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眼下無國民’ …절정 이른 ‘국민 무시’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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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겨울에 정치는 없다. 성능 좋은 시한폭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시간에 맞추어 폭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3년 내내 벌어지고 있는 자살 퍼포먼스이다. 그들은 확실히 프로이다. 정치를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되, 밋밋한 종말은 원치 않는다. 늘 집단 결투나 피비린내 나는 액션을 구가한다. 뚫으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 모두 비장감에 전율하지만, 한결같이 감동은 없다. 어차피 관객을 고려한 대본이 없었던 탓이다.

이번 국회 예산안 처리를 두고 ‘형님 예산’이니 ‘핵심 사업 누락’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완전무결하고 대담무쌍한 ‘국민 무시’ 정신이다. 무슨 법안이, 누구를 위해 처리되어야 하는지는 애초부터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회기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어떻게’만이 지상 과제였을 뿐이다. 이미 대통령이 그렇게 못을 박아둔 터였다. 이 ‘회기 내 처리’는 국민들의 실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용만 잘 짜여진다면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닌 국민의 살림살이 문제를 이처럼 허겁지겁 날림으로 처리한 것은 ‘안하무국민(眼下無國民)’의 극치이다. 일반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당연히 파면이나 중징계감이다.

드라마이든 영화이든, 뻔한 스토리로는 관객의 눈길을 끌 수 없다. 국민들이 우리 정치에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로맨틱’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거두었다. 다만, 앞뒤 맥락 없는 ‘저질 액션’ 장르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장면을 볼 권리를 박탈했다면, 아름답지 못하고 부끄러운 장면을 보지 않을 권리만큼은 지켜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막장에다 스토리까지 뻔하다면 그것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정치권의 ‘국민 무시’ 정신은 또 다른 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맥이 끊어진 한국 격투 종목을 살려낼 올림픽 유망주로 손색없을 만한 괴력을, 예산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여당 국회의원에게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애썼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설사 그것이 ‘격려’가 아닌 ‘위로’ 차원의 치사였다고 할지라도 여간 부적절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대통령이 모든 사태의 정점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야당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야당도 정치적 직무 유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후에 장외 투쟁으로 만회하려는 레퍼토리도 이젠 좀 낡았다. 뻔한 스토리 전개에는 야당에게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국민 무시의 절정을 보여준 이들은 내년 봄쯤 다시 배시시 웃으며 입술에 ‘국민을 위해서’라는 립스틱을 잔뜩 바르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꼴을 더 보지 않기 위해, 또 비정상적인 ‘자폭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예 겨울마다 이들에게 합법적인 방학이라도 주는 것은 어떨까. 그를 위해 국민 발의로 ‘연말연시 국회 활동 정지법’이라도 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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