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빠졌던 태권도‘부흥의 발차기’ 보인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체전 개발로 새 가능성 열어…최근의 모스크바 대회도 대성황

태권도계는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번번이 고민한다. ‘재미가 없다’ ‘관중의 호응이 없다’는 이유로 올림픽 종목 축소 이야기가 나오면 태권도계는 시름에 빠진다. 그런데 태권도가 격투기보다 더 스피드하고 피겨스케이팅보다 더 화려하다는 찬사를 듣게 생겼다. 태권도 단체전 때문이다.

▲ 지난 12월10일 러시아 모스크바 마샬아츠센터에서 열린 ‘2010 월드 태권도 투어 모스크바‘는 박진감과 흥미로운 경기 진행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사진제공 세계태권도연맹

지난 1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 월드태권도투어에서 태권도 단체전은 국제 무대에 처음 소개되었다. 올해 한국실업연맹전 단체전 부문에서 우승한 성남시청 팀과 러시아 대표팀의 시범경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시의 재정 악화로 인해 팀 해체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남시청 팀은 2회전에서 김준태 선수의 활약으로 역전한 뒤 50 대 47로 국제 무대 첫 우승을 차지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경기를 본 국내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뒤돌아차기와 선수 다섯 명의 쉴새 없는 교체와 역전은 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개인전에서 선수들 간의 끝없는 ‘간보기’와 단발성 공격 뒤에 엉겨붙기로 보는 이를 질리게 했던 태권도와는 아예 딴판이었다.

태권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5인조 단체전은 한국의 발명품이다. 한국실업태권도연맹의 김태일 회장이나 박계희 전무, 한상수 사무국장 등이  ‘발명’해 지난 2007년 실업연맹대회 때부터 실시했던 종목이다.

국내 대회는 1회전 5분, 2회전 10분으로 치러졌다. 중간 휴식 시간은 1분. 1회전 5분 동안은 출전 선수 모두 각 1분씩 의무적으로 뛰고, 2회전은 아무런 제한 없이 선수 교체를 단행할 수 있다. 이번 러시아 월드투어에서는 흥행성을 높이기 위해 5분, 7분, 7분의 3회전으로 변형되었다. 보는 재미를 위해 시간을 늘린 것이다.

 “흥행 요소 추가했지만 태권도 정신은 그대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업연맹의 박계희 전무는 5인조 단체전에 대해 “태권도 경기도 요즘 추세에 맞춰서 기술이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격투기나 K1에 비해서 보는 재미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 프로화가 가능한 스포츠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흥행 요소는 추가했지만 예의에서 시작해 예의로 끝나는 태권도 정신만은 그대로 지켰다”라고 밝혔다.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위해 실업연맹은 단체전 경기에서 5초 내에 공격을 안 하면 경고를 주고 기술 점수가 개인전에서는 1~3점까지였지만 단체전에서는 1~10점까지 줄 수 있도록 폭을 넓혔다. 기술적인 변별력을 넓혀서 선수들이 화려하고 큰 기술을 쓸수록 점수를 많이 쓰라고 독려한 것이다. 이는 경기의 재미를 대폭 끌어올렸다. 지루한 탐색전은 단 5초 이내로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단체전이 태권도 프로화에 청신호를 켠 셈이다.

문제는 경기 시간이다. 프로 스포츠는 티켓 판매나 경기권 판매를 위해서 최소한 40분 이상의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박전무도 동감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모스크바 대회에서 5분-7분-7분으로 진행했지만 10분-15분-15분으로 늘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중간에 휴식 시간을 1분에서 5분 이상으로 늘리고 경기 중 작전 타임도 도입하고 라운드 걸도 도입하는 등 흥행을 위해 도입할 수 있는 장치는 많다”라고 전했다.

태권도계에서는 새로운 단체전 도입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성남시청의 노현구 코치나 김준태 선수도 입을 모아 “환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경기가 격렬해지는 만큼 선수 보호나 휴식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현구 코치는 “단체전의 최대 매력은 선수들이 서로를 믿으면서 화려한 발차기 등 다양한 기술을 쓰고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면서 역전, 재역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몸집이 크고 키가 큰 선수가 반드시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 키의 선수가 나와도 몸집이 작은 선수가 빠르게 타격하고 바로 선수 교체를 해주는 작전의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체전에서는 “절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핀급(-54kg)과 플라이급(-58kg)만 빼고는 밴텀급(-63kg)부터 헤비급(87kg+)까지 골고루 쓴다”라는 것이 노코치의 말이다. 그는 “단체전에서는 선수 교체가 있기 때문에 체력보다는 기술력이 먼저이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개인전보다는 단체전에서 빛을 더 보는 선수도 나온다. 노코치는 성남시청의 송문철 선수(밴텀급)에 대해 “맞는 것도 시원하게 맞고 때리는 것도 시원하게 때려서 초반에 실점이 많지만, 나중에 역전시키는 것도 송선수이다. 송문철은 연결성, 유연성, 탄성이 좋다. 발로 얼굴 공격을 연달아 하는 등 화려한 기술을 성공시키니까 인기가 좋다”라고 말했다. 

태권도 프로스포츠화에 청신호 켜져

그렇다면 손발이 길고 동양인보다 체격이 큰 서양인이 단체전에 유리하지 않을까? 노코치나 김준태 선수는 “신체 조건보다는 기량이 먼저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고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기량이 앞서 있는 한국 선수가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이자 이번 모스크바 대회에서 단체전에 출전했던 김준태 선수는 “이번에 러시아에 이겼지만 세계 최강급으로 꼽히는 스페인이나 이란, 태국 팀과 붙었을 때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라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다만 그는 한국이 전자호구를 이용한 채점 방식을 도입한 뒤 국제 대회에서 조금씩 밀렸지만 정확한 타격이나 기술, 보는 눈은 한국 선수가 앞서 있기에 전자호구제를 도입하지 않고 정확한 타격이 우선시되는 단체전에서는 한국 팀이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체전에 대한 관중과 태권도계의 열광적인 반응은 태권도의 프로스포츠화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노코치는 “무엇보다도 단체전에 대한 관중들의 반응이 좋다. 머리를 보호하는 헤드기어를 벗어 선수의 얼굴을 관중에게 더 노출시키고, 호구를 더 얇게 해서 KO도 더 많이 나오면 경기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K1의 격렬함이 태권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자신했다. 김준태 선수는 “단체전 우승을 하면 개인전 우승과 기분이 다르다. 프로화가 된다면 무조건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선수들의 부상이 단체전의 걸림돌이다. 경기가 격렬해지고 경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 소진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대회 2회전만 뛰다가 이번 모스크바 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3회전을 경험한 김준태 선수는 “체력적으로 훨씬 더 힘들어졌다”라고 밝혔다. 선수 교체로 개별 선수의 체력 소진을 막아준다고는 하지만, 실업연맹의 복안대로 경기 시간이 10분-15분-15분으로 갈 경우 선수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상수 실업연맹 사무국장은 “아직 국제 무대에서는 정해진 룰이 없는 만큼 진행 룰은 충분히 조정 가능하다. 쉬는 시간을 5분 이상으로 늘리는 등으로 선수를 보호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모스크바 투어 대회는 태권도 프로화와 흥행 가능성 타진을 위해 세계태권도연맹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주최한 대회이다. 이 대회에 단체전 종목이 도입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스크바 대회 단체전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내년 태권도 월드컵대회에서는 5인조 단체전 종목을 정식 종목으로 도입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태권도 단체전이 태권도를 ‘국기’나 ‘어린이 필수 과외 교습 과목’이라는 보호막을 벗어나 자생력을 갖춘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게 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