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돌풍 주역들 영광과 차별 사이
  • 서민교│점프볼 기자 ()
  • 승인 2011.01.1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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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혼혈 선수 제도 둘러싼 논란 끊이지 않아

 

▲ 프로농구 전주 KCC-서울 삼성의 경기에서 KCC 전태풍(왼쪽)이 삼성 이승준(가운데)을 피해 슛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남자 프로농구의 최고 이슈는 혼혈 선수 돌풍이다. 지난 시즌부터 한국농구연맹(KBL)에 도입된 귀화 혼혈 선수 제도는 뛰어난 기량을 지닌 해외파 선수를 국내로 불러들여 톡톡한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애매한 규정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 역시 혼혈 선수이다. 프로농구 흥행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입한 ‘하프코리안 제도’의 허와 실은 무엇일까.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남자 농구 대표팀의 최고 인기 스타는 포워드 이승준(서울 삼성)이었다. 모델을 능가하는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신체 조건과 뛰어난 운동 능력에서 터져나오는 덩크슛은 농구팬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농구팬들을 매료시킨 선수는 또 있었다. 국내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개인기를 소유한 가드 전태풍(전주 KCC)과 2009~2010시즌 프로농구 득점왕에 오른 포워드 문태영(창원 LG)이다. 그리고 올 시즌 새로운 거물급 스타가 또 들어왔다. 인천 전자랜드를 전반기 선두로 이끌고 있는 포워드 문태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점이다. 2009년 귀화 혼혈 선수 드래프트 1, 2순위로 KBL 신고식을 치른 전태풍과 이승준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해 법적으로 한국인이다. 반면 형제이기도 한 문태영과 문태종은 각각 귀화와 국적 회복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외국 선수 제치고 득점왕 등극 등 맹활약

2009~2010시즌 프로농구는 ‘혼혈 선수 돌풍’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혼혈 선수들은 시즌 개막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시즌 전 이미 귀화 시험을 통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전태풍과 이승준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미국 농구 명문 조지아 공대 주전 가드 출신 전태풍은 센터 하승진이 빠진 상황에서도 KCC를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놓았고, 이승준은 올스타 MVP에 등극했다. 상대적으로 기대가 적었던 문태영 역시 득점 기계로 KBL을 초토화시켰다. 문태영은 2009~2010시즌 54경기 평균 21.9점을 기록하며 프로농구 출범 최초로 외국 선수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2010~2011시즌 역시 프로농구 이슈를 만든 것은 혼혈 선수였다. 문태영의 형으로 입소문부터 나기 시작한 문태종이 KBL에 데뷔했다. 그리스, 스페인 등 클래스가 다른 유럽 리그에서 주전 포워드로 뛴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던 그는 국내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4쿼터의 사나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하위권에 맴돌던 전자랜드를 전반기 공동 선두로 올려놓았다.

지난 2005년 KBL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국내 대학 감독들의 반발로 드래프트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검증되지 않은 해외동포 김효범(서울 SK)이 상위 지명된 데에 따른 불만 표시였다. KBL은 프로농구 흥행을 위해 당시 최고 화제가 되었던 김효범을 위한 해외동포 규정을 만들었다. 국적은 한국이 아니지만 국내 선수 자격으로 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올해로 6시즌째 뛰고 있는 김효범은 연봉 순위 2위(5억1천3백만원)에 올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비판의 핵심은 국적과 병역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다.

4년이 흐른 2009년 KBL 드래프트 현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국내 대학 감독들은 또다시 드래프트를 보이콧했다. 국내에서 운동을 한 선수가 프로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대학 감독의 반발이었다. 이유는 국내 선수 드래프트와 함께 귀화 혼혈 선수 드래프트가 처음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귀화를 전제로 한 혼혈 선수 제도 도입은 ‘프로농구 흥행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라는 KBL의 방침이었다. 

한 구단에서 최대 세 시즌만 뛸 수 있고, 연봉 협상에서도 불리

김효범 사태에 이어 KBL은 또다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혼혈 선수의 KBL 데뷔 연봉은 국내 신인과 동일한 4천5백만~1억원으로 제한하고, 국내 선수 명단은 물론 연봉도 샐러리캡에 포함하도록 했다. 사실 신인이 아니라 해외 리그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았던 선수도 있지만, 프로농구 현실을 감안했을 때 신인급 연봉으로 묶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전에 전력 불균형을 차단하기 위해 한 구단에서 최대 세 시즌까지만 뛸 수 있도록 명시한 것은 논란이 되고 있다.

첫 시즌을 마친 뒤 혼혈 선수의 연봉부터 문제가 되었다. 소속팀 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전태풍, 문태영, 이승준 세 명 모두 연봉이 대폭 인상되었지만, 다른 국내 선수들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연봉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2억5천만~2억8천만원 선에서 연봉이 책정되었다. 세 선수에게서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연봉 협상 테이블은 난항을 겪기도 했다. 혼혈 선수들의 경우 세 시즌 이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속팀을 떠나야만 한다. 규정상 혼혈 선수를 영입한 적이 없는 구단에 우선 영입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자유계약(FA) 제도를 통해 구단과 협상을 하는 정규직이 아닌 3년짜리 계약직인 셈이다. 혼혈 선수의 모든 제도적 장치는 국내 선수와 동일하면서 전력 평준화를 이유로 외국 선수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불합리성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귀화 혼혈 선수라는 제도 자체의 합리성도 떨어진다. 귀화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귀화를 하지 않더라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실제로 혼혈 선수 드래프트 첫해 원하준(전 안양 KT&G)과 박태양(전 부산 KTF)이 한 시즌만 뛴 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갔지만, 다른 제제는 없었다. 이 두 선수의 연봉은 각각 1억원씩이었다. 문태종과 문태영이 국적 회복이나 귀화를 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날 경우 마찬가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외국 선수도 국내 선수도 아닌 돈만 벌어 떠난 ‘투명 선수’가 될 수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프로농구 역시 혼혈 선수에 대한 관심은 국내 어떤 선수에 비해서도 높다. 하지만 이들에게 붙어다니는 ‘이방인’ 딱지는 KBL의 제도적 틀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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