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맛 들인 검사 출신 변호사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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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회사로 유혹해 투자 자금 끌어모아 ‘호화 생활’…교회 다니며 교인들까지 피해 입혀

‘돈 없는 사람’들의 투자금을 가로채 호화 생활을 해 온 김 아무개 변호사(55)가 피해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김씨는 2006년도부터 신용불량 상태임에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며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는 등 여유롭게 살고 있다. 피해자들은 김변호사를 ‘사기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김씨는 왜 졸지에 ‘사기꾼’이 된 것일까.

김씨는 지난 1983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후 부산지방검찰청 근무를 시작으로 10년 넘게 검사 생활을 했다.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도부터다.

그의 수법은 교묘했다. 그는 실제로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한 개발회사의 고문변호사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피해자들로부터 투자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동료 황 아무개씨(54)와 함께 지난 2006년 8월23일 1백49억원을 투자하고 주식을 인수하기로 하는 내용의 투자계약서를 ㈜ㅎ종합관광개발과 체결했다. 하지만 투자금이 입금되지 않아 계약 체결은 이내 무산되었다.

그러나 김씨는 ㅎ종합관광개발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의 이름과 사업 계획을 빌릴 수 있었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들에게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ㅎ종합관광개발(현재는 상호가 변경됨)측에서는 “김씨와 황씨는 우리 회사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다. 2009년 8월 황씨 등이 당사의 법인 등기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변경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고 이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의 결정에 의해 법인 등기가 원상 회복된 사실이 있다”라고 밝혔다.

▲ 사기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아무개 변호사의 사무실 앞에서 피해자 이 아무개씨가 기자에게 피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김씨는 독실한 개신교인이었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이자 개신교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을 유혹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실제로 김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 대다수는 김씨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이다. 김씨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개척교회인 ㅎ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은 김씨에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의 투자금을 건네주었다.

‘바람잡이’까지 동원했다는 증언도

김씨에게 피해를 입은 최 아무개씨는 “김씨가 나를 ‘아우님’이라고 불렀다. 김씨가 검사 출신 변호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품까지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업 투자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유혹에 넘어가 2007년 2월부터 돈을 꿔주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총 9회에 걸쳐 2억원이 넘는 돈을 입금했다. 3년 동안 돈을 건넸던 것은 김변호사가 선임비가 들어오면 바로 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말해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ㅎ교회에서 안수집사로 활동했던 석 아무개씨 역시 변호사 김씨로부터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석씨는 “김씨가 새벽 기도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마주쳤었다. 목사님 소개로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내 차를 대신 운전해주기도 할 정도로 내게 잘 대했다. 내가 김씨에게 투자한 돈은 3억원이 넘는다. 그것이 2008년도의 일인데 아직까지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 나 말고도 우리 교회 장로 역시 피해를 보았다. 듣기로는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가압류 신청을 한 것으로 안다. 이제는 그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아서 피해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피해를 본 사람들이 교회 안에 꽤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교인이 아닌 피해자들도 있다. 사업에 투자할 사람들을 끌어모아 김변호사에게 소개하는 이른바 ‘바람잡이’ 역할을 한 조 아무개씨(51)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등산을 통해 만난 여성들과 친구로 지내며 친분을 쌓고 난 뒤 이 여성들을 다시 김씨에게 소개하는 식으로 사기에 동참했다.

피해자 최씨는 “조씨를 통해서 김변호사를 알게 되었다. 조씨는 내가 이혼을 하고 나서 위자료를 받은 사실을 알고 일부러 내게 접근한 것 같다. 조씨를 통해 세 명의 여성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안다. 이 중 한 명은 4천만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결국 이 문제로 가정이 파탄 났다. 지금은 집에서 쫓겨나 노래방에서 도우미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 피해자들이 증거 자료 등을 보이며 피해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김 아무개 변호사가 사기 행각을 벌이기 위해 이용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교회. ⓒ시사저널 윤성호

현재 김씨에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교회 사람들과 김씨의 선후배, 조씨가 유인해 온 사람들을 포함해 15명 정도이다. 김씨의 사업 계획이 사기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김씨에게 5천만원을 투자했기 때문에 나 역시 피해자이다. 황씨는 평소에 자신을 한 대형 건설사의 임원이었다고 말했는데 두 사람 모두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황씨는 사기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 김씨와 황씨 등과는 일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이 깨지거나 옥탑방에서 생활할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피해자 가운데에는 여윳돈이 없어 대출을 받아 김씨에게 투자금을 건넨 이도 있다. 반면 김씨는 ‘돈 없는 사람들’에게 받은 돈으로 자녀들의 유학 자금을 대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등 호화롭게 생활했다.

기자는 지난 12월12일 ㅎ교회로 김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는 이 교회에서 집사로 있다. 그 전에 서울 강북구에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도 찾아가고 전화번호도 남겼지만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변호사는 “나를 찾아오지 마라.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노코멘트하겠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취재진을 밀쳤다.

현재 피해자들은 김씨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 최씨의 경우 이미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김씨와 황씨를 고소했고, 12월 중에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다. 최씨는 “피고인이 검사 출신이어서인지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이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피해자 석씨 역시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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