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검장에게 ‘견제구’ 던지는 총장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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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대형 사건 수사에서 서울중앙지검 배제시켜…‘그랜저 검사 사건’ 재수사 지시도 같은 맥락

 

▲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김준규 검찰총장 ⓒ시사저널 박은숙

군과 검찰은 조직 문화가 비슷하다는 평을 듣는다. 엄격한 ‘상명하복’ 체제가 그렇고, 후배가 서열상 높은 자리로 승진하면 선배 스스로 옷을 벗어주는 관례도 여전하다. 인사에서 출신 지역 안배를 중요시하다 보니 장관과 총장의 출신 지역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실세 총장’ ‘바지 장관’이라는 말도 나오고는 한다. 최근 이 두 조직 주변에서 ‘TK(대구·경북)’ 출신 특정 인사들, 특히 경북 상주 출신들과 관련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영포(영일·포항)’ 출신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실세 인맥’으로 불릴 정도로 잘나갔으나, 최근 들어 ‘위기론’이 감도는 분위기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그 첫 번째 진원지는 지난 11월 말 국방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졌다. 상주 출신으로 당초 국방부장관에 유력했던 이희원 안보특보가 막판에 낙마했다. 또 한 명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던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 카드 역시 무산되었다. 김 전 사령관 역시 상주 출신이다. 이들을 민 ‘영남 인맥’을 향해 이대통령이 “이 혼란스런 와중에 청와대 참모들은 자리싸움에나 몰두하고 있다”라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가 지금 검찰청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 검찰 내부는 어수선하다. 수뇌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과 불협화음 때문이다. 당사자는 김준규 검찰총장과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4월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기소했으나, 4월9일 1심 판결에서 무죄 선고가 났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뒤틀어졌다고 한다. 검찰의 한 간부는 최근 기자와 만나 “김총장은 특수2부가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수사하는 방식에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그때마다 노지검장이 김총장에게 ‘한 전 총리의 유죄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보고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이 나면서 검찰에 비난이 쏟아졌고 김총장은 상당히 진노했다”라고 전했다.

▲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시사저널 박은숙

이후 검찰 안팎에서 노지검장에 대한 여러 얘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노지검장이 중요 사안을 대검찰청이나 법무부 등에 보고하지 않고 청와대에 직접 보고하고 있다” “청와대 관련 사건을 뭉개고 있다”라는 것 등이었다. 대검의 한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노지검장은 검찰에서 통제가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지검장은 검찰 내부에서도 ‘성골’로 불린다. 경북 상주 출신이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이력 때문이다. 그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검찰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변변한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검찰은 마침내 지난 9월부터 정·재계를 향해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한화그룹을 필두로 태광·C&그룹을 거침없이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줄줄이 검찰로 불러들였다. 현직 국회의원 다수가 연루된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 로비 의혹에도 과감하게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이들 ‘대형 사건’ 수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은 배제되었다. 한화·태광 그룹 사건은 서울서부지검이, 청목회 사건은 서울북부지검이, C&그룹은 대검 중수부가 배당받아 수사하고 있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수사할 만한 사건들을 다른 지검으로 배당한 것은 김총장의 의지였다. 노지검장에 대한 김총장의 불만과 불신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김총장이 노지검장을 의도적으로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 결과 놓고 상반된 입장 취해

▲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왼쪽)이 지난 11월30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사람의 갈등과 불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맡았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수사 결과를 놓고도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총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늦었다’라는 지적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은 수사였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는 “압수수색이 늦었다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기본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라고 말했다. 노지검장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던 셈이다.

전직 부장 검사가 사건 청탁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를 받았다는 이른바 ‘그랜저 검사’ 사건에서도 두 사람은 극과 극을 달렸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7월 ‘그랜저 검사’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야당을 중심으로 재수사 요구가 일었다. 그러자 노지검장은 10월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수사했으며, 수사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총장은 11월16일 강찬우 특임검사를 임명해 재수사 지시를 내렸다. 노지검장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더군다나 특임검사팀은 그랜저의 대가성을 입증해냈고, 추가로 1천6백만원을 받은 사실까지 밝혀내 ‘그랜저 검사’를 구속 기소했다.

‘신한은행 사태’에서도 김총장은 노지검장에게 ‘일격’을 가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불기소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라응찬 회장 역시 경북 상주 출신이다. 그런데 김총장은 12월6일 저녁, 일부 검찰 출입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에 대해 횡령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기소 이전에 수사 내용을 공표하지 못하도록 한 ‘수사 공보 준칙’을 검찰총장 스스로가 어겨가면서까지 했던 발언이다. 부랴부랴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라며 총장의 발언을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검찰 간부는 “김총장과 노지검장의 파워 게임으로 보인다. 노지검장이 신 전 사장과 이행장 등을 불구속 기소 처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자 엄하게 사법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김총장이 일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지검장 입장에서는 또 ‘한 방’ 맞은 셈이다”라고 분석했다.

노지검장은 12월17일자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김준규 총장과의 갈등설’에 대해 “검찰 조직을 한참 몰라서 하는 얘기”라면서 “어떻게 검찰 수장인 총장과 일선 지검장인 나와 파워게임이 가능하겠나. 나는 대검 소속 검사장들과 함께 제1참모일 뿐이며 매주 총장을 만나 현안을 보고하고 협의한다”라고 말했다.

대검 대변인실측은 “갈등설에 대해 답변할 것이 없다”라고만 말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그랜저 검사’ 사건에 대해 “책임지겠다”라고 호언했던 노지검장이 현재 자신의 거취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2년 임기인 김총장은 내년 8월에 임기가 끝난다. 김총장이 임기를 제대로 마칠지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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