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100만명이 실종된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소년이 펼치는 ‘아빠 찾아 삼만리’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2.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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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바빌론의 아들>

 

<바빌론의 아들>은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거북이도 난다> <칠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처럼 쿠르드족과 관련한 영화이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 이란 등의 국경 고원 지대에서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사는 3천만명의 민족이다. 근대 국경선은 이들의 땅 ‘쿠르디스탄’을 찢어놓았고, 각국에 흩어진 쿠르드족은 중동 정치의 중요 변수가 되었다.

<바빌론의 아들>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직후, 쿠르드 소년이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담은 극영화이다. 12년 전 걸프 전쟁에 참전한 뒤 소식이 끊긴 아들이 바스 당에 체포된 후 남부의 나시리아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열두 살 난 손자와 함께 길을 나선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후세인의 바스 당에 저항하다 1988년 종전 후 화학 무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소탕 작전(‘안팔’ 작전)으로 18만명이 살해되었다. 1991년 걸프전 때 미군 편에 서서 이라크군에 맞선 쿠르드족은 휴전 후 유엔 비행금지 구역 조치에 의해 사실상 자치를 누렸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쿠르드족 거주 지역은 미군의 전초 기지였고, 쿠르드 민병대는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앞장섰다.

영화에는 2003년 당시 쿠르드인의 후세인과 미군에 대한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후세인을 증오하지만,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소년이 쿠르드인 학살에 참여했던 남자와 교감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라크 여인이 할머니의 슬픔에 공명하듯이, 쿠르드인과 이라크인은 전쟁의 상흔을 함께 나눈다. 시체만이라도 찾으려다 신원 미상의 유골이 흩어져 있는 구덩이에서 정신줄을 놓은 할머니의 얼굴 위로 이라크에서 40년간 100만명이 실종되고, 25만구의 신원 미상 시체가 발굴되었다는 자막이 겹칠 때, 먹먹함이 엄습해 온다. “전쟁 반대!” 우리 시대, 가장 절박한 구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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