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세금으로 직원들 배만 불렸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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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에 대한 감사원 조사 결과, 편법으로 인건비 인상하고 예산 전용한 사실 드러나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가 편법적인 방법으로 직원 인건비를 올려 수백억 원을 쓴 사실이 감사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적십자는 여러 차례 보건복지부로부터 시정하라는 지적을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예산 집행을 강행했다. 감사원은 예산을 부당 처리한 적십자 전·현직 기획조정실장 최 아무개씨와 김 아무개씨, 전 사무총장 김 아무개씨에 대해 징계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헌혈의 집과 헌혈 카페 여덟 곳을 중복 설립한 책임을 물어 보건복지부에도 주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 서울 중구 소파길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정문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엄청난 적자에도 규정에 없는 수당 지급

적십자의 누적 적자는 해마다 가중되고 있다. 지난 2007년 말 기준으로 누적 적자가 1천억원(병원 운영 포함)을 넘어섰다. 2008년 적자는 1천1백60억원으로 확대되었다. 정부는 지난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혈액 수가(혈액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혈액 수가 인상으로 확보한 예산만 1천6백9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적십자는 4백62억원을 직원 인건비 등으로 전용한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 논란을 빚은 바 있다(<시사저널> 제1075호 참조). 적십자측은 당시 “혈액 사업 누적 적자가 가중되면서 급한 곳에 혈액백 교체비나 헌혈자 관리비를 사용했다”라고 해명했다. 적십자 관계자는 “지난 2005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 번도 혈액 수가가 인상된 적이 없었다. 해마다 상승하는 인건비나 재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는 반대였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적자에도 직원들은 규정에도 없는 수당까지 챙겼다. ‘국민의 세금과 후원금으로 직원들의 배만 불렸다’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은 투명해야 한다. 미국 적십자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금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회계 시스템이 투명하지 않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적십자는 지난 2007년부터 실적 평가급 명목으로 특별 상여금 100%를 지급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 12월 감사에서 “성과 평가도 없이 일률적으로 100%의 실적 평가급을 지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적십자 기획조정실장은 복지부에 ‘공정하고 타당한 실적 평가 제도를 정착시키겠다’라는 요지의 확인서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적십자는 예정대로 100%의 실적 평가급을 지급해 2008년 한 해에만 수십억 원의 손실을 냈다.

보건복지부의 개선 요구 무시한 정황도

▲ 서울역에 있는 헌혈의 집. ⓒ시사저널 윤성호

이듬해 7월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다시 상여금 문제가 불거졌다. 적십자는 2009년 1월 실적 평가급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해마다 50%씩 지급하던 하계·중추절 상여금을 100%로 인상했다. 퇴직금을 100% 추가 지급하는 단체 협약도 노동조합과 체결했다. 규정에도 없는 연·월차 수당을 만들어 손실분을 보전해 주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의 개선 요구에도 하계·중추절 상여금을 인상하는 방법으로 손실분을 보전해 주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적십자에 관련자의 문책을 요구하는 징계 요구서를 통보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는 “감사원 조사 이후 후속 조치를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적십자 인사정책팀 관계자는 “사무총장이 자진 사퇴했기 때문에 전·현직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인사 조처를 단행한 상태이다. 문제가 되었던 하계·중추절 상여금도 50%로 조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실적 평가급 제도도 대폭 개선했다. 이 관계자는 “실적 평가급을 차등 지급하기 위해서는 내부 평가가 필요하다. 추가 비용 때문에 그동안 내부 평가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소폭이지만 차등 지급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적십자가 성의 있는 후속 조치를 취할지는 의심스럽다. 감사원의 조치 이후에도 일부 바뀌지 않은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익명을 요구한 적십자 내부 관계자는 “2009년 폐지되었던 특별 상여금 제도가 내년 부활할 예정이다. 올해 95~100% 지급안을 노조에 제시했고, 내년부터는 100% 이상을 지급할 예정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은 채 흉내만 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지적한 노조의 도서 구입 지원비도 향후 3년간 유지할 방침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 지난해 10월1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대한적십자사 국정감사에서 유종하 총재가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적십자는 이번 감사원 조사에서 지난 2007년부터 20여 개 노조 지부에 매월 40만원의 도서 구입비를 지원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대구·경북 혈액원 등 산하 기관은 추가 협약을 통해 조합 임원의 출장비나 노조 행사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전임자 수를 초과한 21명의 인건비도 20억원에 달한다.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이후에도 이 부분 역시 수정되지 않고 있다. 적십자측은 “단기간에 모든 비용을 줄이기는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적십자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노조의 출장비 지급은 7월1일부터 중단된 상태이다. 전임자 문제도 내년 1월부터 타임오프제를 실시해 줄여나갈 예정이다. 노조의 도서 구입비는 주된 경비가 아니라 복지 후생기금이기 때문에 당분간 유지할 예정이다. 이 부분은 감사원과도 일정 부분 조율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적십자 안팎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가 않다. 적십자의 한 직원은 “도서 구입비는 명분이고, 사실은 노조를 위한 지원비이다. 지금까지 책을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전국적으로 현재 20개 이상의 조합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수억 원의 눈먼 돈이 노조에게 편법으로 지원되고 있다. 회계 시스템을 투명화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4백76억원 예산 유용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안 해 ‘봐주기’ 논란

감사원은 이번 조사에서 적십자가 전용한 4백67억원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 예산 전용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지 않은 탓에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적십자는 최근 5년간 혈액 수가(혈액 가격) 인상을 통해 1천6백92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가격만 올려 놓고 엉뚱한 곳에 예산을 썼다. 혈액백 교체 예산 54억원 가운데 실제로 집행한 금액은 3억5천만원에 불과하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검사비 등으로도 해마다 2백30억원을 배정했으나 실제로 사용한 액수는 1백60억원에 불과했다. 헌혈자를 늘리기 위한 예산은 30% 정도만 썼다. 보건복지부는 적십자가 돌려치기한 예산 상당수를 탕감했다. 4백67억원 가운데 3백52억원을 눈감아준 것이다. 감사원도 “인상된 혈액 수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혈액 관리 사업에 전용된 점을 들어 종결 처리한다”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대신 헌혈의 집 중복 투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보건복지부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헌혈의 집 56개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4백54억원을 지원했다. 또 1백81억원을 지원해 헌혈 카페 10곳을 신설토록 했다. 하지만 대학로와 명동, 종로 등 8곳의 헌혈의 집과 헌혈 카페가 중복되면서 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가 탕감한 전용 예산 3백억원은 건강보험이 지원했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는 “혈액 수가 인상분만큼 부당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기 등 형사적 책임도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민법상 부당 이익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향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종결 처리했다. 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책임연구원은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지금이라도 혈액 수가 인상액 무단 전용 규모를 명확히 하고, 부당 이득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던 적십자 퇴직 직원 김 아무개씨는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상태이다. 김씨는 “경영이 어렵다고 공공 재정을 제멋대로 쓴 책임을 묻지 않는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는 공공 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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