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슬픔을 정치·역사와 버무려낸 영화평론가의 3시간 27분짜리 색다른 실험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0.12.2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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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카페 느와르>

ⓒ 영화사 북극성 제공
평론가 정성일이 감독 데뷔를 한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농담조로 그의 영화를 예단했다. 인물들이 문어체로 긴 문장을 말할 것이고, 카메라 움직임이 없는 롱숏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책이나 영화의 인용이 가득할 것이고, 상영 시간도 무지 길 것이라고.

<카페 느와르>는 과연 그런 영화이다. 첫 장면부터 소녀가 정면을 보고 아무런 대사도 없이 햄버거를 우겨 넣는 모습을 4분 이상 비춘다. 1부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고, 2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원전으로 삼는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인물은 문어체 대사를 쉼 없이 읊조리는데, 심지어 정유미는 10분 넘게 혼자 대사를 읊는다. 상영 시간은 3시간 27분에 달하며, <극장전> <괴물> <올드보이> 등 유명 영화가 인용된다.

그렇다면 <카페 느와르>는 ‘이론에만 강하고 실전에는 약한’ 평론가의 과욕이 빚은 괴작인가? 그렇지 않다. 영화의 전면을 지배하는 것은 사랑을 잃은 자의 슬픔이다. 그들이 2008년 겨울, 서울을 거닌다. 상실과 슬픔의 정서가 미세한 움직임으로 역사와 정치를 끌어당긴다. 한때 사회주의자였으나 폭군처럼 변해버린 정치인이 아내에게 포도주를 집어던지고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읊는 장면이나, 등불을 든 정유미가 과거가 깡그리 말소된 청계천을 총총히 걷는 장면은 정치와 역사를 환기시킨다.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는 되돌아가 죽은 자를 불러일으키고 싶지만, ‘진보’라는 폭풍이 천사를 떠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역사의 구원은 망각된 것을 기억하며, 미래의 매순간을 메시아가 들어오는 문으로 사유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했다. 영화 속 청계천의 옛 모습 그대로 지어진 여관에서 동방박사가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러나 2008년 재야의 종 현장의 집회 역시 메시아적인 사건이었다. 임신한 소녀처럼, 용기를 내자. 그리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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