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의 비상구는 ‘정계 개편’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1.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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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 당내 갈등·정책 실패 등으로 궁지 몰려…외부 세력과 연대 모색 중

▲ 지난해 9월1일 일본 민주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간 나오토 후보(오른쪽)와 오자와 이치로 후보가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AP연합

오자와 전 간사장의 정치 자금 규정 위반 문제와 관련한 국회윤리위원회 출석을 둘러싸고 분당 위기까지 치달았던 일본 집권 민주당의 분열이 파국 직전에 일단 봉합되었다. 출석을 하지 않으려면 탈당하라는 간 나오토 총리의 최후 통첩을 오자와 전 간사장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자와 전 간사장은 사법부에서 진행 중인 일을 국회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에 반대하며 최악의 경우 민주당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지도부에 경고했었다. 당내 최대 파벌인 오자와 지지 세력도, 간 총리가 추락하는 자신의 인기를 만회하려는 수단으로 야당의 출석 요구를 받아들였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간 총리는 벼랑 끝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이 백기 투항함으로써 야당의 예봉을 피해갈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간 총리의 리더십은 이번 일로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첫째는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한 책임이었다.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총리직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으나, 총리직을 맡은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다르다. 지지도는 20%대까지 추락하고 있다. 새해 봄 지방선거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해 12월26일 니시도쿄 시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자민당과 민나노당(모든 사람의 당)이 선전한 반면 민주당은 텃밭에서 크게 패했다.

각종 정책도, 리더십도 국민들로부터 크게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기대 이하이다. 지난해 12월11~12일 산케이신문과 FNN(후지뉴스네트워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어느 정당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야당인 자민당이 60.8%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반면, 민주당은 12.6%대의 지지에 머물렀다. 국가 안보와 관련해 집권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 본류’ 타치아가레일본당에 연정 제의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해양보안청의 순시선을 고의로 부딪쳤다는 명백한 물증이 있었음에도 결국 중국측의 주장에 굴하는 유약한 모습을 보인 간 나오토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간 총리가 외교·안보에 문외한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알았으나 이런 정도였나 하는 탄식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또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쿠릴 열도 방문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적인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11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은 후 간 나오토 총리는 “한반도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 한국 내에 있는 자국민을 수송할 수 있도록 자위대법 개정을 검토할 생각이다”라며 한국 정부와 협의할 생각이라는 설익은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정부도 황당해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그리 쉽게 발언한 사실에 대해 놀라는 표정이었다. 센코쿠 관방장관은 즉각 공식 입장을 통해서 “전혀 검토된 바 없을뿐더러 한국 정부와 협의한 것도 없다. 역사적 경위도 있고 해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잘라 말했다. 이는 외교·안보에 대한 간 총리의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말았다. 증폭되고 있는 당내 불화,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아마추어리즘, 여소야대 정국, 리더십 부재 등으로 간 나오토 총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하락하는 지지도를 만회하고자 하는 호재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간 총리는 현 상태를 타개하고자 정계 재편 카드를 들고 나왔다. 먼저 타치아가레일본(일어서라 일본)당에 연정을 제안했다. 요사노 공동대표는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지도부 대다수는 강하게 반대했다. 보수의 본류인 타치아가레일본당이 시민운동가 출신의 간 총리와 같이할 수 없다는 이유이다. 표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정치 자금으로 얼룩져 가고 있는 민주당과 함께 추락할 수 없다는 복잡한 속내의 일단이 내재되어 있다. 민주당의 균열이 커지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외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오자와 전 간사장과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안보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동적 방위’로 전환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

최근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쿠릴 열도 방문으로 일-중, 일-러 관계가 긴장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또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는 지경에 이르자 남의 일이 아니라며 방위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신방위대강이 만들어진 계기이다. 골자는 기존의 ‘기반적 방위력 구상’을 ‘동적 방위’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기반적 방위력은 최소한의 방위력을 보유하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동적 방위력은 다양한 위협이나 사태에 기동성 있게 대처한다는 개념이다. 최신예 전차 군함 항공기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억지력이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위대가 여러 임무를 행하고 부대를 움직여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1976년 이래 30년간 지속되어왔던 기존 노선의 일대 전환이다. 핵심은 중국의 군비 증강과 북한의 호전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위 개념을 수정하는 변화의 서막이다. 그동안 동북아 국가와의 일정한 균형 잡힌 안정 체제로 인해 일본은 안보 문제에 대해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해 조심스런 행보를 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및 노골적인 도발 행위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영토 갈등으로 자위적 개념을 일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계 재편과 맥이 통한다. 민주당 내에는 보수 색채와 진보 색채가 동거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 1백50여 명에 이르는 오자와 세력과 반 오자와 세력이 있다. 당내 외교·안보의 영향력이 강한 마에하라 외무장관은 대표적인 친미파이자 대중국 경계주의자이다. 이에 반해 오자와 전 간사장과 하토야마 전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 및 아시아 관계를 중시하며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간 나오토 총리가 오자와 전 간사장에게 국회윤리위원회 출석을 거부하려면 탈당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배경에는 이처럼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탈당해주는 것이 정계 재편의 시동을 거는 데 유리한 여건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번 연립 정권을 거부한 타치아가레일본당의 히라노 공동대표도 “위기적인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연합하는 것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정계 재편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또 자민당의 이시바 정조회장도 “만약에 오자와 그룹을 뺀다면 연립 정권을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가능성을 암시했다.

내홍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면 민주당 차원이 아니고 일본 정국 전체가 판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정권 획득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외교·안보 문제까지 어우르는 재편이 현실화할 수 있다. 새해 일본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격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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