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조직 ‘돈줄’, 안에서 뚫렸다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2.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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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 미국 동맹들, 송금 차단 주문하는 미국에 비협조…위키리크스 외교 문건 공개로 밝혀져

 

  ▲ 지난 11월29일 미국 워싱턴에서 터키의 외무장관을 만나고 나오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EPA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알카에다, 탈레반, 기타 극단주의 세력으로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는 작전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검은돈을 차단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작전을 시작한 것은 9년 전이었다. 당시 테러 자금은 대략 연간 수백만 달러로 추산되었다. 이 돈은 주로 중동에 있는 미국 동맹들의 묵인과 비협조 속에 송금되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송금 차단을 주문했으나 자주 묵살당했다. 이런 사실은 위키리크스의 외교 문건 공개로 밝혀졌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국무부 관리들이 보낸 전문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들이 모금을 위해 사용하는 수법은 납치를 통한 몸값 갈취,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마약 밀매, 성지 순례를 통한 모금 등 다양하다. 지난해 예멘에서는 심지어 은행 강도를 위장하기도 했다. 미국 관리들은 그동안 테러자금 차단 작업이 성공하고 있다고 자랑했으나 거짓말로 드러났다. 알카에다·탈레반·하마스 같은 극단주의 세력으로 송금되는 돈은 거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미국의 강압적 방식에 반발하기도

지난해 12월 클린턴 장관이 보낸 전문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미국 우방들이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주요 자금줄이었다. 미국은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하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금된 돈은 주로 전세계 수니파 테러 그룹에 송금되었다. 아랍에미리트연방(UAE), 카타르, 쿠웨이트의 경우도 유사하다. 클린턴 장관은 이 자금 때문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연합군 작전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개탄했다.

자금 차단 노력은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집요하게 이루어졌으나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다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랍 국가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유화 정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도 차단 노력을 아예 포기하지는 않았다. 2009년 여름에는 특별대책반까지 만들어 부시의 정책을 이어갔다. 관련자 처벌, 자금 압수, 외국에서의 돈 세탁 규제 강화를 통해 일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성과는 기대에 크게 미흡하다. 미국이 테러 자금 차단에 열을 올릴 때마다 동맹국들은 반발했다. 동맹국 관리들은 미국 관리들과의 비공식 회담에서 미국의 강압적 방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 관리들은 아랍 자선 기관들의 모금 내역을 조사하라고 요구하면서도 필요한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덮어놓고 종교단체나 개인을 수사하라고 압박하는 바람에 중동 관리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쿠웨이트 관리들은 미국이 타국의 금융 거래를 멋대로 간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개된 전문에는 테러 그룹에 대한 극비 자금 루트에 관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소말리아의 한 성직자는 이 나라 반군 그룹 샤하브를 위해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를 여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파키스탄의 한 운전사는 자동차 의자 뒤에 24만 달러 상당의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화폐를 넣어 운반하다가 적발되었다고 보고했다. 심지어 어떤 메모에는 이란이 UAE(아랍에미리트) 은행을 통해 50억 내지 100억 달러를 세탁하려 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돈세탁의 목적은 페르시아만 국가들을 혼란에 빠뜨려 송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얼마가 실제로 테러 그룹에 흘러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2009년 8월 예멘에서 일어난 은행 강도 사건이다. 전문에 따르면 무장한 강도들이 백주에 아덴의 중심가를 달리던 은행 현금 수송 차량을 습격해 50만 달러를 강탈해 도주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 강도 작전을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이 강도 사건은 알카에다가 가장 혹독한 자금난에 시달릴 때 일어났다.

예멘 내 알카에다 지부는 아라비아 반도의 알카에다 작전을 총지휘하는 본부로서 미국에는 눈엣가시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소포 폭탄 사건을 음모했고 같은 해 12월25일에는 여객기 폭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 조직과 연결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관리들은 빈 라덴 그룹의 모금 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특사 리처드 홀브루크에게 보낸 전문은 알카에다의 모금 활동은 극도로 저조해 최악의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들은 이와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 돈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돈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의무 신고액에 미달되는 액수로 돈을 쪼개 송금했다. 모바일 뱅킹, 선불 카드, 인터넷 뱅킹도 이용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각국 정부의 자금 차단 조치는 늘 뒷북을 쳤다.

런던이나 기타 유럽 도시에서는 테러 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나 모금 활동은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없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고위 테러 대책반 관리는 유럽에는 돈은 많지만 실질적인 돈은 걸프 지역에서 거두어진다고 말했다. 테러 자금 차단 작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관련 정부들의 비협조도 한몫한다.

미국은 쿠웨이트에서는 이슬람 자선 단체의 활동에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이 기관들은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 쿠웨이트의 한 각료는 현지 미국 대사와의 회동에서 현행 쿠웨이트의 법률이나 규정으로는 자선 기관의 모금을 규제하거나 테러자금 수사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큰 골칫거리

▲ 지난 9월2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내무장관인 나예프 왕자가 ‘이라크 인근 국가 내무장관 모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PA

군사·외교적으로 중동에서 미국에게 가장 골칫거리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정보 관리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인접국 예멘에서 활동하는 반군 정보를 이용해 소포 폭탄 음모를 사전 적발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점으로 삼는 모금 활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 2월의 전문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해마다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돈은 라마단 기간에 순례자들로부터 거두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세 명의 탈레반 지도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나 이들은 미국 재무부의 모금책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미국 정부의 집요한 압력을 견디다 못해 검은돈을 차단하기 위한 전담반을 구성했으며 이 나라 종교 지도자들도 테러 자금에 협조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미국 정부는 마침내 자금 소스를 추적하는 전면전에 나서 걸프 지역의 모든 나라에서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지정했다. 미국 재무부의 고위 관리 스튜어트 레비는 이 작전 덕분에 알카에다의 재정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가끔 외교적 갈등도 빚어졌다. 부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협조 수위에 깊은 불만을 나타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왕에게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파이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는 미국의 조치에 불쾌감을 나타내면서 워싱턴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의 자금에 대해서 한 미국 은행이 부적절한 검열을 했다고 비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테러 자금 차단 책임을 맡고 있는 나예프 왕자는 2009년 홀브루크 특사와의 면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도 최선을 다하지만 ‘돈의 여행’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도 유사한 모금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바마는 테러리스트 소탕과 이들에 대한 자금 차단, 이슬람권과의 대화 등 모든 노력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알카에다와 탈레반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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