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전력 증강이 군 사고 불렀다
  • 김종대 / 군사평론가 ()
  • 승인 2010.11.2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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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개혁 의지 있는지 의문…기존 무기 개량해 운용성 제고하는 노력 필요

 

▲ 경기 여주군 대신면 이포보 부근에서 군부대 보트 전복 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1명이 의식을 잃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책임질 것이 참 많은 우리 국방부 수뇌부이다. 목이 열 개라도 버티지 못할 초대형 사건·사고가 올해만 해도 벌써 몇 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30대 연령의 조종사가 자기 나이보다 많은 전투기를 몰다가 추락하는 일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과부 제조기’라는 F-4 전투기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떨어졌다. 육군의 500MD 헬기, 해군의 링스 대잠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추락사고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후속 사업은 아직도 안갯속이다. 공군은 노후 기종과 관련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해군은 고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전대미문의 천안함 사건은 불가항력이라고 치더라도, G20 정상회의 직전에 제주도 남단에서 고속정이 어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은 기강 문란의 극치였다. 게다가 올여름에는 침투용 고속단정이 전복된 사건도 있었다.

육군은 최근 남한강에서 도하 단정이 전복되는 사고를 겪었다. 한동안 주춤했던 육군 내 사망 사건도 연말로 가면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올여름에 수륙 양용 장갑차가 침수되어 발생한 사고는 우리 지상 전력에 내재된 부실과 부조리의 일단을 드러냈다. 전차, 장갑차, 자주포, 대포병 레이더, 도하 장비의 성능이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상당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로 ‘사고’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에 논란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문제들이 이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우리 군이 ‘율곡 비리’ 파동으로 몸살을 앓은 이후인 1994년부터 올해까지 18년간 투입된 국방비 총액은 3백9조7천7백26억원이다. 1994년 당시의 국방 예산 10조7백53억원은, 2010년에는 29조6백39억원으로 명목상 2백88% 증액되었다. 1994년 당시 국방부는 “1990년대 말이면 대북 재래전력 열세가 극복된다”라며 미래 불특정 위협까지 고려한 첨단 신무기 도입 일변도의 국방 정책을 고수해왔다. 그 결과 우리 분수에 맞지 않는 신무기 도입에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붓는 동안 정작 전투원들의 생명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야전의 필수 전력은 계속 뒷전으로 밀려났다. 육군의 경우 연대급·대대급 편제 장비와 화력은 오히려 10년 전보다도 약화되었다. 전방의 근무 여건은 필자가 군대 생활을 하던 20여 년 전과 비교해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국방 전반에 인본주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무기 도입은 각 군 참모총장의 무언가 보여주기 식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흘렀고, 각 군과 국방부·합참 간에 정치적 흥정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야전 따로, 무기 도입 따로 이루어지는 기이한 현상으로 나아갔다. 기존 무기에 대한 성능 개량을 통해 운용성을 제고하는 노력은 거의 없이 오직 ‘차기 무기’만을 외치는 무모한 전력 증강이 관행화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과연 대한민국 군대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인가?”

이제 우리는 우리 군이 전쟁을 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두더지가 굴을 파고 앞으로 나갈 때 뒤쪽은 무너지고 있듯이, 일견 국방이 선진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면에서는 무너지고 있었다. 무기가 달라졌다고 해서 싸우는 방법, 즉 전법과 교리가 발전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군 구조와 전력 배치는 지난 1970년대와 비교해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똑같은 작전, 똑같은 교리, 똑같은 작전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현직 장군은 모두 3천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 한국적 군사 작전의 개념과 전략을 창안한 저술을 남긴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 까마득한 과거를 답습하면서 머리가 굳어버린 군대에는 3백조원이 아니라 6백조원을 투입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역대 정권마다 무수한 국방 개혁의 기회도 유실시켜왔다.

정치권력과 국방 관료들, 탁상공론 그만해야

현 정부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출범 직후부터 국방 개혁을 외쳐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1월과 2009년 6월에 각기 국방 개혁을 보고받고 새로운 국방 개혁 기본계획에 서명까지 했다. 그 다음에도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을 운영해왔고 국방선진화위원회, 안보총괄점검회의를 만들어 청와대가 직접 국방 개혁을 검토해왔다. 그밖에도 대통령 지근거리에 장관급 안보특별보좌관을 두었고, 위기관리센터도 확대 개편했다. 기획재정부에 ‘무기소요 검증위원회’를 운영한 바 있고, 미래기획위원회에 ‘국방 산업 발전 TF’를 운영했으며 감사원에 대규모의 행정안보국을 창설했다. 국정원 내의 국방담당 조직은 가장 큰 부서 중 하나로 확대되었다. 책임과 권한이 아리송한 무수한 국방관련 비공식 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사실 외교안보수석, 안보정책조정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국방부로 이어지는 공식 안보 라인도 방만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외에도 국민권익위원회, 검찰, 국세청까지 방위 산업 부조리를 척결한다며 직간접으로 국방 개혁과 관련을 맺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도 모자라 재향군인회 임원들과 대통령이 수시로 안보 문제를 토의한다. 국방 개혁을 외치며 대통령 주변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이 수백 명은 될 법하다.

그런데도 거짓말같이 국방 그 자체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2년 반을 이런 식으로 허송세월했는데 앞으로 무엇이 나올지 더 아리송하다. 일설에 의하면 최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주관으로 국방 개혁 관련 ‘점검 및 검증 조직’이 또 하나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는 국방비서관 외에도 경제비서관, 기획관리비서관, 민정비서관이 참여하는 최고 실세 그룹이라고 한다. 하여튼 국방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런데도 우리의 야전에서 전투원의 생명 가치를 제고하면서 전쟁 수행 능력을 혁신적으로 정비하려는 개혁적 흐름은 전혀 없다. 국방부장관이 그 많은 사고를 겪고서도 “우리 군의 장비 성능을 일제 점검하고, 개혁적 방향으로 군의 전력을 재설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언론 보도를 필자는 이제껏 보고 들은 적이 없다. 개혁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오직 예산이 부족하다는 예의 그 타령뿐이다. 청와대가 각 군의 작전을 새로 만들어질 합동군사령관이 통합해 지휘하도록 하고 참모총장 직제를 폐지하겠다는 개혁안을 만들자, 국방부장관은 “헌법 위반”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런 식의 소모적 논쟁으로 시간을 질질 끌면 이제 이 정부에서도 국방 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것이 국방부와 합참에 근무하는 대다수 장교단의 속마음이 아니겠는가?

우리 군의 장군과 대령, 중령은 실제 필요한 소요보다 최소한 30%가 많다. 인력을 줄이지 않으면 향후 선진화된 국방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재원 마련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군의 비대화된 기득권에 대해 대통령은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핵심을 비켜간 부수적 문제만 가지고 이러저리 검토해본들 개혁이 될 리가 만무하다. 그러는 동안 야전에서 전투원들이 희생되고 있다. 정치권력과 국방 관료들의 탁상공론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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