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 위기, 비상구가 안 보인다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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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타당한 방안인 ‘영구적 재정 정책 이전’은 난관 예상…그리스의 ‘디폴트’도 시간문제

지난해 초 부각된 유럽 재정 위기는 유럽의 경계를 넘어 세계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일부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유럽 재정 위기를 ‘5년 안에 국채 위기로서 최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유로존의 재정 위기를 막을 전략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채무 불이행 위험에 노출된 국가들이 스스로 국가 채무를 재조정할 때가 되었다.

유럽연합(EU) 내 경제 상황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한 갈래는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처럼 제조업이 바탕이 되어 견실한 경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이다. 다른 한쪽은 제조업이 빈약하거나, 미국발 금융 위기의 원인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깊게 연관된 은행들이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처럼 불안한 경제 상황을 보이는 국가들이다. 경기 회복세에 대한 체감 경제와 관련해서도 호전되거나 현상 유지 중인 국가들과 악화되었거나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로 나누어지면서 EU 내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지난 1월2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모인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들. ⓒ REUTERS

1월 초 포르투갈은 10년 상환 국채에 대한 이자를 6.7%나 지불해야 했다. 물론 걱정했던 파산을 면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속적으로 이같은 이율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벨기에의 경우도 국채에 대한 이자율이 대폭 증가해 투자자들이 부채 규모에 초조해하고 있다. 스페인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불안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로존 외곽 국가들과 유로존 중심 국가군 사이에 방화벽 역할을 하기 위해 당초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려 도입된 구제 방안이 실패작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국가 채무에 대해 가장 타당한 장기 방안인 ‘영구적 재정 정책 이전’은 정치적으로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몇몇 정치 지도자들은 유로 채권 발행을 포함한 좀 더 긴밀한 재정 동맹을 기대하지만 문제가 된 회원국의 전체 국가 채무를 인수하는 예산 이전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독일 경제의 성장에 힘입어 현재 유로존의 경제는 전체적으로 9개월 전보다 호전된 상태이다. 유럽 은행들은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리스를 포함한 일부 회원국들은 긴축 정책을 도입해서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강력한 재정 긴축 정책에도 그리스의 국채가 201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백65%로 증가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2015년에 이르러서도 그리스는 국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유럽이 종전의 구제 계획(Plan A)에 집착한다면 재정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고, 새로운 대안(Plan B)을 이행하려면 좀 더 능란한 기술적 관리와 정치적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1월16일자는 밝히고 있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4개국(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의 기본적인 취약점은 자국 상품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정 긴축 정책에 직면해 실질적인 GDP의 회복은 임금과 제품 가격의 하락을 요구할 것이다. 세금 인상과 소비 축소를 통해서 예산 흑자에 도달하려면 족히 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구원투수 독일의 역할에도 한계 있어

5년 후 문제 국가들의 국채 대 GDP 비율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 1백65%, 아일랜드 1백25%, 포르투갈 100%, 스페인 85%. 스페인의 경우 상환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반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불확실하다.

유로화를 보호하기 위해서 EU 회원국들은 공동 전선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유로화는 평가 절하가 자유롭지 않다. 경쟁력이 약한 회원국은 이 공동 전선에 자국 경제를 맡기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더불어 경쟁력이 강한 회원국들은 약한 국가들이 요구하는 경제적 손실과 금융 손실을 감당하기 힘든 입장이다.

5조2천억 달러(4조4천억 유로) 규모의 유럽 금융 안정기금은 회원국이 발행하는 채권을 구입하는 자금을 조달하고 은행의 자금 순환을 돕기 위한 자본을 주입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나 이 기금은 특별 용도 장치(SPVs; Special Purpose Vehicle)로 설계되어 국채와 악명 높은 금융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을 숨길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유럽 구제 금융 기금은 회원국 각각의 개런티에 따라 지원된다. 만일 한 회원국이라도 개런티에 근거한 자본을 못 내놓을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그 자본을 염출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자본이 없는 국가들이 있지도 않은 자금을 개런티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유로존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를 구제하기로 했을 때 즉각적인 국채 재조정은 피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채무 불이행이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로존의 채권 위기와 유럽 금융 산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리스 재정 위기 이후에 EU 내에서 독일의 위상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EU라는 한 배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EU 내 경제 대국인 독일이 매번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1월17일에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나타났듯이 구제받는 회원 국가들의 경제가 계속 난조를 보일 경우에, 독일이 같은 회원국이라는 연대감만으로 이들 국가를 구제하는 데 지속적으로 동참해주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밝혀진 대로 그리스는 유로존에 들어오기 위해서 국가 채무가 GDP의 3% 이내여야 한다는 자격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회계장부를 조작했다. 독일이 당장 돕기로 나선 이유는, 그리스를 포함한 이들 국가가 독일 상품의 시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장기적으로 독일이 무한정 이들 나라에 구제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통합은 단일 시장을 만들어 한 나라에서처럼 비즈니스를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국가 연합체이다. 사실 독일이 뒤쳐진 경제 구조를 지닌 EU 회원 국가들을 키워주는 것도 회원국의 경제가 좋아야 그들이 독일 제품에 대해 구매력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은 다른 EU 회원국의 재정 적자 문제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투명성을 보이지 않는 회원국까지 구제하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도 물이 있어야 가능한데, 독일도 이 문제 국가들의 경제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결국은 손을 뗄 수밖에 없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은 이제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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