님을 은사로 하여 출가했다. 2003년 봉선사 주지로 부임한 철안 스님이 혜문 스님에게 산하 27개 전통 사찰의 문화재 조사를 맡겼다. 그는 이때부터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전면에 나섰다. 2005년 삼성 리움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소송’을 제기해 돌려받았으며, 소유권 확인 소송을 통해 회암사 출토 문화재의 소유권을 찾았다.

해외 약탈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2004년에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가 발단이 되었다. 혜문 스님은 반환받은 문화재 1천4백32점의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분개했다. 짚신, 막도장, 우체부 모자 같은 것들이 반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부터 ‘문화재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며 약탈 문화재 찾기에 본격 나섰다.

그해 일본에 건너간 혜문 스님은 교토에 있는 고서점에서 일본인 학자가 쓴 <청구사초>를 보고 <조선왕조실록>이 도쿄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를 구성해 2년 뒤 실록을 돌려받았다. 오대산 사고에 있던 문화재를 추적한 끝에 일본 궁내청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를 발족했고, 4년여의 노력 끝에 결실을 맺었다. 지난 11월10일 저녁 서울 종로에 있는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에서 혜문 스님을 만나 약탈 문화재 반환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일본 정부의 <조선왕실의궤> 반환 결정을 어떻게 보는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일제 강점기에 수탈당한 ‘민족 문화재의 반환’이 성사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특히 1965년 한일협정으로 우리 정부가 ‘문화재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없게 된 현실적 한계를 민간의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는 2006년에 출범한 이후 한·일 양국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그리고 남북 불교계의 공조 등을 통해 오늘날 ‘민족적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 8월을 의궤 반환 시점으로 정하고 총력을 기울였다. 지난 7월과 8월에는 19일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 인사, 언론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이들에게 일본이 자발적인 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총리 담화에 포함시키도록 설득했다. 이것이 일본 정부를 움직인 계기였던 것 같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의궤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고 있던 때였다.

돌아오는 문화재 중 국가 지정 문화재는 없는가?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국가 지정 문화재는 한 점도 없다. <조선왕실의궤>만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의궤 역시 우리나라의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환수위는 지난 11월8일 국회에 ‘일본 궁내청에서 되찾은 의궤 국보 지정 청원’을 제출했다. 역사적·문화재적 의미에 주목해 국보로 지정해달라는 취지이다. 나머지 도서들은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정부에 ‘의궤 국민 환영 행사’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의궤 반환의 역사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정부에 ‘국민 환영 행사’를 광화문광장에서 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환수 운동 과정에서 협력해 온 서울시와도 이런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또한 국회에 청원한 바와 같이 의궤가 국보로 지정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후세에 물려줄 문화재로서 역사적 의미가 더해지는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도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혜문 스님이 ‘박정희 전 대통령 헌납’이라고 적힌 현판을 가리키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원론적으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적극 지지하고 희망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외규장각 도서에 대해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문화재를 수탈당한 데는 일본이 중요한 원인 제공자이다. 그런데도 ‘외규장각 도서’가 수탈 문화재의 대명사가 된 것은 좀 의아한 일이다. 특히 올해처럼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해에 정부나 시민단체가 일본 소재 문화재에 주목하지 못하고 외규장각 도서에 집중한 면은 아쉽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반환에서 보듯 우리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환받을 수 있다. 환수한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달라졌으면 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2006년에 반환된 실록에 도장을 날인한 일, 그 뒤 지금까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것, 유네스코에 추가 지정 신청을 하지 않은 일 등을 보면 문화재 반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에서 돌려받은 명성황후 양탄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창고에 60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올 상반기 우리가 국민 감사를 청구하자 비로소 발견되었다. 옥새로 추정되는 도장은 미국이 1950년대에 반환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반환된 문화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문화재 관련 사건들에 대해 문화재 당국이 얼마나 나태하게 임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라마탑형 사리구’의 반환을 재추진하려고 한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사리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당대의 고승인 지공·나옹 스님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우리는 그동안 보스턴 미술관을 직접 방문해 사리구의 반환을 요청했었다. 미술관측에서는 ‘사리’는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나, 우리 정부는 사리와 사리구를 따로 받을 수 없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또한 일본 쿠시다 신사에 보관되어 있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데 쓰였던 ‘히젠도’를 폐기하거나 한국에 인도하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 여러 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데도 적극 나서겠다. ‘민족의 성지’로 불리고 있는 아산 현충사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온통 왜색으로 덧칠해졌는데, 여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순신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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