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1.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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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가 남긴 가슴 울리는 말들 / “따지고 보면 진정한 장애물은 우리 자신이 아닐까”

 

ⓒ사진 제공 수단어린이장학회

이태석 신부가 세상에 남긴 한 권의 책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는 8년간의 수단 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제로, 의사로, 또 수단 마을 사람들의 친구이자 아버지로 살았다. 이신부가 전하는 가슴 울리는 이야기들을 그의 책에서 발췌했다.

▶ 끈질긴 인내가 최고의 무기일 듯싶다. 기다려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 기다려야 한다. 수천 번 수만 번 치다 보면 바위도 부서지는 날이 오리라 믿으면서.

▶ 하느님께서는 이곳(수단) 아이들의 삶을 한 올 한 올 짜실 것이다. 각기 다른 형태와 색깔로 짜깁기를 하시겠지만, 나의 삶이 이곳 아이들의 삶의 짜깁기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귀퉁이 한 부분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많은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이 모든 상처들은 우리가 갈구하는 마음의 평화에 큰 장애물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진정한 장애물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 그들(나환자)은 육체적으로는 문드러지고 사회적으로는 버림받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부유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감각 신경의 마비를 보완이라도 하듯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나 민감한 영혼들을 지니고 있다. 자그마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 감사를 기어코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영혼 말이다.

▶ 많이 가지지 않으므로 인해 오는 불편함은 참고 견딜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참된 가치를 알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며,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저절로 느끼게 되니 말이다.

▶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오면 5초 정도는 환자들이 걷는 모습을 관찰하고 10초 정도는 아무 말 없이 환자들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 진실된 순간이다.

▶ 수단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너무 커서 왠지 슬퍼지기도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흘러나오는 감탄사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연발됨을 느낄 수가 있다.

▶ 우리가 매일 수도 없이 가지는 만남들,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들이기에 큰 잔치를 벌여도 부족할 판인데, 왜 그렇게 과장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비방하여 가치 없는 순간으로 전락시켜버리게 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 우리의 삶도 하나의 여행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스팔트와 같은 평탄한 길도 있지만 때로는 요철이 많은 흙 길도 있다.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기에 어려울 때 서로 의지하고 넘어질 때 서로 일으켜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기에…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아파하는 청소년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 많다. 그들에게 아무 대꾸 없이 받아줄 수 있는 낙서장 같은 어른도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화가 나는 대로 부담 없이 긁적이기도 하고 찢기도 할 수 있는 그런 낙서장 말이다.

▶ 내 삶의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얼마나 강한 자기장을 지닌 향기일까? 내 스스로가 맡을 수도 없고 그 세기도 알 수 없지만 그 향기에 대해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모르는 ‘무식이’는 분명히 유죄다. 무식이 자신도 유죄이지만 무식이를 가르치지 않은, 그리고 무식이가 배울 수 있도록 여건을 허락하지 않은 우리 ‘유식이’도 무죄라고 발뺌할 순 없다.

▶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목숨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드러나지 않는 ‘홀로 투쟁들’은 이 세상을 좀 더 가치 있는 세상으로 변화하게 하는 강한 힘이 아닐까.

▶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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