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워, 한국 다시 넘자”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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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기 침체 극복 위해 한국 경쟁력 연구…스피드 정신·도전 의식·글로벌 의식 등에 주목

 

  ▲ 20년 가까이 경기 침체로 자신감을 잃어가던 일본이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위는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
ⓒ연합뉴스

지난 9월29일 일본 니이가카 현 카시와자키 시의 리튬전지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도시바의 사사키 노리오 사장은 “한국 등 세계의 전지 메이커와 비교해도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다. 결과를 기대해주기 바란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처럼 최근 일본 언론들은 한국 기업과 비교하고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배우고자 하는 기사를 자주 보도하고 있다. 이유는 일본 사회가 장기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사회는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1990년대 버블이 붕괴된 이래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경기 침체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2000년대 초기에 다소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경기는 금융 위기 사태를 맞아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장기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나 결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한국이 1997년 IMF 외환위기에서 최근의 금융 위기까지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으면서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콧대 높은 경제산업성 관료들은 한국의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권위 있는 주간지인 <주간 도요게자이(東洋經濟)>는 무려 70여 쪽에 달하는 한국 특집 기사를 통해 한국 기업의 경쟁력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

“삼성전자가 2010년 4~6월 단 3개월간의 연결영업이익이 약 5조원인데 이는 히타치 제작소, 도시바, 소니 3사가 2009년도 한 해에 벌어들인 영업이익 총액과 비슷하다”라며 소니, 도시바, 히타치, 마쓰시타 전기, NEC 등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한국의 삼성전자 하나를 상대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단순한 환율 효과라고 치부하는 듯하며 한국 기업들의 실적을 애써 외면하던 일본 기업들이 이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점에 가보면 한국과 한국 기업 그리고 한류에 관련된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TV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알리는 프로그램이 자주 눈에 띈다.

왜 한국 기업들은 잘나가는가? 일본인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스피드 정신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일본인 자신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의사 결정이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일본 사회는 의사 결정이 너무 복잡하고 느리다는 것이다. 지나친 신중함은 지난 세월 완벽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지만, 지난 20여 년간의 장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이제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너십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와 LCD 분야이다. 기업들이 어려운 경제 환경 아래에서도 신속하고 과감하게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세계 시장을 선점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성장 지향주의와 도전 의식도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 1970~80년대 일본의 고도 성장을 주도해왔던 세대들을 만나보면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 하며 헝그리 정신이 결여되어 있어 일본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일본이 경제대국이 된 데에는 바로 도전 의식과 헝그리 정신 그리고 곤조(근성)가 있었기 때문인데, 요즘 한국인에게는 이 정신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지난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밀려 3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점,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의 성장 과정도 바로 이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류에서도 도전과 프로의식 배워

▲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초대형 일루미네이션(전광 장식)이 도쿄 시부야의 유명 패션 빌딩 ‘SHIBUYA 109’에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는 한류도 식자층에서는 단순한 붐으로 보지 않고 있다.

 

대형 레코드회사 유니버셜뮤직의 고이케 이치히로 사장은 소녀시대, 카라, 동방신기, 빅뱅, 초신성 등 한류 스타들이 성공한 것은 오랜 세월 체계적이고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런 스타들이 일본에서 성공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라고 극찬했다.

또 한국 드라마나 영화, 게임 등이 일본인들을 사로잡는 이유도 구성이 탄탄하고 스토리가 재미있으며, 소재가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도전적인 노력과 프로 정신이 한류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또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성장한 원동력을 분석하는 데 빠뜨리지 않는 것이 글로벌 정신이다. 일본은 그간 세계 경제 대국이라는 의식이 강해 글로벌화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것을 표준화하고자 하는 의식이 강했다. 세계 시장 특히 신흥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도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시장을 한국에 내주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고 있는 근저에는 일찍이 글로벌 경쟁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스피드 정신과 지나친 신중함, 도전 의식과 기득권 안주, 글로벌 의식과 폐쇄적 자세, 헝그리 정신과 목표 상실, 혁신과 현실 안주 의식이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를 규정하는 특징이고 이러한 문제로 인해 유사한 산업 구조와 경제 환경 속에서도 성장과 침체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교육열과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 리더십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하는 것이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원자력발전소 수주이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 민간이 총력전을 펼쳐 원전을 수주했다는 것이다.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UAE 수주 경쟁에서 한국에 밀린 원인을 두고 일본인들은, 그동안 일본 정부는 무엇을 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2008~09년 경기 침체기에 한국이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한·미 통화 스와프 등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리더십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좋은 것은 철저하게 배우는 자세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그대로 흡수하지 않는다. 바탕에는 반드시 자신들의 것을 깔고 있다. 지금 일본에는 한국을 이해하고 배우고자 하는 붐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잠재력이 숨어 있는 부분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한·일 간 무역 적자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2009년 한 해에 3백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LCD 등의 국산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기반 기술을 일본에 의존하는 일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클 정도로 기술적 차이가 있다.

타마 대학 경제정보학부 김미덕 교수의 지적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일본 기업에서 이는 한국 붐은 일과성의 홍역을 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자 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라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지금 한국 배우기의 경계 선상에 있다. 한국 사회의 스피드 정신과 지나친 경쟁 그리고 개혁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과거에 너무 얽매여 있고, 내부 지향적인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수긍하고 있다. 고령화 소자녀·구조적인 수요 감소, 개혁 정신의 결여, 폐쇄성, 정치적 리더십 부재라는 자신들의 문제를 한국과 비교하며 교훈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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