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카로 차선을 바꿔라”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
  • 승인 2011.01.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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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체들, 선택 아닌 생존 조건으로 꼽아…연비 경쟁 등 ‘글로벌 친환경 차’ 경쟁 불붙어

 자동차를 몰기 두려울 정도로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으며, 머지않아 100달러 벽마저 깰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름값이 오르는 이유는 경기 회복에 따라 수요가 늘어난 데다 원유 상품에 대한 투기성 매매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유 가격이 고공 비행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늘 위기 속에는 기회가 있다. 자동차업체들은 운전대를 놓고 공공 이동 수단을 이용하려는 소비자 마음을 돌리기 위ㅎㅐ 양산형 친환경차를 쏟아내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릴 경우 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이 버스를 타는 것보다 더 이익’이라는 마케팅 구호까지 내걸었다. 경기가 풀리면서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이는 2011년에는 유례없는 ‘그린카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 닛산자동차가 출시한 전기차 리프에 충전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닛산자동차

 
2011년은 ‘하이브리드카’가 대세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는 총 13종이다. 국산차는 단 2종에 불과하고, 과반수인 여덟 종이 일본산이다. 국산차 중에서는 토종 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가 약 2년 전부터 액화석유가스(LPG)를 기반으로 한 아반떼 및 포르테 하이브리드를 팔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부터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1월 중 미국에서 쏘나타와 K5의 하이브리드형 모델을 우선 선보인다. 미국 소비자들이 출력이 높은 휘발유 엔진을 선호하는 만큼, 이 엔진과 전기 모터를 병행해 연료 효율성을 높인 가솔린 하이브리드카가 인기를 끌 것이라는 판단이다. 국내에는 6월께 이 모델을 들여오기로 했다. 쏘나타 및 K5 하이브리드는 하이브리드 전용 세타Ⅱ 2.4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연비는 ℓ당 20㎞ 수준이다. 동력원으로 휘발유 엔진만 사용하는 쏘나타 및 K5 2.4 GDI(직분사) 모델(13㎞/ℓ)보다 연비가 50%가량 개선되었다. 전기 모터 출력을 포함한 최고출력(시스템 출력)은 2백12마력이다.

현대차는 내년에 자사 최초의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을 추가한다. 2013년 이후에는 전기 코드로 충전한 뒤 휘발유 엔진으로 보조 동력을 얻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상용화하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기차와 바이오연료차 등 다른 기술 역시 개발하고 있지만 당분간 하이브리드카에 주력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신형 하이브리드카를 잇따라 내놓는 등 점유율 굳히기에 나선다. 수년 내 10종의 새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한다는 목표이다. 2011년에만 글로벌 시장에서 100만대의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기로 했다. 국내에는 ℓ당 29.2㎞의 연비를 내는 3세대 프리우스로 승부를 걸고 있다. 1.8ℓ짜리 엔진과 전기 모터를 결합해 2.4ℓ급 중형 세단의 힘을 낼 수 있다. 도요타코리아는 또 렉서스 CT200h를 조만간 국내 시장에 데뷔시킬 계획이다. 전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도요타는, 전기차보다 저렴하고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하이브리드카가 당분간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혼다는 글로벌 하이브리드카로 개발한 인사이트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0년 말 인사이트에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새 세부 모델을 국내 시장에 추가했다. 배기랴ㅇ 1300cc인 인사이트의 연비는 ℓ당 23㎞이며, 국내 판매가격은 2천9백50만~3천2백만원이다. 혼다코리아는 연내 하이브리드 스포츠카인 CR-Z도 선보일 예정이다.
 
유럽 메이커는 ‘클린 디젤’로 승부

유럽 업체들은 경유 엔진을 사용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클린 디젤차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연초부터 골프 블루모션으로 국내 그린카 시장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골프 블루모션은 준중형급인 1.6ℓ급 디젤 엔진에다 고효율 7단 DSG 변속기를 장착해 연료 효율성을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유럽 기준 연비가 ℓ당 26.3㎞에 달한다. 국내 시판 가격이 3천만원대 초반이어서 가격 저항력도 적은 편이다.

골프 블루모션은 우리 정부의 제도 변화에 따른 수혜도 입을 전망이다. 정부가 친환경 소형차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1천6백cc 이하 저탄소차에 경차 이상의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당 100g 이하인 준중형차에 대해서는 다양한 세제 혜택과 함께 통행료 등을 할인해주기로 했다. 골프 블루모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9g/㎞에 불과하다. 폴크스바겐은 소형차인 제타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인 투아렉에도 클린디젤 엔진을 얹어 국내에 출시하기로 했다.

BMW코리아도 올해 내놓는 신차 가운데 상당수를 클린 디젤차로 채울 방침이다. 클린디젤의 효용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는 판단에서다. 고성능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는 물론 소형 120d M, X3 등에도 디젤 엔진을 얹기로 했다. 이 회사는 2010년 말 디젤 엔진을 장착한 플래그십(기함) 모델 7시리즈를 내놓아 관심을 모았다. 뒷좌석 승차감을 중시하는 대형 세단에도 디젤 엔진이 적합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730d(1억1천9백90만원)와 730Ld(1억3천5백50만원) 등 두 종류인데, 직렬 6기통 3세대 커먼레일 직분사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넣어 최고 출력 2백45마력, 최대 토크 55.1㎏의 힘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연비가 ℓ당 13.5㎞에 달한다. 초대형 세단의 연비가 웬만한 중형 세단보다 좋다.

푸조의 한국 수입사인 한불모터스는 308 MCP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신형 1.6 HDi(디젤) 엔진과 MCP 변속기를 장착해 ℓ당 21.2㎞의 연비를 낼 수 있는 고효율 차이다. 6단 전자 제어 기어인 MCP 변속기는 기어박스를 통하지 않고 엔진 힘을 곧바로 휠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푸조는 세계 첫 디젤 하이브리드카인 3008 하이브리드4도 국내에 선보인다. 연비가 유럽 기준으로 ℓ당 26.3㎞이다. 3008 하이브리드4를 포함해 연내 5개의 신차를 내놓을 예정인데, 이 중 네 종이 클린 디젤차이다.

전기차도 본격 시동

▲ 일본 혼다차가 출고한 하이브리드카 인사이트. ⓒ혼다

볼보코리아는 올 초 준중형 인기 세단인 C30의 디젤 버전을 투입한다. 연비 면에서 앞서는 디젤형의 판매량이 휘발유형을 쉽게 제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6% 정도였다. 2009년 22%로 높아지더니 2010년에는 25% 수준으로 치솟았다.

닛산자동차는 2010년 말부터 미국에서 전기차 리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현지에서만 5만대의 전기차를 팔아 친환경 이미지를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GM도 비슷한 시기에 하이브리드형 전기차인 시보레 볼트의 소비자 인도를 개시했다.

순수 전기차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자동차업체들은 대부분 ‘몸집’ 경쟁에서 밀린 후발 주자들이다. 르노와 닛산, 푸조, 미쓰비시 등이 대표적이다. 르노는 최근 전기차를 그룹의 핵심 경쟁력으로 키운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올 하반기부터 양산형 전기차 네 종을 순차적으로 출시한다. 르노삼성의 뉴 SM3를 기반으로 한 플루언스와 소형 밴인 캉구를 먼저 선보이고, ㅅㅗ형 전기차 조이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르노삼성 역시 2011년 말부터 SM3 전기차를 부산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관련 기술을 확보해둔 상태이다.

푸조-시트로엥은 소형 전기차 아이온 등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갖추기로 했다. 전기차의 최장 주행 거리가 1백50~1백60㎞로 짧다는 점을 감안해 장거리 여행을 앞둔 유럽 내 전기차 소유자에게 자사의 동급 휘발유차를 빌려주는 독특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초기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또 이와 별도로 오랫동안 제휴 관계를 맺어온 일본 미쓰비시와 전기차를 공동 생산할 계획이다. 미쓰비시는 이미 전기차 아이미브를 일본에서 판매 중이다. 미쓰비시의 한국 법인인 MMSK측은 2011년부터 국내에서 이 전기차를 시범적으로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GM이 판매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 볼트의 경우 순수 전기차는 아니다. 배터리 힘으로 최장 80㎞를 달리다 휘발유 엔진으로 모터를 돌려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방식으로 4백90㎞를 더 주행하는 방식이다. 똑같이 전기 충전이 필요하지만 엔진이 주 동력원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와 구별된다. GM은 GM대우자동차를 통해 시보레 볼트를 연내 국내에 여러 대 들여와 시범 운행하면서 시장 반응을 살펴볼 계획이다. 전기차 인프라가 깔리면 언제든 시판에 나설 수 있기 위한 사전 준비이다.

▲ 왼쪽부터 현대차 쏘나타 하이브리드, GM 시보레 볼트, 도요타 프리우스. ⓒ현대 ·GM·도요타

 

천연가스차 등 틈새 전략 쓰기도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는 천연가스를 주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차 개발에 집중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피아트는 유럽 내 천연가스차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어 이 기술을 승용차로 확대 적용할 경우 관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연가스차는 저렴한 데다 전기차의 단점인 장시간 충전도 필요 없다”라고 강조했다. 피아트는 2011년 하반기 국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당분간 하이브리드카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현대·기아차는 중·장기적으로 수소연료전지차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수소전지차는 내연 엔진 차량보다 효율이 30%가량 높은 데다, 물 외에 다른 물질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친환경적인 차로 꼽힌다. 각국 환경 규제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다.

현대·기아차는 2011년 천대의 수소전지차를 시범 생산하는 데 이어 2015년부터 본격 양산에 나선다. 이미 핵심 부품인 1백15㎾급 스택(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올해부터 투싼ix 수소전지차의 실증 사업을 시작한다.

투싼ix 수소전지차는 100㎾급 연료전지 시스템과 2탱크 수소 저장 장치(700기압)를 탑재했다. 영하 25℃ 이하에서도 시동을 걸 수 있다. 한 번 충전해 최장 6백50㎞를 달릴 수 있다. 연비는 동일 휘발유 열량으로 환산했을 때 ℓ당 31㎞ 수준이다.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관계자는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친환경적인 기술이 수소전지차이다. 차값을 낮춰 실용화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완성차업체들은 최근 특정 분야에 집주ㅇ하는 특화 전략으로 전환했다. 모든 친환경 차 부문을 동시에 개발할 경우 위험 부담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허 선점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배경이다. 예컨대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카를 먼저 개발하면서 국제 특허를 상당수 획득했다. 혼다와 현대·기아차는 도요타 특허를 피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특허 회피 기술을 연구해야 했다. 현대·기아차가 시장 초기 단계인 수소전지차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수년 내에 특화 전략으ㄹ 선택했던 자동차업체들 간에 명암이 뚜렷하게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카 패러다임’이 대두됨에 따라, 10년 후 자동차 산업의 지형도는 과거 100년간의 내연 엔진 역사와는 전혀 딴판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바야흐로 2011년은 글로벌 친환경차 전쟁이 시작된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쾌속 질주’ 한국산 배터리,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승기 잡다

정부는 2020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개발을 촉진해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환경도 보호하겠다는 복안이다. 한 해 신차 판매량이 1백50만대에 불과한 한국에서 10년 내 10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은 배터리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값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한국은 이 2차전지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LG·SK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신성장 동력으로 친환경 배터리 부문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LG화학과 SB리모티브, SK에너지 등 3개 대형 업체는 이미 글로벌 2차전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LG화학은 현대·기아자동차와 CT&T 등 국내 완성차업체뿐만 아니라 미국의 GM과 포드, 프랑스 르노, 스웨덴 볼보, 중국 창안자동차 등과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전기차 배터리로만 2011년 3천억원, 2015년 3조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2010년에는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모티브뉴스>로부터 화학업체가 아닌,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업체’로 공인받기도 했다.

삼성SDI와 독일 보쉬의 합작사인 SB리모티브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유럽 업체를 중심으로 배터리를 집중 공급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의 기술력이 강력한 무기이다. 2010년 말 울산에 전기차용 리튬이온 2차전지 공장을 준공했다. 2015년까지 연간 생산 규모를 전기차 18만 대분으로 늘릴 계획이다. SK에너지 역시 현대·기아차와 전기차 계약을 맺은 데 이어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적극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와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곳은 산요 파나소닉과 같은 일본 기업들이다. 국내 업체들이 대형 자동차업체로부터 공급 계약을 속속 따내자 일본 업체들은 첨단 기술 개발과 대규모 증산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산요는 유휴 시간대 대용량 축전을 할 수 있는 배터리를 서둘러 개발해 기술 경쟁에서 앞서겠다는 전략이다. NEC는 닛산과 ‘오토모티브 에너지 서플라이’를 공동 설립해 양산형 전기차 리프에 들어가는 2차전지를 생산하고 있다. 도시바는 최근 니가타 현에 약 4천억원을 투자해 신규 공장을 지었다. 전기차 배터리를 놓고 벌이는 한국과 일본 업체 간 총성 없는 전쟁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 부품업체들이 미국, 유럽 등의 해외 완성차업체들에게 잇따라 수주하면서 승기를 잡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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