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대국, 불편한 대국
  • 성병욱 |중앙일보 주필 ()
  • 승인 2011.01.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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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중국을 복잡한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된 한 해였다. 한·중 간 교역이 2천억 달러를 넘어 대미·대일 교역의 합보다 더 커졌다. 반면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대남 도발과 관련해 중국은 여전히 북한 쪽에 기울어 있다. 안보 문제에 관한 한 우리로서는 한·미 동맹에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서해상의 한·미 연합 훈련은 중국을 긴장시켰다.

중국이 G2로 불릴 정도로 강대해지면서 주변국들은 책임 있는 대국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아직 중국에서는 대국주의적인 결기가 더 느껴진다. 미·중과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주변국 국민들이 선뜻 중국에 마음을 열기가 주저되는 측면이다.

지난 11월18일 서해에서 불법 조업을 단속하던 우리 해양경찰의 경비함을 들이받고 전복한 중국 어선 사건에서도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하다 도주하는 랴오잉위(遼營漁) 35432를 돕기 위해 경비함을 들이받고 전복한 랴오잉위 35403의 선장은 사망하고 기관장 등 선원 세 명은 해양경찰에 체포되었다.

랴오잉위 35403이 경비함을 들이받은 곳은 한·중 공동 관리 수역이지만, 랴오잉위 35432가 해경의 단속을 받고 해경대원 네 명에게 폭행을 가하고 달아난 곳은 우리 쪽의 배타적 경제수역이었다. 따라서 우리 경비함은 그 중국 어선을 계속 추적해 공해에서도 신문·나포해 강제로 데려올 수 있는 국제법상 추적권(hot pursuit)이 인정된다.

이 추적권을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공해상에서 경비함을 공격한 외국 선원을 나포해 사법 처리하는 것은 추적권뿐 아니라 정당방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국 외교부는 한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자국 어선의 우리 경제수역 내 불법 어로 행위에 대한 단속은 미온적이다. 마치 자기 책임은 다하지 않고 눈만 부라리는 식이다.

더구나 불법 조업 단속에 대한 중국 어민들의 대응이 갈수록 조직화·흉포화해 우리 해경대원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2006년부터 최근 5년간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 조업하다 적발된 중국 어선만 2천1백90척, 구속된 어민은 7백38명에 이르는 데다 단속 중 중국 선원들의 각목, 쇠 파이프 등 흉기에 맞아 해경 한 명이 사망하고 44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 1주일 만에 죽은 선장 외에는 경비함 고의 충돌에 적극 가담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체포한 선원 세 명을 서둘러 석방한 것은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렇게 하고도 해경대원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의 수역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도록 요구할 수 있겠는가.

중국과의 또 다른 외교 마찰을 우려하는 정부의 입장을 감안해도, 힘의 논리에 의해 원칙이 깨지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까 걱정스럽다.

사법적인 문제를 철저한 수사나 재판도 없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석방으로 유야무야해버리면 상대에게 우습게 보일 수 있다. 중국측의 더 적극적인 불법 어로 단속과 공무 집행에 폭력으로 항거하고 달아난 어선 선원들에 대한 처벌 다짐이 적어도 석방과 연계되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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